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미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와 저우언라이 총리의 ‘핑퐁외교’를 위한 초석이 다져지던 곳. 1989년 천안문 사태의 모태가 됐던 자오쯔양과 고르바초프의 역사적인 중소화해가 이뤄지던 곳.? 1992년 한국과 중국의 수교가 이뤄진 곳......”


수많은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화려한 이력을 지닌 이 곳은 어디일까. 바로 현재 중국의 국빈관이자 회의장인 조어대(釣魚臺)다. 조어대는 금나라 장종 황제가 낚시를 즐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낚시터’라는 뜻을 지닌다. 이름이 뜻하는 대로 국가 원수들은 조어대에서 굵고 커다란 역사적 사건들의 성과를 낚았다.

19일(월) 조어대에서는 다시 한번 역사의 흐름이 바뀌었다. 북한의 ‘핵포기’라는 큰 물고기를 낚은 것이다. 남북한을 비롯한 6개 참가국은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의 불가침과 경수로 제공을 추후에 논의키로 하는 등” 6개 조항에 합의했다. 제4차 6자회담 초반인 지난 7월 말, “조어대에서 대어(大魚)를 낚자”던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부 상무 부부장의 말이 현실이 된 것이다.

6자회담이 타결되자 우리나라는 의기양양한 태도를 보였다. 대통령·외교통상부·각 정당의 대표·언론들은 “한국 외교가 발전했다” 며 서로를 칭찬한다. “북한이 핵을 포기했다”는 결과만을 연일 자랑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자. 이번 6자회담에서 참가국들은 대어만 낚았을 뿐 그 대어를 어떻게 하면 잘 요리할 수 있는지, 추후 사정에 대한 논의를 모호하게 진행했다. 예컨대 경수로 문제 논의 시점을 ‘적당한 시기’로 얼버무린 것이다. 합의문이 타결된 지 하루도 되지 않아 북한은 이 모호한 조항의 허점을 찌르며 “경수로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그 후 핵포기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미국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 전에는 경수로 문제는 해결하지 않는다”고 대응했다. 모호한 조항 아래 서로가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아전인수(我田引水)’식이다. 이에 축제 분위기였던 한국 언론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북한이 핵을 포기했다’는 보도 대신 공동성명 문안이 모호했다는 보도로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이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대어를 낚았다’는 성과에만 자화자찬할 것이 아니라 낚은 대어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함께 낚은 동료들의 의도는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봤어야 한다. 어렵게 도달한 결과가 ‘동상이몽’으로 끝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바둑을 잘 두기 위한 10가지 비결인 ‘위기십결’(圍期十訣)’ 중 ‘입계의완(入界誼緩)’과 ‘공피고아(攻彼顧我)’라는 말이 있다. 입계의완은 상대방의 숨은 의도·전략 등을 꼼꼼히 따진 뒤 수를 놓으라는 계책이고 공피고아는 수롤 놓은 다음 스스로를 돌아 봐야 하며, 나에게 약점은 없는지 혹은 상대로부터 반격을 당할 여지는 없는지를 살피라는 계책이다. 우리 나라에게 필요한 것은 입계의완과 공피고아 정신이다. 눈에 보이는 큰 결과만 볼 것이 아니라 대어를 함께 낚은 동료들을 ‘입계의완’하여 살피고, ‘공피고아’로 더욱 큰 대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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