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한 이야기가 없다고 투덜투덜 했지만 사실 난 틈만 나면 못다한 이야기를 생각한다.

다행히 틈이란게 많아서 난 내 인생에 꽤 관심이 있다. 짜투리 시간은 넘쳐난다. 슬프게도 큰 스케쥴을 잡을 수 없는 난,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짜투리시간 투성이다.

이젠 말하기도 싫은 학보사는 20대 초반 내 인생의 중심이 돼버렸다. 사실 학보사 일이 힘든 건 학보사 구성원외에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 남자친구와의 약속은 이미 11월, 다른 약속은 말할 필요도 없다. 수업시간에도 정신없이 울려 되는 전화, 학점과 함께 전과를 향한 내 열망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애증의 공간이지만 이렇듯 난 ‘증’만을 키우면 학보사 일을 하고 있다.

 #변화 어제는 경찰서에 갔다.
물론 수업탓도 있지만 본격적인 기사 트레이닝을 위해 사건사고 기록들을 넘겨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할일은 당연히 넘겨받을 기록들을 기사로 푸는 것.

겁먹지 말자. 겁먹지 말자.

‘서대문구경찰서 강력팀 폭력담당 8팀’

이라지만 형사들이 괴물도 아니고 날 잡아먹진 않을 거다. 하지만 무서웠다. 시간은 이미 밤 10시를 향해 갔고, 욕짓거리가 오가는 그곳에 난 아직 익숙치 않다. 그야말로 아마추어고 그야말로 애송이다.

다행히 배불뚝이 형사는 친절했다. 다소 넘치게 친절했다. 부탁하지도 않은 사건들을 2개나 뽑아줬고 한자를 열심히 써가며 이것저것 설명했다. 무엇보다 고마운 건 우릴 학생취급 여자취급 아마추어취급 하지 않았단 것이다. 정민씨라 부르며 정말 기자인냥 잘해줬다. 밥도 사준다늬 불룩한 그 배안엔 정말 인격이 들었나보다.

앞으로 4주간의 경찰서 출근이 기대된다. 물론 우리 학보사 교수님은 걱정이 많으시다. 자기도 기자 출신이니 경찰서를 드나들며 생기는 일들이 만만치 않음을 안다. 폭력조직 옆에 서 있다가 괜히 욕을 먹기도 하고 여자들은 형사들이 성추행 기사만 넘기며 농락하기도 한단다.

하지만 아직 순진한(?) 난 박성우 형사는 그런 사람이 아닐 꺼라 굳게 믿는다. 무서운 사람들? 어제도 봤지만 뭐 어쩔거야 경찰서안에서.

 저번주는 영화관련 기획이었다. 우리쪽에서 사진을 부탁하는 처지니까 일단은 내가 불리한 입장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친절한 사람들이 더 많고 다행히 올드보이 제작사 쇼이스트는 물렁물렁했다. 마감에 임박해서 부탁을 들어주긴 했지만 사진자료도 여러장 넘겨주었다. 출판저널, 그 사람들도 한 친절했다. 내가 요청한 자료, 내 시간에 맞춰서 인터뷰까지 해주었다.

사실 늘 이렇게 수월한건 아니다. 잘난 사람들은 학교 신문사 기자들에게 그리 넉넉하지 않다. 굽실거리는 건 늘 나다.

 쭉 적고 보니

난 꽤 특별하게 살고 있다?

늘 힘들다고 징징거려서 거기에 묻혔나 보다. 살면서 신문사 기자들과 방송사 기자들과 몇 번이나 만날 수 있겠는가.

형사들? 사고치지 않는 이상 한 책상에 앉아 대화할 일이 있을까?

출판사 사람들? 책을 내지 않는 이상 웃으며 얘기할 기회가 있을까?

3천마리의 쥐가 가득한 동물실험센터에 들어갈 수나 있겠냔 말이다.

물론 주말까지 반납해야하는 스케쥴에 대학생의 낭만이 있을 리 없다. 골골거리며 보낸 9개월 남짓의 반지하 생활. 이젠 아무도 나를 어려보인다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대학보사의 탄탄한 역사덕분인지 난 학생기자 이상의 것을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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