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비공개판 ‘못다한 이야기’에 이은 ‘못다한 이야기’ 2판이다. 비공개 판을 써놓고 보니 인생 넋두리만 가득한 탓에 애늙은이 이미지로 보이고 싶지 않아 폐기처분해 버렸다. 비공개 못다한 이야기에서 한 가지만 따오자면, 나와 기사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인인 나는 기독교 동아리 수에 대한 비판기사를 썼다. 사실 나는 학보사에 들어오기 전에는 우리학교의 역사 깊은 기독교 동아리를 들 생각이었다. 그런 내가 기독교 동아리 성향을 운운하며 취재를 할 줄이야.

 #.1 고민

내 친구들 중 일부는 기독교 동아리에서 활동 중이다. 취재를 시작하기 전에 제일 두려웠던 것은 바로 친구들이었다. 윤곽이 잡힌 기획의 방향은(물론 취재하면서 수정가능하다.) 기독교 동아리의 수와 기독교와 관련된 불미스러운 사건들에 대한 지적이었다.

기획에 대해 한 친구는 “너 기사 잘 써야겠다. 민감하기도 하지만, 잘못했다가 네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에 더 비난을 받을지도 몰라”라고 말했다. 친구는 내가 걱정스럽다고 했다. 또 비겁하지만 다른 친구에게 맡기면 안되느냐고 물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그 기사는 예정대로 내 차지가 됐다. 취재를 하는 내내 친구의 말은 내 가슴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2 시치미

취재가 끝나고 나니 하는 이야기지만 취재 중 나는 무교인 양 행동했다. 친구의 말 때문만은 아니다. 충분히 아는 이야기도 다시 한 번 듣고,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질문했다. 그들의 신앙에 대한 내 생각이 취재에 무심코 녹아들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또 그 사람들이 나를 배신자로 볼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역시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취재를 하면서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얕은 지식이 꽤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3 기사. 그리고 얌전한 항의

기사는 무사히 나왔다. 취재란 것이 하고 또 해도 계속 새로운 것이 나오기 때문에 기사가 썩 만족스럽진 않았다. 그러나 우려했던 기독교 자체의 비판이 아니었던 점은 다행이었다. 그리고 정기자가 되어 쓴 기사 중 가장 길고 쉽게 쓴 기사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확히 화요일, 친절한 동아리인으로부터 얌전한 항의가 들어왔다. 기사 옆에 작게 실린 표 내에 자기 동아리의 활동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받은 자료를 그대로 실은 거라 내 잘못은 아니었지만 내가 쓴 기사에 아쉬워하는 모습이 못내 미안했다.

이렇게 건 한 달을 낑낑대던 기사가 끝이 났다. 마무리까지 아주 깔끔(?)하게. 이렇게 긴 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한 이유는 나와 기사의 관계를 밝히고 싶어서다.

1. 기자는 쓰고 싶은 기사만 쓰는 것은 아니다.

2. 기자는 가끔 가면을 쓴다.

 3. 기자는 자기 기사를 심하게 아낀다.(항의한 사람마저도 사랑스럽다)

 3번의 이유 때문에 속상한 일도 많다. 내 기사인데, 지면에 나온 최종판 기사가 내 맘에 영 안들면 마치 기사에 생명이 있는 듯이 그들을 보듬어 주고 싶다. “괜찮아, 다음엔 더 잘 써줄게” 혹은 “잠깐만 눈감고 뜨면 다음주야” 라는 말도 안되는 위로들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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