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부터 적대관계에서 서로 으르렁거려온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고 있다. 강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큰 바람이 불어 배가 뒤집히려 한다면 둘은 어떻게 할까. 오나라 사람이나 월나라 사람은 평소의 적개심을 잊고 서로 왼손 오른손이 돼 필사적으로 도울 것이다. ‘오월동주(吳越同舟)’란 바로 여기서 유래한 말이다.

전차(戰車)의 말들을 서로 단단히 붙들어 매고 바퀴를 땅에 묻고서 적의 공격에 대비해 방어해봤자 최후에 의지가 되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의지가 되는 것은 필사적으로 뭉친 병사들의 마음이다.

이와 비슷한 예는 삼국지의 ‘적벽대전’에서도 나타난다. 오나라의 손권과 촉나라의 유비측 진영이 손을 맞잡고 위나라의 조조를 물리치기 위해 계략을 짠다. 유비는 제갈량의 책략을 받아들여 이를 이루기 위해 제갈량을 동오로 보낸다.

제갈량의 뛰어난 언변으로 손권의 장수였던 주유는 유비와 연계해 싸울 것을 권하고 위와 촉이 하나로 뜻을 모아 승리를 거둔다. 서로 길은 다르지만 조조를 물리치겠다는 하나의 목표를 두고 오나라와 촉나라가 협력해 원하는 결과를 얻은 것이다.

지난 주 노무현 대통령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청와대 회담이 아무런 성과없이 끝났다. 회담은 연정(연합정부)에 대한 양측의 견해차만 확인한 것에 그쳤을 뿐이다. 여·야 간 서로의 주장만 되풀이하다 사실상 회담이 결렬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서로 적대 관계에 있는 오나라와 월나라 사람도 같은 배 안에서 어려움에 닥치면 서로 협력한다는데 ‘한 나라’라는 배의 키를 잡고 있는 여·야의 두 지도자가 이렇듯 서로 평행선만 달리고 있는 것이다.

자신과 뜻이 맞지 않는다고 상대방의 의견을 묵살하고 자신의 고집대로 일을 끌어가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대신 하나의 큰 지향점 아래 서로 협력하고 국민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연정에 대한 거절 의사를 밝힌 만큼 연정론을 접고 실질적인 국민의 뜻을 파악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제1야당인 한나라당도 책임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노 대통령의 연정 제안을 무시하는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연정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대통령이 제시한 지역구도 해소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성인(聖人)이란 한자단어의 성(聖)자를 살펴보면 입(口)을 남의 귀(耳)에 대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항상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이 성인이란 의미다. 한 국가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라면 성인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려는 자세를 지녀야 할 것이다. 우리 배의 선장에겐 아직 이 태도가 부족한 듯 하다.

진정으로 국민의 말을,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들을 자세가 갖춰졌을 때 비로소 노 대통령이 원하는 진정한 ‘상생과 포용의 정캄를 구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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