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학기 이화여대로 교환학생을 가는 카뜨야(Katja)가 우리 집에 놀러 온 날이었다. 교환기간을 한 학기 연장 신청 했는데 이화여대에서 오케이 사인을 보내 기분이 좋단다.

Katja는 전공이 역사인데, 동아시아학에도 관심이 많다. 동아시아학을 공부하기에 한국이 지정학적으로도 최고이고, 한국에서도 이화여대가 정말 최고의 선택이라고 추켜세웠다. 전공이 뭐였던들 이화여대가 딱이라고 추켜 세우지 않았겠냐만.  ‘Ewha! The Best Choice’ 슬로건을 제대로 써먹은 셈이다.

나의 강력추천으로 한 학기 연장 신청을 했다고 하는데, 그리 뻥을 친 것도 아니니 아마 Katja도 만족할 거라 믿고 있다.

여하튼 Katja에게는 요즘 몇 가지 고민이 있는데, 첫 번째 고민은 지난 번 칼럼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현재 동거하는 남자친구와 헤어져 있게 되는 것이고, 그 다음은 다름아닌 ‘돈’ 이다.

당연한 문제다. 교환학생도 1년의 해외유학인데, 돈 걱정이 어찌 안 되겠나. 나 역시 이 물가 비싼 나라에서 항상 0.1유로 단위까지 비교해 가며 신경 쓰는데, 동병상련이려니 하며 처음엔 같이 고민했다. 먼저 서울의 물가는 핀란드보다 낮다고 안심시켰다.

아직 떠나기 넉달이나 남은 이 친구를 앉혀놓고 ‘신촌에는 그랜드마트라는 곳이 장을 보기에 적절하다’, ‘학교 기숙사 식당이 싸고 제일 좋다’는 등 이 정도의 상세한 정보까지 알려줬으니 이 친구의 고민이 어느 정도 심각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위로해주다 보니 갑자기 핀란드는 학비가 없다라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이 친구는 이화여대로 교환학생을 가면서도 학비 한푼 내지 않고 생활비만 부담하면 되는 거니까, 나랑 비교할 바가 되지 못했던 거다. 말이 교환학생이지 학비 본교에 다 내고 생활비까지 부담하는 나도 있는데 말이다. 더구나 학비 공짜인 학교에 와서 공부하고 있으니 나는 억울한 면도 없지 않았는데, 어찌 보면 자기 학비 내가 내 주고 있는 셈 아닌가.

조금 부아가 치밀어,
“학비도 없는데 어차피 너 여기서 생활하는 거나 한국서 생활하는 거나 거의 똑같은데 무슨 걱정이냐? 더구나 한국은 물가도 상대적으로 낮은데…”
라고 대뜸 말했더니, 이 녀석 대답이 한 수 위일 줄이야.

“돈이 한국물가에 맞춰서 나오면 안 되는데…”
하는 것이다. 아니 웬 돈? 장학금 얘긴가 싶어 물어봤더니, 글쎄.. 학생이라면 매달 350유로(한화 40만원 정도)씩, 최장 7년까지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고 유예시켰다가 한번에 목돈으로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해외로 나갈 때는 어떻게 될 지 몰라 그 부분이 걱정이라는 것이다. 배부른 고민이었다. 30등 학생이 1등 못했다고 우는 2등 친구 달래주는 기분이었다.

그렇다. 이 녀석들은 공부하면서 돈 받고 있는 것이다. 책 한 장 넘길 때마다, 수업시간 들어갈 때마다 돈을 받는 것이었다. 내 학비가 한 학기 3천유로라고 했더니, 우리 집이 갑부쯤 되는 줄 안다. 부모님 부자 절대 아니고, 더구나 생활비는 부모님께 받고 있다니, 완전 이제 바보 취급만 안 했지 거의 무시하는 분위기다. 이에 학비가 비싼만큼 이화여대가 정말 좋고 다들 비싸도 들어가고 싶어 줄을 섰다는 둥의 이야기를 하면서 설명했다.

 ‘돈 받고 공부한다고 지금 좋아하겠지만 나중에 월급 반은 세금으로 내야 할 거다. 짜샤..’
나 때문에 등골 휘시는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고 잠이 든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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