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가작 이현지(회화판화·4)씨

 아무리 생각해 봐도 틀림없다. 조니와 m은 동일 인물임에 틀림없다.

 새로 들어온 과자들을 진열대에 나란히 진열하는 데 열중하고 있는 m의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가 쳐다보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 애는 과자 봉지를 흐트러지지 않게 나란히 정렬해 두는 일에 온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다. 아마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이 아이는 아랑곳 않고 과자 봉지들을 정리하고 있을 것이다. 별 것도 아닌 일에 혼신을 기울이는 진지한 옆모습이 m과 닮았다.

 “도와줄까?”

 여느 때와는 달리 손님도 별로 없었기에, 난 카운터를 나와 m의 곁으로 갔다.

 “이 잡지들 좀 꽂아 줄래?”

 손님이 많은 편이라서 부지런히 바코드를 찍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던 편의점에 이상하게도 손님이 뚝 끊겼다. 그래서 난 m을 도와 새로 나온 잡지들을 진열대에 꽂았다. 편의점 한 구석에 마련된 간이 책꽂이에는 연예계 가십 거리를 다룬 얇은 잡지들이 대부분이었다. 몇 권 안 되는 여행 잡지들은 제일 아래 칸에 꽂혀져 있다. <트래블 로드>라는 제목의 잡지 표지에 눈길이 갔다. 여행 잡지로서는 드물게 표지가 사진이 아니라 그림이었기 때문이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베이지색의 깔끔한 주택과 큰 수영장. 노란 다이빙대. 그리고 나란히 서 있는 야자수 두 그루. 누군가가 막 물 속에 뛰어든 직후인 듯, 고요한 수영장 한 가운데엔 물거품들이 춤추고 있다. 나른한 오후의 적막을 ‘풍덩’ 하고 깨는 물보라 소리가 귀에 생생히 들리는 듯 했다. 바람이 제법 쌀쌀해지고, 공기가 차츰차츰 물기를 잃어가는 요즘 같은 늦가을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 그림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들었다. 잡지 제목 밑에는 큰 글씨로 ‘캘리포니아 드림’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이번 달의 특집 기사는 캘리포니아 여행인가 보다. 캘리포니아. 캘리포니아라……한여름에 들었다면 별로 낯설지 않게 들렸을 단어가 이상하게도 낯설게 들린다. 몇 만 광년은 떨어진 먼 혹성의 언어처럼 들린다.

 “뭐해?”

 어느새 과자 봉지 진열을 다 끝낸 m이 가까이 다가왔다. 내가 들고 있는 여행 잡지의 표지를 바라본다.

 “캘리포니아네.”

 “응. 캘리포니아 특집 인가봐…… 표지가 특이해.”

 “아, 나 이 그림 본 적 있어. 데이비드 어쩌구 하는 사람의 작품이었던 것 같은데. 미안, 잘 생각이 안 난다.”

 m은 쑥스러운 듯 고개를 떨구고 살짝 웃는다. 웃을 때의 m의 눈은 초승달처럼 가늘어진다. 난 웃을 때의 m의 눈이 좋다. 언제부터인가 목에 걸고 나오던 가느다란 금빛 목걸이가 햇살에 반짝인다. 난 남자아이가 장신구를 하고 다니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이니셜처럼 보이는 알파벳 모양의 장식이 달려 있는 금빛 목걸이는 m에게 잘 어울린다. m에겐 반짝이는 것이 잘 어울린다. 

 “이 그림 유명한 그림이야?”

 “그런 것 같아. 미술사에 관한 교양 수업을 들을 때 잠깐 본 것 같아.”

 “그래? 난 이 그림이 마음에 들어. 집이랑 수영장이랑 다이빙대가 마음에 들어. 뭐랄까……그래, 마치 시체 같아. 죽어 있는 물체들 같아. 보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 쓰지 않고 도도하게 존재하는……”

 “모형처럼?”

 “그래, 맞아. 얘네는 정말 모형 같아. 이 그림은 실제로 존재하는 집이랑 수영장을 그렸다기보다는 꼭 모형을 보고 그린 것 같아. 특히 이 야자수를 봐. 꼭 플라스틱으로 만든 장난감 같지 않아? 요즘은 말야, 이상하게 살아 있는 것보다는 죽어 있는 게 좋아. 딱딱하고 차가운 게 좋아.”

“하하……너 정말 특이하다. 왜 차갑고 딱딱한 게 좋아?”

