낭만적 사랑에 일침을 가한 소설가 정이현을 만나다

-­‘달콤한 나의 도시’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조선일보에 이제 막 연재하기 시작한 장편소설이다. 31세의 평범한 직장 여성인 소설 속 화자를 통해 서른 안팎의 사람들이 서울 안에서 어떻게 버티고 살아가는지 실감나게 보여줄 예정이다.

최근 30대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이 인기를 끌었다. 나는 대중문화와 다른 ‘문학’의 지점에서 30대 여성들을 바라보고 싶다.

현재 연재 중인 ‘달콤한 나의 도시’는 환상이나 판타지의 요소를 가미한 드라마와 다 르게 구질구질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일례로 소설 속 연하의 남성은 돈 한 푼 못 벌어오고, 때론 철자법도 틀리는 드라마 속 왕자님과 정반대되는 인물이다. 30대 커리어우먼들의 일과 사랑을 현실감 있게 그려낼 것이다.

-젊은 여대생들에게 인기가 많은데

자신들이 드러내지 않는 부분을 솔직히 그려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조금 전 남녀공학 여학생들을 만났는데, 젊은 여학생들과 복학생들이 같이 듣는 수업에서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다 싸움이 났다고 한다.

여학생들은 소설 속 인물들을 심정적으로 이해한 반면 남학생들은 “소설 속 여성들이 너무 못됐다”며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젊은 여성들에 비해 20대 후반 남성들은 내 작품을 보고 찔리는 게 있는지 불편해 하기도 한다.

-­어떻게 작가가 됐나

내가 작가가 된 과정은 만화 속에나 나올법하다. 사실 나는 작가가 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한국 문학의 열혈 독자도 아니었고 그저 김영하·은희경 소설을 따라 읽는 정도였다. 20대 후반에 남산을 지나다 ‘서울예대 신입생 모집’ 광고를 본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어린 시절에 막연히 꿈꾸던 문학에 대한 동경이 되살아나면서 내 인생을 확 바꿔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당시 성신여대 대학원생이었던 나는 논문이 잘 써지지 않는 데다 개인적인 일까지 겹쳐 매우 힘들 나날을 보냈다. 상대적으로 늦은 시작이었지만 서울예대에서 배운 문학과 창작에 대한 열정은 지금까지도 내 작품에 많은 영향을 준다.

▲ [사진:이유영 기자]
­-작품을 쓰기 위해 뭔가를 특별히 준비했던 적이 있나

소설, 특히 단편 소설을 쓰는 데는 문장·주제보다 구성이 중요하다. 그래서 보통 글을 쓰기 전에 큰 뼈대를 미리 정해 놓는다. 그런데 이야기를 시작하다 보면 나의 의지대로 소설이 전개되지 않고, 소설 속 인물들이 스스로 움직이며 결론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소설 쓰기의 가장 큰 매력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단편 ‘소녀시대’를 준비하며 약 20여 명의 여고생들을 인터뷰한 것이다. 여고생들의 솔직 담백한 이야기가 이 소설에 등장하는 17살 여고생을 그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한겨레 ‘저공비행’이란 코너에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나 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를 소재로 한 칼럼을 기고했던데. TV를 많이 보는 편인가

보통 작가들이 TV를 안보고 책만 본다고 생각하는 듯한데 이는 편견인 것 같다. 나는 실제로 TV를 많이 본다. 그러나 드라마 같은 경우에는 내가 꽂히는 것만 골라 본다. 청소년 드라마 ‘반올림’·청춘 시트콤 ‘논스톱’ 등 좀 엉뚱한 것을 재미있어하는 편이다.

-­데뷔 이후, 도발적이라는 평이 줄곧 따라다니는데

성(性)에 대한 관념·사랑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도발적이라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나는 내 주위의 여자들 누구나 알고 공감하지만 드러내 이야기하지 않는 부분을 까발렸을 뿐이지 도발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한국 문학이 얼마나 휴머니즘에 치우쳐 재미가 없었으면 이 정도를 ‘도발’이라고 할까라는 의문이 든다.

­-세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앞으로 따뜻한 이야기를 쓸 생각은 없나

지금 내 작품에 이런 면이 잘 나타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세상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냉소의 눈길을 보내는 작가가 되고 싶다. 나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내가 그를 좋은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가 쏘는 냉소의 화살이 세상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날카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작정 냉소를 동경하지는 않는다. 은희경 선배님이나 내 작품이 세상을 차갑고 가차없이 바라보기는 하나 특별히 냉소라고 평가받을 정도인지는 모르겠다. 나와 같은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오히려 객관적일 수도 있는데 ‘소설이 냉소적이다’·‘소설 속 인물들이 영악하다’고 단정짓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과연 따뜻하다는 것, 휴머니즘의 기준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리어카에 연탄을 싣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이야기를, 또 다른 사람은 임신해 울고 있는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는 이야기를 따뜻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구두를 사느라 집 구할 돈이 없는 캐리에게 이혼한 샬롯이 다이아몬드 결혼 반지를 팔아 도와주는 그런 황당함도 따뜻함이라 볼 수 있지 않은가. ‘따뜻함이란 이런 것’이라 규정하고, 내 작품이 따뜻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신인이다 보니 독자나 평론가의 평가에 신경이 많이 쓰일텐데

누구나 한 마디 할 수 있는 인터넷 시대에서 상처받지 않고 살아가려면 뻔뻔해져야 할 듯하다. 인터넷에서 ‘정이현’을 검색하면 사람들이 자신의 일기장에 “정이현 소설 재미없다”라고 쓴 글까지 읽어볼 수 있지 않은가. 사람들은 그들 나름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한다. 문제는 전문가들의 평가다. 대부분 내가 소설을 쓰며 찜찜했던 부분을 예리하게 지적해준다. 예를 들자면 ‘낭만적 사랑과 사회’ 이후에 인물 변화가 없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때때로 굉장히 주관적일 수 있는 한 전문가의 평가가 인터넷을 통해 확대 재생산돼 그 평대로 낙인찍히는 경우가 있어 안타깝다.

-­어떤 작가가 되고 싶나

‘이런 작가가 되기 싫다’를 말하겠다.(웃음) 자기 살 떠먹는 작가, 자기 복제하는 작가가 되고 싶지 않다. 어떤 작가는 첫 번째 작품집과 두 번째 작품집이 비슷한 경우가 있다. 데뷔 일 년 후와 칠 년 후의 작품이 비슷할 때도 있다. 나는 성공이든 실패든 매번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작가가 될 것이다. 이와 더불어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은

‘달콤한 나의 도시’의 연재 기간은 약간 조정될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3∼4개월 정도 예상하고 있다. 앞으로 이 소설에 모든 노력과 시간을 집중할 것이다. 3년 만에 재기된 조선일보의 연재소설을 맡게 돼 올해 11월에 나올 예정이었던 두 번째 작품집 발간이 늦어졌다.

내년 초에 「낭만적 사랑과 사회」(문학과지성사, 2003) 이후 문예지에 발표했던 소설들을 묶어 작품집을 낼 예정이다. 또 생각하고 있는 몇 개의 소재를 가지고 더 좋은 장편을 쓰고 싶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그동안 시간에 쫓겨 퍼내기에 바빴던 나를 들여다보며 재충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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