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 건축가가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김진애(이하 김): 건축가는 체력소모가 큰 직업입니다. 작업을 완성할 때까지 계속해서 일을 해야하고 현장근무나 야간작업도 많습니다. 따라서 여성 건축가들이 체력 면에서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요. 또 아직도 현장에서는 여성 건축가를 소외시키거나 깎아내리기도 합니다. 남성 건축가가 건축사업을 할 때 여성 건축가와 끝까지 함께 작업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초반 아이디어 작업은 같이 하더라도 중요한 시점에서 여성을 배제하고 남성 건축가들끼리 작업을 하곤 합니다. 건축이 남성의 분야라고 여겨 여성 건축가를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편견 때문이지요.

서혜림(이하 서): 우선 여성 사회인에게는 남성보다 책임져야 할 일이 많습니다. 가정 생활과 직장 생활을 병행하다보면 책임감이 2배가 되기 때문입니다. 건축가 역시 마찬가집니다. 건축가는 많은 책을 읽으면서 공부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영감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성 건축가는 육아에도 신경쓰며 사무실도 꾸려야하기 때문에 쉽지가 않아요. 그런 여유가 없는 게 답답하기도 하고 아쉽습니다. 제가 처음 건축사무소를 시작했을 때, 우리 직원들은 남녀의 비율이 같았습니다. 그런데 실력있고 능력있던 여자 후배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니까 버티질 못하더군요. 건축가는 장기적인 작업과 밤 새야하는 일도 많은데 비해 금전적 대가는 적은 고달픈 직업이죠. 그런 이유로 아까운 여자 후배들을 많이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그 결과 안타깝게도 지금 제 사무실의 직원은 모두 남자들뿐입니다. 여성건축가라고 해서 ‘여성’이라는 것에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에게 맞는 적성을 살려서 한 사회인으로서의 위치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남성과 여성을 가르지 마세요. 이 세상은 두 젠더가 섞여서 살아가는 곳이고, 앞으로는 그런 문화가 더 많이 만들어질테니까요. ­

-여성 건축가의 경쟁력은 무엇인가요

김: 사실 여성이 건축가로 커가는 과정에는 경쟁력을 찾기 힘듭니다. 사람들이 여성 건축가에게 기대를 하지 않기에 일도 쉽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여성 건축가에게는 남성에 비해 기회가 적은 편이지요. 그러나 이 과정을 모두 견디고 건축가의 입지를 잡게되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건축가로서 여성이 갖는 가장 큰 이점은 신뢰도가 높다는 것입니다. 건축분야는 계약을 위한 접대 문화와 로비의 관행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요. 그러나 여성은 남성에 비해 이런 문화에 익숙하지 못해서 돈에 대해 깨끗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또 여성 건축가는 성실함이 큰 경쟁력입니다. 완공 후 문제가 생기면, 여성 건축가가 남성보다 AS를 꼼꼼히 해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과 친밀하게 지내는 것도 장점으로 작용하지요. 앞으로 사회에서 신뢰도는 더욱 중요해 질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장점을 잘 살린다면 여성 건축가의 입지는 더욱 넓어질 것입니다.

서: ‘존 헤이덕(John hejduk)’이라는 건축가가 있습니다. 제가 아주 존경하는 분이고 그 분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저의 정신적 스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제까지 남성의 숨결로 잉태된 도시·건축물을 많이 봤지만, 앞으로는 여성의 숨결이 들어간 건축물을 기다린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건축 분야에는 여성의 숨결이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건축 분야는 오래된 역사에 비해, 여성의 참여가 적었습니다. 그로 인해 여성의 건축물은 좀더 색다른 제안이라고 받아 들여질 수도 있습니다. 기존에 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선함’이 경쟁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겠지요. 그것을 강점으로 키우되, 그 안에서 건축가만의 색깔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배운 건축은 남자들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기존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무언가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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