“아무런 집착도 욕심도 없어 보여서 좋아. 요즘은 왠지 모르게 살아 있는 것들보다는 딱딱한 무생물이 좋은 거 있지……아니, 무생물이 좋다기보다는 무생물 같은 느낌이 좋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고 이것 저것 참견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지켜보는……풋, 내가 생각해도 정말 이상하다.”

 “계절 타는 거 아냐? 가을이잖아.”

 “그런가?”

 정말 이상했다. 그림 속의 집들과 수영장과 야자수는 전혀 아름답지 않다. 유명한 화가의 그림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파스텔톤의 아크릴로 그린 차갑고 무미건조한 풍경들은  꼭 시체 같다. 그런데도 난 그 시체 같은 풍경들, 플라스틱 모형 같은 풍경들이 좋았다. 왠지 모르게 마음에 와 닿는다.  

 “캘리포니아는 지금도 따뜻한가 봐……”

 카운터로 돌아온 m이 혼잣말을 했다.

 “그러게……”

 “캘리포니아에 가 본 적 있어?”

 “있을 리가 있나. 난 외국에 가 본 적이 없어.”

 “갑자기 캘리포니아에 가 보고 싶어졌어. 잘 모르긴 해도 왠지 캘리포니아에는, 집집마다 이런 조용한 수영장이 있을 것 같아. 그런 곳에서 혼자 수영해 보고 싶어. 야자수와 다이빙대 밖에 없는 그런 곳에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왠지 아까 죽어 있는 게 좋다고 한 네 기분을 알 것 같아. 아무 참견도 하지 않는, 적막하고 고요한 순간들이 그리워. 네 표현을 빌자면 무생물 같은 느낌들이. 나도 가을 타나 보다. 하하……”

m은 정말로 캘리포니아에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조니도 언젠가 캘리포니아에 관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조니는 내가 여섯 살인가 일곱 살이었던 시절, 함께 놀던 또래의 남자아이이다. 원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동네에서 조니라는 별명으로 통했던 것만은 기억이 난다. 조니는 원래 당시 인기리에 방영되던 만화영화의 주인공 이름인데, 그 아이의 유난히 흰 피부와 갈색 곱슬머리, 갈색 눈동자가 그 만화주인공과 비슷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앨 조니라고 불렀다.

  조니와 해질녘까지 소꿉놀이, 블록 쌓기 놀이 등을 하고 놀던 그 동네는 1년 내내 11월이었다. 못 사는 동네라고 해서 햇살 따스한 날이 없겠느냐마는, 내 기억 속에서 그곳은 항상 음침하고 건조했다. 하늘엔 언제나 무거운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고 뺨을 스치는 바람은 언제나 쌀쌀맞았다. 그렇지만 나와 조니는 마냥 즐겁기만 했다. 모든 어린애들이 그렇듯.

 나의 조니의 집은 동네 한 구석의 낡은 갈색 연립주택 지하에 있었다. 갈색 연립주택은 낡아서 벽에는 쩍쩍 금이 가 있었다. 어른들은 그 금을 볼 때마다 언제 무너질지 몰라 불안하다고 했지만, 난 그 낡은 갈색 연립 주택이 왠지 마음에 들었다. 단지 우리 집이라는 이유 만으로. 단지 나와 우리 가족이 몸 담고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 가족은 그 연립 주택의 지하에 세 들어 살았다.

처음 이사 오던 날, 옆집에 같은 또래의 아이가 산다는 말을 듣고 어머니와 함께 조니의 집을 방문했을 때, 어두침침한 현관 앞에 놓인 빨간 운동화가 유난히도 눈에 띄었다. 화장실 앞에 걸린 무지갯빛 수건은 때에 절어 있었고 곰팡이가 슬은 벽면엔 기도하는 소녀의 그림이 누렇게 변색된 채 걸려 있었다. 집안을 지배하고 있는 가난의 냄새, 변두리의 정취는 우리 집과 닮아 있었기에 난 처음 가는 집인데도 불구하고 쉽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던 것이리라. 난 내 집 들어서듯 아무렇지도 않게 그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현관문 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어린아이용 빨간 운동화만은 그냥 지나쳐 갈 수가 없었다. 그것은 가난하고 지저분한 지하실 전세방 안에서 몹시 이질적인 존재였다. 왠지 낯선 느낌이 들어 자꾸만 쳐다보게 되는 빨간 운동화였다. 몇 번 안 신어서 새것처럼 말끔한 빨간 운동화는 어두컴컴하고 칙칙한 집 안에서는 무척이나 이색적인 존재였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생동감이 느껴지는 빨간색이었다. 운동화를 과일에 비유하는 건 좀 엉뚱하지만 조니의 빨간 운동화는 해질녘의 시장바닥, 낡은 갈색 리어카 속에서 저녁 햇살을 받아 반짝이던 석류알맹이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좁고 어두컴컴한 집 안에 단 하나 존재하는 유일한 밝음이었을 것이다. 생명의 꿈틀거림. 희망의 속삭임.

