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는 해마다 10월이 되면 도서전이 열린다. 매년 110여 개국에서 약 6천700개의 업체가 참가해 출판물 및 디자인, 종이 등 관련 상품을 전시하고, 34만권의 책과 8만권의 신간을 소개하고 있다.

10월19일(수)~23일(일)까지 개최된 이번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는 우리나라가 주빈국으로 선정되었다. 여기서 주빈국 제도는 주빈국의 도서뿐만 아니라 연극·영화·음악·미술·학술·경제 등 한나라의 문화와 삶을 포괄적으로 보여주는 종합 문화 행사 제도를 말한다. 국내 74개 출판사가 참여한 이번 도서전은 우리나라의 문화적 수준과 그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 사진제공:2005프랑크푸르트도서전 주빈국 조직위원회
이러한 상황에서 이화여대 출판부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참가한 의미는 매우 각별하다. 이대출판부는 외국 명문대의 출판사나 세계적인 출판사처럼 성장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즉 세계화의 비전을 품고 학문적 경쟁력을 갖춘 학술 도서를 발행하고 있는 것이다. 또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특별기획 시리즈인 『우리 문화의 뿌리를 찾아서』 한글판·영어판을 출판하는 등 영문 도서 제작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이런 참에 우리나라가 주빈국이 되는 올해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우리 학교 출판부의 역량을 시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따라서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했다.

이번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출품된 『우리 문화의 뿌리를 찾아서』의 영어판 『The Spirit of Korean Cultural Roots』의 금년도 발행분 10종은 미국·캐나다·이탈리아·독일의 여러 출판사의 참가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한국문화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 외국인은 심오한 정신이 깃든 한국문화를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은 매우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문화의 뿌리를 찾아서』의 영어판이 한국 전통의 정신을 완벽하게 전달하고 있다고 극찬했다. 국내 여러 출판사의 부러움을 산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탈리아의 한 출판사는 몇 종을 자국어로 번역하고자 했으며, 독일 Stuttgart의 한 미술관은 출품된 영어판 10종을 도서실에 비치하고 앞으로 출판될 신간을 지속적으로 구입하겠다고 했다. 이 미술관 사서는 다음날 자신의 고향에서 생산되는 쵸코렛과 전통빵을 선물하며 호의를 보이기도 했다.

▲ 사진제공:2005프랑크푸르트도서전 주빈국 조직위원회
이화여자대학교 110년사를 영어로 엮은 「Ewha, Old and New」나 젊음·자연·삶·사회·종교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편 「Thought beyond Thought」(김흥호 저), 한국의 정치와 경제·주변 국가와의 관계 등을 담은 「Real Success, Financial Fall: A Reassessment of the Korean Dynamism」(유장희 저) 역시 큰 주목을 받았고, 일반인의 관람이 허용된 주말 이틀간은 서로 사겠다고 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대출판부가 출품한 32종의 도서 중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재인 「Pathfinder in Korean」은 우리 학교 언어교육원의 강사들이 다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의 일상생활 언어에 대해 집필한 국내 최초의 올컬러 한국어 교재다. 이는 한류 바람을 타고 한국어를 가르치려는 외국의 여러 대학 및 어학원은 물론 독일내의 한인학교의 교사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5단계로 구분되어 출판된 Work book, Student book, CD와 단어집 등을 매일 매일 수도 없이 설명하고 나면 어느덧 종료 시간 6시를 넘기곤 했다.

전시 기간 동안에 많은 동창들을 만났다. 이화여대 출판부가 참가한 것을 모른채 한국관을 찾았던 동창들은 부스에 마련된 작은 탁자 앞에 앉아 마치 친정에 온 것 같다며 아침에 다녀 가고, 오후에 다녀 가고, 그 다음날도 다녀 가곤 했다. 독일 내에서는 만나지 못하고 지냈던 동창들이 서로 몇 학번인지 물어가며 반가워하는 모습에 가슴이 찡해 왔다. 모두 열심히 살며 기쁨을 갖고 활동하고 있었다. 내 표현력이 모자라서 이화의 동창됨을 그토록 자랑스러워 하는 그분들의 모습과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지 못해 참으로 아쉽다.

어느 날은 외국 출판물의 분야와 기호를 보기 위해 미국·프랑스 전시장 등을 시찰(?)했다. 각기 다른 출판사들의 출판물들이 각기 다른 특색을 가진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었고, 표지나 본문 용지의 질이나 색채 감각은 부러움보다 시샘이 날 정도였다.

이대출판부는 국내 최고 수준의 기획사나 인쇄소를 선정하여 도서를 제작하고 있지만 ‘국내에서 선진국 수준의 북 레이아웃 등으로 제작한다면 책값을 어느 정도로 책정해야 하나’라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무엇보다 창의적인 디자인을 하는 북 디자이너가 국내에 몇 명이나 있을까, 색채를 완벽하게 옮겨 놓을 인쇄소는 과연 몇 군데나 있을까 생각했고, 제지회사마다 질이 다른 동일 명칭의 종이에 대해 별다른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사용하는 국내 출판사의 현재 상황를 생각했다.

도서 제작의 모든 과정과 출판물의 국내 및 국외 유통을 교육하는 전문 기관의 부재는 국제 도서전의 주빈국으로서 심각하게 헤쳐가야 할 문제이며 도서 번역을 하는 인재를 키우는 일은 대학이나 번역 교육기관이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출판계는 앞으로 할 일도 많고, 꿈도 희망도 많은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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