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더이상 ‘애들’이 아니라니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 위해 한 아이와 엄마가 상점에 들렀다.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할아버지를 보여주려던 엄마는 아이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런데 아이는 엄마 옷자락에 매달려 숨으려고만 했다. 풀어진 아이의 신발 끈을 매주려던 엄마가 무심코 고개를 들었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둠 속을 밀치고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굵은 다리와 커다란 엉덩이 뿐이었다. 자신의 눈높이에서 아이가 목격한 광경은 너무나 삭막했던 것이다. 그제서야 엄마는 아이가 눈으로 본 세상을 보게 되었다.

어른들은 흔히 아이들이 그냥 방치해도 저절로 동화 속에 나오는 어린 주인공들과 같이 순수하고 밝게 자라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경제관념을 부추기는 요소가 넘치는 세상이 있다면, 아이들이 보고 배우는 것은 맹목적인 경제관념일 수 밖에 없다.

출간 이후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베스트셀러,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시리즈는 보다 쉽게 돈과 경제의 개념을 어린이들에게 알려준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러하다. 무리하게 집을 사서 돈에 쪼들리는 엄마와 아빠를 볼 때마다 열두 살의 평범한 소녀 ‘키라’는 속상하다. 그러던 어느 날 집 앞에 쓰러져 있는 강아지를 보고 정성껏 돌봐준 ‘키라’는 우여곡절 끝에 그 강아지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다. ‘키라’는 부자가 될 결심을 하고 돈 박사이자 말을 하는 개, ‘머니’를 만나 모험을 시작하게 되는데 영특한 강아지 ‘머니’는 ‘키라’에게 부자가 되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는 뮤지컬으로도 공연될 정도로 경제관념이 아이들에게 사회를 살아가는 필수덕목이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 조선일보가 서울 강남·북 초등학생 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심층면접에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7명의 아이가 ‘돈 벌어 부자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1위 ‘사랑’(8명)에 이어 두 번째다. 마우스와 리모컨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면서 세상을 너무 일찍 배우기 시작한 요즘 초등학생들의 ‘지나친 경제관념’은 상상 이상이다. 전문가들은 IMF 외환위기 이후 ‘돈’이 그들의 부모 세대에 최고의 화두가 되면서 이 시기에 자아가 형성된 아이들까지 그 가치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한다.

사회가 오로지 ‘돈’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현실에서 아이들에게 황순원의 ‘소나기’의 주인공과 같은 순수함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다. 지나친 경제관념 뿐 아니라 각박한 사회 현실은 아이들을 더욱 병들게 한다. 아이를 성형수술시켜 연예기획사를 찾아다니는 일부 부모들의 허영은 몸에 대한 관심을 외모강박증으로 치닫게 한다. 심지어 아이들이 한참 뛰어놀 나이에 ‘귀차니즘’에 빠지거나 죽음·허무함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심심치않게 들린다.

겉보기에만 조숙하고 정서적·도덕적 깊이는 얕은 불균형한 아이들이 이 사회에서 자라나고 있다. 아이들을 올바르게 키우고 교육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아이들을 사회의 강한 찬바람에 무방비상태로 노출시킬 수는 없다. 루소는 이렇게 말했다. 자연은 아이들이 어른이 되기 전에 어린이이길 바라고 있다. 만약 이 순서가 바뀌면, 우리는 맛이 없고, 금방 썩어버리는 설익은 과실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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