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란 이름이 무색하게 느껴질 때
기자란 이름이 무색하게 느껴질 때
  • 김혜윤 기자
  • 승인 2005.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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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의 1270호 제작! 첫 제작이라는 설렘과 드디어 내 바이라인이 실린 기사가 나온다는 기대감,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과 긴장감을 가진 채 취재에 들어갔다. 기사꺼리를 찾느라 학교 이곳저곳을 돌아다닌지 2시간. 발은 퉁퉁 붓고, 땀이 비오듯 흘렀지만 기사꺼리를 찾았다는 사실이 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었다.

드디어 기사를 역분받은 순간, 난 놀랐다. 아니 놀랐다기 보다는 걱정이 됐다. 탑기사인 ‘학교 구조조정 기사’를 맡게 된 것이었다. 사안이 크고 민감했기에 기쁨보다 걱정이 앞섰다. ‘기사를 잘못써서 외부로부터 항의전화를 받는 건 아닌가 ’, ‘내가 학보사 망신시키는 것 아닌갗등의 불안감을 안고 취재에 들어갔다.

그렇게 삼일이 흐른 후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기사는 내 손에서 떠나갔다. 예민한 사안이라 부장이 이를 대신 쓰기로 한 것이다. 짐을 덜어준 부장이 구세주처럼 느껴지는 한편, 지금까지 취재했던 시간들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비록 걱정은 많았지만, 수습기자로서의 첫기사였기에 기사를 쓰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다. 참 아니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삽질’. 학보사 용어로 기자가 취재하던 기사가 무산된 것을 말한다. 그런 일을 겪고 나니, 기자들이 자신의 기사에 왜 그렇게 애착을 갖고, 사건을 터트리기 위해 노력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어려운 취재를 맡게 됐을 때 고생은 배로 하지만, 기자로서 기사를 쓰지 않는 허무함은 그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번주엔 나도 이대학보사 기자로서 당당히 기사를 맡았다. 그것도 탑으로! 걱정되고 부담스럽긴 마찬가지지만 신문에 실릴 내 기사를 생각하면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또 이번 일을 계기로 어떤 기사든 겁먹지 않고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하는 기자가 될 것이라 결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