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좌 완전 우울하오. 이쁜 화연들 위로 부탁하오”. “토닥토닥, 힘내시오”.

 ‘이화이언(ewhaian.com)’의 익명게시판인 ‘비밀의 화원’에서 이화인들이 주고 받는 말이다. 매일 1천 명 이상의 이화인이 드나드는 이 곳은 갖가지 소소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2001년 5월, 이화여대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공간을 마련하자는 취지로 ‘이화이언’ 커뮤니티가 문을 열며, ‘비밀의 화원’도 처음 선을 보였다. 이 익명게시판은 비밀단어를 이용해 재학생·졸업생·교직원만 입장할 수 있게 돼 있다. 철저하게 이화인만의 공간인 이곳에는 어젯밤 꿈 이야기부터 인생사 고민 상담까지 가지각색의 글이 올라온다.

‘비밀의 화원’에 게시되는 글은 하루 평균 2천~2천3백 건 가량. 많을 때는 5천 건 정도일 때도 있다. 시간적으로는 약 30초당 한 건씩 글이 올라오는 셈. 이는 타대 사이트의 일일 평균 게시물 최다 게시판과 비교해 볼 때 폭발적인 수치다. 서울대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의 ‘공개사랑고백’게시판에는 하루에 약 50~60건, 많게는 100건 정도의 글이 올라온다. 성균관대 커뮤니티 ‘성대사랑’의 자유게시판에도 하루에 5백~6백건 정도의 글이 업데이트된다.

이처럼 ‘비밀의 화원’에 쉴 새 없이 글이 올라오는 이유 중 하나는 자유롭게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분위기다. 가정의 안 좋은 일이나 성에 관련된 고민까지도 여기서는 스스럼없이 다뤄진다. 정유선(국문·3)씨는 “친구에게 말하기 힘든 고민도 ‘비밀의 화원’에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고 전했다.

 ‘비밀의 화원’은 여느 다른 익명게시판과는 또다른 성격을 지닌다. 익명게시판으로 유명한 ‘디씨인사이드(www.dcinside.com)’에 게시된 인물 사진에는 ‘생긴게 짜증난다’는 댓글이 달릴 정도로, 온라인 상에서 익명성으로 인한 폐해는 심각하다. 반면 ‘비밀의 화원’에는 인신 공격적 글이 거의 없다. 간혹 누군가 자기 사진을 올려도 게시자의 외모를 비하하는 댓글은 찾기 힘들다.

오히려 서로를 다독이는 따뜻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같은 분위기는 오프라인으로 이어져 미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2003년, 한 자취생이 돈이 없어 ‘스윙칩’ 과자를 못 먹는 사연을 글로 쓰자, 다른 학생이 이화-포스코관의 사물함을 통해 ‘스윙칩’ 및 일상용품을 전달해 준 일이 있었다. 양윤 교수(심리학 전공)는 이에 대해 “비록 익명성을 띈다 하더라도 이용자들 모두 이화인이기 때문에 가족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비밀의 화원’의 또다른 인기 요인은 속도감과 현장성에 있다. 글이 올라오는 즉시 댓글이 달려 실시간으로 의사소통이 이뤄진다. ‘신촌에서 광화문 가는 버스가 몇 번이오?’ 등 급한 질문이 올라오면 답변이 바로 게시되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허영은(언론정보·2)씨는 “빠른 속도로 글이 올라오기 때문에 지금 이 공간에 존재하는 사람들과 교감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비밀의 화원’에는 사용자들 사이의 결속력이 엿보이는 요소들이 있다.

그중 ‘하오체’는 게시판 전용 문체로 그들만의 동질감을 형성한다. 이는 2002년 여름 인터넷 상에서 전반적으로 하오체가 쓰여 ‘비밀의 화원’에서도 자연스럽게 쓰게 된 것. 그러나 현재 다른 게시판에서는 하오체가 거의 사라진 반면 ‘비밀의 화원’에서는 아직까지 사용되고 있다.

김하림(사생·4)씨는 “하오체는 학년·나이의 구분을 무너뜨린다”고 전했다. 또 ‘비밀의 화원’에서만 볼 수 있는 용어는 이용자들 간 친밀함을 높이는데 한 몫 한다. 새벽에 접속해 있는 사람들을 ‘새벽반’이라고 칭하는 것 등이다. ‘비밀의 화원’에서 가상으로 만들어진 ‘이화여대 해양학과’도 하나의 공동 놀잇감이 된다.

이화인들의 수다가 넘쳐나는 ‘비밀의 화원’은 학교 공식 사이트의 자유게시판보다 훨씬 활성화돼 있다. 허영은씨는 “자유게시판은 학번이 표시되고 학교 관계자가 관리하기 때문에 인간적인 이야기를 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런 이유들로 학교 자유게시판보다 ‘비밀의 화원’에서 이화인들의 소통이 이뤄지고 있다. 신보경(언홍영·1)씨는 “대학 구조 조정에 관한 다른 단대 학생들의 속마음을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또 총학생회는 지난 겨울방학 때 등록금 책정 과정 협의 상황을 ‘비밀의 화원’에 공지했다. 총학생회 최보애 정보협력국장은 “당시 총학 홈페이지 개설 전이라 많은 이화인들이 접속하는 ‘비밀의 화원’을 활용했다”고 말했다.

한편 요즘 지나치게 연예인 비화 및 외모 관련 주제의 글이 많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ㄱ씨(광고홍보·03년졸)는 “예전보다 연예인·성형·다이어트 등을 주제로 한 글의 비중이 높아졌다”며 “서로 챙겨주는 정 많은 모임 분위기가 약해진 듯 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비밀단어를 우연히 알게 된 타대생들이 게시판에 비방글을 남겨 문제가 될 때도 있다. 개설 초기 외부인에게 공개됐던 ‘비밀의 화원’이 2002년에 이화인에게만 공개된 것도 외부인으로 인한 피해가 많았기 때문. 2001년 이화이언을 운영했던 김아네스(사생·04년졸)씨는 “타대생이 부적절한 글을 쓴 후, 그 글을 이화인이 쓴 것이라고 속여 다른 사이트에 옮기는 일도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심심할 때 ‘비밀의 화원’에서 외로움을 달랜다”는 신보경씨의 말처럼 이곳은 여전히 많은 이화인의 놀이터다. 이화이언 강유선 기획마케팅 팀장은 “‘비밀의 화원’이 이화인의 자유로운 소통 공간으로 사랑받기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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