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독자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단 몇 분 만에 기사를 읽어내리면 끝나니까. 독자가 아는 것이 있다면 기자가 얼마나 열심히 뛰지 않았나 하는 것 정도랄까?

'기사 작성은 장난이 아니다. 그러므로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 얼마 전 교육을 통해 이 말을 들으면서 나는 짧고도 힘들었던 수습기자 생활을 돌아보았다. '나는 얼마나 진지하게 임하고 있었나?'를 생각해보니 나의 안일한 태도가 떠올라 부끄러워졌다.

친구들에게 힘들다고 피곤하다는 말은 허풍이 되어 있었다. 매사를 즐겁게 하리라 마음먹었던 내 다짐은 '즐겁게'·'신나게' 가 아니라 '편하게'·'슬슬'로 바뀌어 있었다.

1272호 제작에서 나의 허술함은 여실히 드러났다. 빽키 언니와 소통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취재도 엉성하게 해 내 바이라인을 달고 나가는 기사는 단 한개, 그것도 항의전화를 받았으니... 故 김동일 교수님이 성남 영생원에 안치되었다는 내 기사는 고인이 되신 분을 두번 죽이는 일과 다름없었다. 성남 영생원은 화장터이기 때문에 그곳에는 고인의 유골이 안치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자리를 빌어서 말씀드리고 싶다. 故 김동일 교수님, 정말 죄송합니다.

추석을 맞아 학보사 활동을 하지 않는 몸은 편했을지 몰라도 마음은 불편했다. 원인은 우울함과 자책감이었다. 앞으로 나에게 주어질 수많으느 취재와 기사를 두고 벌써부터 이렇게 실수연발을 하고 있으니, 앞으로 나의 학보사 생활은 불 보듯 뻔하다.

하지만 나에게 다시 힘을 준 것은 딸이 기자라고 자랑하는 우리 부모님과 같은 공간에서 동고동락하는 학보가 식구들, 학보를 꼬박꼬박 읽어주는 친구·선배들이었다.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취재를 빨리, 정확하게 끝내서 내 바이라인을 부끄럽게 하지 않겠다고.

궁극적으로는 독자에게도 읽기 편한 기사를 쓰자고. 첫 술에 배가 부르겠냐만은 앞으로 계속 다짐하고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런날도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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