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을 곳, 내가 속한 곳
내가 있을 곳, 내가 속한 곳
  • 이화영 기자
  • 승인 2005.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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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를 하다보면 다양한 취재원들을 만나게 된다. 이대학보를 싫어하는 사람부터 무관심으로 지나쳐버리는 사람들. 또 극도로 이대학보를 좋아하는 사람들 등.

그 많은 사람들 중 인터뷰하기 가장 어려운 사람은 다름 아닌 이대학보 기자를 지망하는 학생이다.
“안녕하세요. 이대학보 사회부 이화영기자입니다. 반갑습니다”하며 명함을 건넨다. 명함을 건네든 취재원은 상기된 표정으로 답한다.“어머∼안녕하세요. 저 2학기때 이대학보 시험보려구요. 너무 부러워요”라며 말하는 얼굴에는 웃음이 번진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학보사기자 지망생인 취재원은 질문 하나하나에 자세하게 그리고 더 많은 정보를 주기 위해 노력한다. 친절한 말투는 물론이고 늘 웃음을 띄고 질문하는 기자에게 ‘뜨거운’시선을 보내며 답한다. 그럴때면 나는 미소로 화답하며 인터뷰를 이끌어 나간다. 그러나 그 미소는 어떻게든 긴장을 감추려는 나의 어색한 웃음이다.

다른 취재원에게는 몰라도 적어도 이대학보 기자가 되고 싶다는 그 학생에게는 ‘이대학보 기자는 이럴꺼야’라는 이미지를 깨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오히려 차분하고 차갑게 취재원에게 질문을 건넨다.

그러다가도 학보기자 지망생인 학생이 “학보사 어때요? 많이 힘들어요?”라는 말을 꺼내면 나도 모르게 수다의 봇물이 터진다. 학보사 기자를 하면서 경험 했던 일, 힘든 일 등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인터뷰를 마치고 취재원과 헤어지고 나면 근심이 밀려온다.

“아 내가 너무 말이 많았나…헤퍼보였나”하며 인터뷰 할때 불명확한 질문은 한 것은 없는지, 이대학보 기자라는 이름을 단 내게 실망한 것은 없었는지, 이대학보에 대해 나로 인해 실망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이대학보’소속 기자로서의 책임감이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가 이대생이라고 말할 때 ‘이대’라는 소속감에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소속감이라는 것은 그만큼 개인에게 큰 책임을 요한다. 나는 이제 수습기자를 막 마치고 사회부 정기자로 소속됐다. 이제는 ‘이대학보’라는 소속아래 ‘사회부’라는 소속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그래서 못다한 이야기를 통해 한가지 다짐한다.

이대학보라는 하나의 신문에, 사회면이라는 하나의 면에 그리고 그 안에 이화영이라는 바이라인에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취재를 할 것을 말이다. 그래서 이대학보를 보는 모든 독자에게 부끄럽지 않은 기자가 되겠노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