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보사 그만두라구요?
학보사 그만두라구요?
  • 박초롱 기자
  • 승인 2005.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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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 점치는 아저씨께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얼마전에 아저씨 까페에서 타로점을 봤었죠. 점이 잘 맞는다고, 유명하다고 해서 친구랑 일부러 찾아간거였어요. 왜, 이런 질문 했었잖아요.
“현재 학보사 기자 활동을 하고 있는데 너무 힘이 든다. 친구들도 만나기 힘들고, 학보사에 매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어떻게 하면 이 안에서 의미를 찾고 즐겁게 살 수 있을까?”

그 때는 어찌어찌 5번의 제작을 마치고 쉬고있을 때였어요. 첫 제작때의 패기와 의욕은 점점 사그라들어 작은 불씨가 되어 있었지요. 중간고사고 뭐고 다 좋으니까, 학보사 일만 좀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마지막 제작에 임했습니다. 이런 마음이었으니 좋은 기사가 나올 리도 없었고요.

휴간 기간 전부터 하고 싶은 일을 잔뜩 공책에 적어놨던 저는‘3주동안 학보사엔 발을 들이지 않으리라’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휴간 첫날, 아저씨를 찾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원래 점은 잘 믿지 않지만 몸과 마음이 지쳐서 무언가에 의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아마도 이런 대답을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열심히해라. 2년후엔 한 층 자란 너를 발견 할 수 있을 거야. 너의 인생에 큰 자양분이 될 것이다.”

저의 질문을 듣고 한참을 생각하시던 아저씨는 카드를 치기 시작하셨죠. 아저씨는 제게 카드를 2장 뽑으라 하셨고 뽑은 카드를 뒤집은 저는 경악했습니다. 타로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그 어두운 그림들! 검은 상복을 입고 울고 있는 미망인 그리고 음흉한 웃음을 흘리고 있는 악마.

“지금 아주 힘들죠? 죽을것 같죠?”
“네…”
“그림에 다 나와있네. 그런데 그거 그만 못두는 일이죠?”
“네, 어떡하죠?”
“그만 둘만한 일을 만들어서 그만두세요. 머리를 다치던가~”
“네? 이 일을 끝까지 하면 나중에는 제 앞날에 영광이 있지 않을까요?”

아저씨는 카드를 섞고 다시 배치하고 하시더니 한 장을 뒤집으라 하셨습니다. 뒤집은 그림은 바로 성배!!
반짝반짝 빛나는 성배 그림이 나오자 마음이 셀레었죠. 역시, 내가 학보사일 괜히 하는게 아니지. 그런 저를 뒤로 한채 아저씬 말하셨죠.

“응? 이거 뒤집혔잖아. 카드가 뒤집혀서 나오면 의미가 정 반대가돼. 그만둬 그 일! 인생에 하나 도움 안됩니다.”

청천벽력(?) 같은 타로점을 보고 저는 황망한 기분으로 신촌 바닥을 맴맴돌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찜찜한 기분이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이어졌죠. 나중에는 아저씨를 원망도 했어요. 그리고 휴간 기간은 이어졌습니다.

휴간 기간에 참 많은 일이 있었어요.

우선 같은 기들과의 정이 너무도 끈끈해졌습니다. 학교 밖에서 만나 저녁도 먹고 술도 함께 하며,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어요. 비온만큼 땅이 굳어진다고 했나요? 힘든 제작을 5번 함께했더니 우리 우정은 단단히 굳어있었습니다. 내가 학보사가 아니었으면 어디서 이렇게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겠나… 싶더군요.

휴간 기간에도 과 친구들은 저에게 묻곤 했어요. “요즘 학교에 재밌는 일 뭐 없어? 조형대에서 XX 전시회 한다는데 그거 언제야? 학교 일은 니가 제일 잘 알잖아~” 그래요. 어느새 학교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5번 제작동안 솔직히 글 실력이 늘진 않았어요. 하지만 ‘시야’만은 넓어져 있었어요. 학보사 기자가 아니었다면 다양한 행사에 참여도 못해보고, 학교 일도 모르고 ‘여대라 재미없다’며 그저그런 학교 생활을 하고 있었을 거예요. 사실 휴간 기간에 제대로 놀지도 못했어요. 이제 학보사 안가도 되니까 뭔가 대단한 일을 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더라구요. 빈둥대면서 의미없는 시간만 흘려 보냈죠.

밤 새고 기사쓰는 것도 은근히 재밌어요. 한 공간에서 울고 웃고, 아침엔 하나의 기사가 나오죠. 쓸때는 힘들지만 월요일날 신문이 나오면 잘썼든 못썼든 참 뿌듯해요. 에휴~ 이제 학보사 안하면 뭘할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이 긴 편지에서 제가 하고싶은 말이 뭐냐면 “아저씨가 틀렸어요! 타로점 참 못보시네요~”
저는 2년 동안 무슨일이 있어도 ‘이대학보 기자’일 것이고 퇴임 후의 저는 지금 보다 훌쩍 커있을 거예요. 재미로 본 타로점에 흔들린 제가 부끄럽네요. 식상한 말이지만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고 자신이 만들어나가는 거라 생각해요.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하냐에 따라 학보사가 저에게 줄 수 있는 것도 달라지겠죠.

학보사! 내 운명이라 겸허히, 그리고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즐겁게 학보사가를 부르며 편지를 끝맺고 싶은데 한번 들어보시렵니까?

말하라, 말하라, 몸뚱이로 말하라
말하라, 기사가 짤리우고 기획이 취소돼도
혀는 잘리워서 입으로 말 못해도 몸뚱이로 말하라
이화에서 들리는 민중의 소리
바람따라 자유가 뚜벅뚜벅 걸어서 돌아오는 날까지
말하라, 말하라 몸뚱이로 말하라
자유 언론 쟁취 만세!

2005년 11월 11일
박초롱 씁니다.

 

추신 - 아저씨 까페의 번창을 빕니다. 앞으로는 점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더 희망적인 얘기를 많이 들려 주셨으면 좋겠어요. 플라시보 효과라고 들어보셨나요? 병에 걸린 사람에게 아무 효과도 없는 약을 주어도 병이 어느정도 호전된대요. 그 약의 효과를 신뢰하는 환자의 ‘믿음’과 ‘희망’때문이겠지요. 아저씨는 충분히 플라시보 효과를 퍼뜨릴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아저씨의 플라시보는 ‘마음’을 치유해 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