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란을 뾰족한 끝에서부터 까먹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가운데부터 까먹어야 하는가. 이 어리석은 질문 때문에 수만 명이 죽었다. 물론 이 사건은 1800년대 영국 작가 조나단 스위프트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책에서 소인국 사람들은 삶은 계란을 까먹는 방식을 가지고 피 흘리며 싸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굉장히 사소한, 비본질적 문제를 두고 목숨 걸고 싸우는 우리네 삶을 꼬집고 있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화개장터는 싸움에 찌든 우리 사회에 해답을 제시한다. 지금은 허름한 비석과 고무신 몇 켤레 놓고 장사하는 노점상들이 있을 뿐이지만, 해방 전 화개장은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규모가 컸다. 장이 설 때면 장터는 경상도 사람과 전라도 사람들이 한데 어울리는 화합의 장이 되곤 했다. 평소에는 서로를 ‘전라도 깽깽이’·‘갱상도 보리문디’라 부르며 비하하고 조롱하지만, 장날 만큼은 서로에 대한 반목도, 오해도 잊고 하나가 됐다. 지금 ‘화개장터’가 더욱 아쉬운 것은 상반된 서로의 견해를 수용하고 마음을 합하는 과정 자체가 부재한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금문교 역시 ‘하나’의 힘을 보여준다. 수심 120m에 이르는 깊은 계곡인 골든게이트 해협을 가로지르는 다리인 금문교. 이 다리의 길이는 무려 2천825m나 되지만 거대한 다리를 지탱하는 교각은 2개 뿐이다. 다리 상판을 들고 있는 227m의 교각에는 쇠줄이 매어져 있는데 이 쇠줄의 직경은 약 1m라고 한다. 그런데 이 어마어마한 쇠줄은 머리카락보다 약간 더 굵은 철사 2만7천500여가닥이 묶이고 묶인 것이란다. 약한 힘에도 쉽게 휘어지는 ‘연약한’ 철사들이 모이고 모여 엄청난 다리를 붙들어 올리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얼마 전 언론에 보도된 한국외대의 차기 총장선거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 사건은 총장 선거를 두고 선거권을 가진 교수들만 선출과정에 개입해야 한다는 교수협의회 측과 학교 구성원 모두가 참여해야 한다는 노조의 입장이 대립하고 있는 양상이다. 지난 해 5월 체결된 ‘대학평의원회에서 학교 구성원이 참여하는 새 총장선출제도를 마련한다’는 단체협상을 근거로, 노조는 이번 선거에 노조·학생회·교수협의회 등으로 구성된 ‘총장후보선출준비위원회’를 추진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교수협의회에서는 9월14일(수) 독자적으로 ‘총장후보선출준비위원회’를 발족한 상태다. 노조는 단체협상 위반에 대한 항의로 4일(화)부터 전면파업을 불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학교가 발전하는데 도움이 될 일꾼을 뽑자는 선거의 취지는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누가 선거권을 쥘 것인가에만 혈안이 돼 있는 모양새다. 비본질적인 것에 매달려 의미 없는 싸움을 계속했던 소인국 사람들처럼 바보스런 행동방식에 얽매여 있는 것이다.

이제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큰 그림을 그리자. 이제는 대립했던 상대와 하나의 그림을 그리자. 비본질적인 것에 얽매여 소모적으로 버려지는 힘들을 모아 본질적인 한 길을 걷자. 고였던 갈등을 허심탄회하게 풀어냈던 ‘화개장터’의 마음으로 금문교가 전하는 ‘하나의 힘’을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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