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온 링의 파티가 있는 날이었다.

교환학생으로 지내다 보면 현지 학생들과 어울릴 기회가 더러 있긴 하지만 수업이나 학교 행사에 머물기 마련. 보통은 다른 나라에서 온 교환 학생들끼리 어울려 몰려다니게 된다. 파티라는 이름으로 어느 한 집에 모여 siideri(사이다의 일종인데 알코올이 첨가돼 있다)나 맥주 등을 마시며 보통 시간을 때운다.

링의 집은 우리 집에서 자전거로 40분 정도 떨어진 곳. 걸어간다면 2시간은 족히 걸린다. (이곳에 온 이후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덕분에 거리를 자전거 기준으로 말하는 버릇이 생겼다. 농촌사람들이 경운기로 몇 분 걸린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개념인 것 같다) 대만에서 온 친구 짜픈과 함께 그 추운 날 매서운 바람을 뚫으며 자전거를 타고 링의 집에 도착했다.

갔더니 독일에서 온 다니엘, 캐나다 퀘백에서 온 론, 핀란드 친구 레이오, 대만에서 온 유쭈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수북이 쌓인 음식재료들도... 링은 카레와 탕수육, 애플파이를 만들 예정이라고 했다. 그때가 이미 저녁 7시. 배고파 죽겠는데 얼마나 만들려고 하는지…

“난 뭘 할까?” 라고 은근슬쩍 물어보니, 돈까스 먹을 때 쓰는 바로 그 칼을 주며 사과를 좀 깎아달라고 했다. 사과가 거의 한 바구니에 가득히 있었는데, 이건 깎는 게 아니라 문질러 벗겨낸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교환학생들이다 보니 칼이 겨우 한 두 개 정도 집에 있는데, 그것마저 다른 친구들이 쓰고 있어서 내게 돈까스 칼이 주어진 것이었다.

한 5개쯤 깎다 보니 애플파이 안 먹어도 좋으니까 껍질을 그만 벗기고(?) 싶을 정도였다. (여기 사과는 자두만큼 크기가 작아 더 힘들었다) 어쨌든 엄지와 검지 사이가 사과만큼 빨갛게 됐을 무렵 사과 깎기가 끝났다.

이리저리 해서 카레와 탕수육, 애플파이를 다 만들고 나니 9시 가까이가 됐다. 거의 뱃가죽이 등에 붙었을 무렵,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다들 아무 말도 않고 먹기에만 집중했다. 다들 국적과 성별은 다르지만 엄청 배고팠던 모양이다.

다 먹고 나니 링이 방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영수증 하나를 꺼내온다.
그러고는 한다는 말이

“오늘 쓴 재료 값이 19유로 정도 인데, 일인당 3유로씩 내면 될 것 같아”

이었다. 아니.. 초대를 한 것이면 대접한다는 것 아니었나..일은 일대로 부려먹고, 이제 돈까지 내란다. 어찌나 예쁘게도 말하던지. 다들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는 건지 정말 자연스러운 건지 분간은 되지 않았지만 3유로씩을 냈다.

나라고 별 수 있나.
“다음에도 꼭 초대해줘” 라며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며 3유로를 손에 꼭 쥐어주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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