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을 읽어 본 적이 있는가? 총 12장 116조의 근로기준법을 출력해 놓고 나는 돌연 아연해졌다. 처음 대하는 법률문장들이 생경하게 느껴져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거리감. 근로기준법과 나의 거리감 때문이었다. 대학생인 나와 근로기준법 사이에서 과연 어떤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이화인 162명 중 143명이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다고 한다. 짧게든 길게든 대다수의 이화인이 노동의 경험을 갖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생각은 내가 노동자라는 인식까지 발전하지는 않는다. 아직 노동이란 화두로부터 거리를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소일거리로 용돈이나 벌다가 언제든 때려칠 수 있는 대학생 아르바이트생이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인 할 수 없는 것은 근로기준법의 항목 하나하나가 나의 삶에 관여하는 날이 올 거라는 사실이다. 아니 벌써 그렇다. 야간수당을 무시한 월급봉투를 받아쥘 때,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시급을 받아야 할 때, 우리는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경험한다.

92년 제정 이래, 근로기준법은 억압받는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호하는 중요한 기반이었다. 우리도 그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갈 것이다. 졸업 후 아주 긴 시간 동안 우리에게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이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근로기준법을 읽자. 내가 노동자라는 사실을 가슴에 품은 채.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