 빨간 운동화를 신고 짙푸른 점퍼에 흰 체육복 바지를 입은 조니와 나는 매일같이 블록 쌓기 놀이를 하며 놀았다. 가끔씩은 동네 아이들과 갖가지 소꿉놀이 세트를 챙겨 소꿉놀이를 하기도 했고, 여자아이들끼리 모여 종이 인형을 만들기도 했지만, 지금 기억 속에 가장 선명히 남아 있는 놀이는 조니와 함께 했던 블록 쌓기 놀이였다. 조니가 블록으로 투박하고 무거워 보이는 날개가 두 쌍 달리고 유난히도 알록달록하던 우주선을 만들던 날, 난 예쁜 인형의 집을 만들었다. 노란 벽과 빨간 지붕으로 이루어지고 엉성하게나마 굴뚝과 현관도 갖추고 있는 자그마한 인형의 집. 그러나 마론 인형이 들어가기엔 너무 작았다.

 때로는 조니의 집에 걸려있는 누렇게 변색된 기도하는 소녀의 그림을 크레파스로 따라 그려보기도 했다. 곱슬곱슬한 금발과 발그레한 뺨이 너무 예뻤다. 나도 언젠가 크면 저렇게 예쁜 언니가 되겠지? 저렇게 예쁜 금발을 휘날리며 발레를 하면 정말 멋지겠지? 당시의 나는 tv에서 본 발레리나처럼 예쁘게 춤을 추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노란색 크레파스로 기도하는 소녀의 곱슬머리를 따라 그리려 애를 쓸 때, 조니는 옆에 엎드려 프라이팬처럼 생긴 우주정거장을 그리곤 했다. 조니는 어린 남자 아이답게, 우주 비행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우주 비행사가 되는 건 어렵지 않아?, 하고 물어보았다. 난 당시 세상 물정을 어느 정도는 아는 아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조니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내 질문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블록 쌓기에만 전념했다.

 여기엔 우주비행사만 갈 수 있는 레스토랑을 만들자. 레스토랑 이름은……그래, ‘캘리포니아’가 좋겠어.

 캘리포니아가 뭔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음……아마 별 이름일걸. 안드로메다나 카시오페이아처럼.

 순간, 거의 들어 본 적도 없는 이상한 이름들을 많이 알고 있는 조니가 멋지게 보였다. 조니는 계속 레스토랑 이야기를 했다. 레스토랑 ‘캘리포니아’는 회원카드가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야. 메뉴는 우주니까 고형식으로만 준비해야만 해..

 그 얘기는 정말 그럴 듯 하게 들렸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이었던가. 그 동네를 떠나 지금 살고 있는 동네로 이사를 온 이후로 한 번도 조니를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도 가끔씩 조니의 생각이 나곤 한다. 엄마의 푸념 섞인 잔소리가 고막을 괴롭힐 때라든지, 만원지하철에서 사람들에게 떠밀려 기분이 언짢아 졌을 때, 혹은 수업시간에 심하게 졸다가 친구들의 키득거림 속에서 멋쩍게 깨어났을 때 난 조니의 생각을 하곤 했다.

 ‘그 애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나처럼 시시하게 살고 있을까?’

 난 변두리의 이름도 없는 2년제 대학을 나와서, 딱히 취직도 되지 않았기에, 지금은 그냥 편의점 아르바이트 같이 잡다한 아르바이트로 몇 푼 안 되는 돈이나마 모으고 있는 중이다. 친구들이 뭐 하냐고 물어 보면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제대로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런 식으로 아무렇게나 살아갈 무렵, 집 근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m을 처음 만났다. 그것은 가을이 시작될 무렵의 권태로운 오후였다. m은 마치 창문이 열린 틈새로 살짝 스며든 가을 바람과도 같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내 일상에 스며들었다. 그렇지만 m을 만난 것은 기적이었고 마법이었다.

 m은 한 번도 빨간 운동화를 신고 일하러 온 적이 없다. 그렇지만 그 애가 헐렁한 티셔츠와 물 빠진 청바지를 입고 조심스럽게 편의점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던 그 순간부터, 내 마음속의 그 애는 빨간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그 애를 처음부터 보는 순간 불현듯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강렬한 붉은 색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좁고 어두운 방 안에서 유일하게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던 빨간 운동화의 신비로움이.

