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알고 지내던 언니에게 한 3년만에 전화를 걸었다.
“나 누구게”로 첫 마디를 시작하고 그렇게 한참을 궁금하게 만들다가 내 이름을 밝혔더니, 그 언니 까르르 웃으면서 말한다. “웬 애기가 장난전화 하나 했네∼”

내 목소리는 어린아이처럼 유약한 느낌이 난다. 얼굴과 몸은 그나마 대학생 나이에 맞게 컸는데 목소리만큼은 피터팬 증후군이라도 걸렸나 보다. 오랜만에 만나는 초등학교 동창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목소리랑 말투는 그대로다, 야!”

사정이 이렇다보니 그동안 목소리 귀엽다는 말도 종종 들었다. 사실 그보다 더 많이 들은 말은 귀여운 척 한다는 말이다. 조금더 솔직(?)한 친구는 역겹다고 놀리기도 했지만 뭐 개의치는 않았다. 친구들 말이 장난이건 진심이건 간에 어쨌든 내 목소리나 말투 때문에 피해 보는 일은 없이 살아왔다.

그런데 학보사에 들어오고 나서야 나의 이 어린 목소리와 말투가 안 좋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취재를 하다보면 취재원에게 만만하게 보이지 말아야 할 경우가 생긴다. 특히 고발 기사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박력있게 질문을 해야 하는데 이 어린 목소리는 자칫 취재원이 나를 얕잡아보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으니까.

수습 시절, 여리여리 가느다란 내 목소리 때문에 선배들이 걱정의 말을 건넨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목소리를 보완하기 위해 말투라도 어른스럽게 바꾸려고 해봤다. 그런데 20년동안 쌓아온 말투에 ‘가식’을 덮어 씌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조금만 덜 집중하면 곧 예의 그 앵앵대는 말투로 돌아온다.

정기자가 된 이후에는 좀더 성숙한, 좀더 기자다운 목소리로 취재하는 것이 나의 숨겨진 목표였다. 흠흠. 아아. 목을 가다듬고 취재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슬로라이프’ 취재를 하면서 경남대 김종덕 교수님께 이것저것 물어보고 전화를 끊으려던 그 때, 교수님이 되려 내게 질문을 하셨다.

“그런데 몇학년이에요?”
“2학년이요.”
“아이고, 1학년인 줄 알았네”

어색한 웃음으로 마무리 지었지만 마음은 씁쓸했다. 나름대로 노력한 어른스러운 말투였는데. ‘비밀의 화원’ 취재 때문에 전화했던 고학번 선배님도 인터뷰 후 대뜸 몇 학번이냐고 묻는다. 04라고 답했더니 역시나 “목소리가 애기같다”는 말이 되돌아온다.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타고난 내 목소리가 이렇다는 것. 목표를 바꿔야겠다. 이 목소리로도 취재원에게 어리거나 쉽게 보이지 않도록 똑부러지게 질문하는 것으로. 그럴려면 사전 취재를 아주 풍부하게 해서 인터뷰 준비를 철저히 해야겠지? 그래, 진작 이런 식으로 생각했어야 하는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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