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최근 이 속담에 딱 들어맞는 일이 있다. 지난 8월30일(화) 교육인적자원부(교육부)가 발표한 ‘대학논술가이드’가 그것이다. 논술가이드에 따르면 앞으로 치뤄질 대입논술고사에서는 영어 제시문이 나오거나, 수학·과학 풀이 과정을 요구하는 문제는 출제할 수 없다. 또 단답형과 암기를 요하는 문제도 금지된다. 당장 시험을 코앞에 둔 수험생과 문제를 출제하는 대학은 눈앞이 깜깜할 지경이다.

교육부는 ‘대학이 논술가이드에서 제시한 요구사항을 어길 경우, 정원을 감축하거나 예산지원을 삭감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는 2학기 수시 원서접수가 10여일 가량 남은 시점에서 대학이 어쩔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란 배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번에 제시된 논술가이드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특정 교과의 암기 능력을 요하는 문제를 금지한다고 할 때, 그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만약 제시문에서 ‘암기를 통해 습득 가능한 배경지식’을 끌어와야 풀 수 있는 문제가 출제된다면, 교육부는 이를 놓고 위배냐 아니냐를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출제 문항를 두고 정당성 시비가 일어난다면 과연 교육부는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을까. 심의 결과, 대학이 논술가이드를 위배한 것으로 판정될지라도 이미 시험을 치른 수험생의 전형 결과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입시만을 바라보고 전력투구한 수험생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될 뿐이다.

대학이 대입시험에 논술이 도입한 것은 변별력 없는 고교내신·수능을 통해서는 우수 학생 선별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부 논술가이드에는 ‘교과지식의 깊이를 측정해도, 고교 수준 이상의 지식을 요구해서도 안되며,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는 문제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과연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할 대입시험에서 정답이 없는 논술로 어떻게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와 함께 대학이 이에 걸맞는 창의력·논리력·변별력을 갖춘 문제를 얼마나 출제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동안 대학들이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탄생시켰던 ‘영어논술’·‘수리논술’처럼 이번에도 모호한 기준의 빈틈을 찾아 ‘변종논술’을 만들어낼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교육부는 눈에 불을 켜고 이를 찾아내려 할 것이다. 이처럼 이들의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가 쉽게 끝나지 않을 듯 보인다.

그동안 탁상공론만을 펼쳐온 교육부는 이제 눈과 귀를 열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당사자인 대학과 학생들은 어떻게 느끼는지를 무시한 채, 근시안적 제도를 만들어낸다 해도 절대 근본 원인은 해결될 수 없다. 이들의 요구가 ‘변화를 두려워하는 외침’일 뿐인지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인지 제대로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제대로 된 ‘가이드’로서 길을 안내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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