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보사로 인해 얻은 것과 반대로 잃은 것이 있다면.
수습기자로서 상당히 외람될 글이지만 나는 6번의 제작 중 나의 수습기자 생활을 정리해보는 의미에서 이 글을 써보고자 한다.

우선, 나는 참 많은 취재원과 만나며 색다른 경험을 얻었지만 반면 취재원과의 미숙했던 인터뷰 결과 황금같은 금요일과 토요일 맥(Mac)실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어야 했다. 1274호 ‘이화골 사람들’이 그 대표적 예. 우리학교 조형대 동문회장이자 녹미 문화협회 이사장인 김귀주씨를 만나 즐겁게 인터뷰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선물도 받았다.

하지만 정작 기사를 쓸 때에는 빽키언니와 나는 속을 까맣게 태웠다. 누구랄 것도 없이 원인은 나 자신. 어렵사리 마감을 하고 집에 갔지만 속을 편하지 않았다. 이런 나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있었으니 혜원언니 왈,“다음에 이화골 한 번 더 하자!”

다음, 나는 자칭·타칭 리뷰 기사 전문기자라고 불리지만 고발기사와는 인연이 먼 기자. 6번의 제작 중 고발 기사는 단 한번 ­그것도 FCD 언니들을 왕창 속썩인­ 이었지만 나의 리뷰기사는 매호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이런 나에게 가장 큰 위기가 닥쳤으니 그 주제는 다름 아닌 ‘변태’다.

다음 호(1277호)에 실릴 듯한 기사로 취재는 2주에 걸쳐 심도있게 해야한다는 특명이 떨어졌다. ‘변태’관련 기사는 고발기사에 미숙한 나에게 고발기사의 특성상 만나야 하는 취재원은 모두 만나야 하는 종합 선물세트인셈. 여기서 잠깐! 무슨 기사인지 궁금한 사람은 1277호를 정독하길 바란다.

이제까지 기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면 이제는 인간관계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 학보사를 통해 76기 수습친구들을 만나 즐겁고 학교 생활의 낙을 얻었다고 확언할 수 있으나 그 외의 인간관계에 소홀해진 것은 사실이다.

1학기 때 과집행부(과집)활동을 하면서 친구도 사귀고 언니들도 만나는 등 인간관계를 넓혔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들을 만나 수다를 떨기 보다 취재원으로서 대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다음에 꼭 얘기하자”·“연락할께”라는 말이 인사치레에 그치는 현실이 슬플 따름이다. 하지만 이러한 손해가 있는 만큼 76기 수습 친구들과는 참 재밌고 즐겁다. 각자 개성이 어찌나 독특한지, 어떻게 이런 아이들만 모아놨는지 신기할 정도다.

2년 후 우리가 퇴임하게 될 때에는 학보사에서 경험했던 많은 일들이 추억이 되고 사회 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여느 대학생처럼 대학생활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 학보사에서 느끼는 마지막 득실이라고 할 수 있다. 월요일 보고대회와 평가회의에서부터 금·토요일 마감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보통 대학생이 겪지 못할 많은 경험과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가끔은 ­사실은 자주?­ 이화사랑에 앉아 여유롭게 책도 보고, 교복파티도 가고, 미팅도 하고 싶지만 ­이 같은 일은 주로 금요일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우리에게 맡겨진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오늘도 맥실에서 맥과 씨름을 하고 있다.

무슨 일이든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 학보사를 통해 얻는 큰 결실은 보지 못하고 잃고 있는 것들에만 매달려 있으면 결국 내가 얻은 것은 하나도 없지 않을까. 앞으로 열심히 뛰어 학보사에서 풍성한 열매를 수확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오늘의 일기는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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