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개통·취업·결혼 등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 맺어

『가난하지만 능력있고 성실한 한 청년이 있다. 그는 어렵사리 들어간 공장에서 쉴 틈 없이 일한다. 그런 그를 눈여겨본 공장의 사장은 청년을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그의 사정을 헤아려 월급을 가불해주고 학비까지 빌려주게 된다. 결국 그 청년은 사장의 도움과 자신의 실력을 바탕으로 성공하게 되고 사장에게 은혜를 갚을 수 있게 된다』

다큐멘터리 ‘성공시대’에 종종 등장했던 사연이다. 여기서 공장 사장이 청년에 대해 아낌없는 지원을 베푼 데에는 중요한 요소가 있다. 그것은 바로 ‘신용’이다. 신용은 상대방이 장래에 대가를 치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인정함으로써 물건·돈을 빌려주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신용이 이런 경제적 의미 이상을 갖는 시대가 왔다. 신용이 개인의 모든 것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 것이다. 평소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신용으로 평가 받고 있다. 대학생들이 이를 직접 체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학자금 대출 제도. 올해 2학기부터 학자금 대출 제도가 정부보증 방식으로 바뀌면서 학생 자신의 신용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바뀐 제도에서는 학생의 신용과 성적을 기준으로 대출 여부가 결정된다. 카드 값을 연체했거나 다른 대출금이 많은 경우 등 불량한 정보가 있을 때 대출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이번 학자금 대출 신청자인 13만4천284명 중 78명은 신용때문에 대출을 거절당했다.

학자금신용보증기금 수탁기관 한국주택공사 학자금신용보증부 유기윤 팀장은 “전국은행연합회의 신용정보평가시스템에서 신용상태에 문제가 있는 ‘신용유의자’로 평가된 학생에게는 대출을 해주기 어렵다”고 전했다. 인터넷 연결과 휴대폰 개통을 할 때도 신용은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신용을 조회한 후 불량한 정보가 없을 경우에만 계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한국신용정보 CB사업본부 김병욱 과장은 “모든 후불 거래는 신용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라며 “공공재가 아닌 사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할 때는 기본적으로 신용조회가 이뤄진다”고 밝혔다.

 미국에서는 ‘피코(PICO)’제도를 통해 이미 개인의 신용이 삶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주고 있다. 피코는 금융거래 실적을 바탕으로 신용점수를 매기고 그 결과를 각 금융기관에 통보하는 제도다. 신용점수가 나쁠 경우 금융거래는 물론 유선전화 연결이나 중고차 구매 등 많은 점에서 제약이 있다. 삼성카드 소비자보호팀 김정선 씨는 “거래실적이 신용점수의 바탕이 되기 때문에 처음 유학이나 이민을 간 사람의 경우 거래실적이 없어 대출 등 금융거래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신용으로 개인의 모든 것을 평가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신용이 중요해진만큼 ‘신용정보’와 관련된 사업 역시 그 전망을 인정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크레딧뷰로’(CB) 라는 개념이 생소하다.  그러나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1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CB사업이란 개인·단체에 관한 신용정보를 수집해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이를 금융기관에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금융기관은 제공받은 신용정보를 대출·예금 판매 등에 활용한다. 신용정보회사에서 수집하는 내용은 불량거래 정보와 함께 개인의 신용을 평가할 수 있는 모든 정보다. 카드사용·금융거래 실적은 물론 심지어 휴대폰 연체기록까지 정보 수집 대상에 포함된다. 취업을 할 때도 신용은 구직자를 평가하는 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신용 등급을 요구하는 방식은 달라졌다. 올해 4월 법률이 개정되기 전에는 고용주가 마음대로 구직자의 신용을 조회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본인의 동의가 없으면 신용을 조회할 수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 기업들은 입사 시에 보증인이나 보증보험을 요구하고 있다. SK C&C 채용 담당 김화균 대리는 “만약의 사고에 대비해 보증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신용이 나쁜 사람은 자기 관리를 못했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며 “신용이 평가의 전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지만 낮은 신용의 사람에게는 좋은 평가가 힘들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신용이 결혼에까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결혼정보회사 (주)좋은 만남 ‘선우’ 홍보팀 정미지 씨는 “현재는 신원이 불명확하거나 소득원이 불분명한 경우 등 예외적으로만 회원 가입 시 개인신용평가서를 요구하고 있다”며 “향후 이런 신용 평가를 점진적으로 확대 시행할 방침도 논의중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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