 “저……아르바이트를 하려고요. 어제 전화 드렸는데……”

 그 애의 목소리는 나직하고 갸날펐지만 어딘지 모르게 장난기가 흘러넘치는 듯 한 느낌이었다. 유난히 흰 피부를 가진 그 애의 다듬어지지 않은 고수머리는 짙은 갈색이었고 눈동자도 머리카락과 같은 색이었다. 잠시 난 멍하니 서 있었다. 우린 언젠가 만난 적이 있어. 왠지 모르게 친근해.

 그렇지만 대놓고 물어보진 않았다. 왠지 내가 입을 열어 “저……우리 전에 만난 적 있죠?” 라든지 “어렸을 때 XX동에 살지 않으셨어요?” 라고 묻는다면 그 순간 그가 마법처럼 연기가 되어 ‘뻥’ 하고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섣불리 입을 뗄 수 없었다. 그렇게 멍한 상태로 몇 초가 흘렀을까? m이 의아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자 퍼뜩 정신이 들었다. 황급하게 대답했다.

 “아, 점장님 오실 때 됐어요.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점장은 6시에 오기로 되어있었다. 조금만 있으면 6시다.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그 애는 잠시 주춤거리다가 멋쩍게 진열대에 진열되어 있는 휴대용 휴지들을 만지작거렸다. 아마도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 멋쩍어 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카운터 옆의 플라스틱의자를 권했다.

 “여기 앉아서 기다리세요. 이제 오실 때가 되었는데……왜 안 오시지?”

m은 잰걸음으로 카운터에 다가왔다. 털썩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에 주저앉은 m은 안절부절 못하는 눈치였다. 괜히 손목을 들고 손목시계를 쳐다보다가, 시선을 유리창 밖으로 옮겼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이력서는 가지고 오셨죠?”

 “아, 예……여기……”

m이 황급히 손에 들고 있던 이력서를 내민다. 왠지 내가 상관이 된 느낌이다. 확실히 m은 또래의 되바라진 아이들과는 다르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풋풋함이 있다.

 “이따 점장님 오시면 보여 드리세요. 경험은 있으세요?”

 물어보나 마나 편의점 같은 곳에서 일해 본 경험이 없을 것이 뻔했다. 어쩔 줄 몰라 하며 안절부절 못하는 몸 눌림이 모든 걸 말해 주고 있었다. 이력서를 들고 편의점 같은 곳에 들어오는 일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아뇨…… 꼭 경험이 있어야 하나요?”

 “그렇진 않아요. 저도 처음 하는 걸요. 여기 일 시작한지 한 달 밖에 안 되었어요.”

 “다행이네요. 나 괜히 걱정 했나……”

 그리고 나서는 아침 햇살 속에서 사라져 가는 희미한 달빛 같은 미소를 흘린다. 그것은 m의 미소였다. 언제나 11월이 계속되던 그 변두리 마을의 미소였다.

  살짝 나이를 물어보았다.

 “몇 살이세요?”

 “20살이에요. 만으로……”

 고집스럽게 ‘만으로’라고 한마디를 덧붙이는 모습이 마치 사춘기 소년처럼 완고해서, 난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럼 한국나이로는 몇 살인가요? 22살?”

 “네.”

 “그럼 저랑 동갑이네요. 말 놓을까요?”

 “예……그러죠.”

 증거가 한 가지 더 늘어났다. 조니가 나와 동갑이었던 것처럼 m도 나와 같은 나이였던 것이다. 심장박동횟수가 갑자기 빨라졌다. 그래. 틀림없어. 그 둘은 동일 인물임에 틀림없어.

 "지금 22살이면…… 학생인가? 아르바이트 하려고 하는 건가?"

 "으음……휴학을 했는데, 별로 할 것도 없어서.."

 m은 싱겁게 웃었다.
"에이……그게 뭐야. 휴학은 뭐 하러 했는데?"

 "음……글쎄? 그냥 학교 다니기 귀찮더라고. 그렇다고 덜컥 휴학해 버리는 것도 웃기지만 말야."

 m은 별로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가볍게 이야기하곤 한다. 그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서울 변두리의 4년제 대학에서 지구환경이 어쩌고 하는 복잡한 이름을 가진 이름의 학과에 적을 두고 있다가 여름이 끝날 무렵 휴학을 했다고 한다. 열심히 돈을 모아 캘리포니아처럼 넓고 따뜻한 곳으로 여행을 갈 예정이라고 한다.

 우주선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던 조니의 눈빛도 얼굴 생김새도 미소도 이제는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m을 처음 보던 순간 왠지 모르게 난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애는 옛날에 나와 함께 놀던 그 애가 틀림없다고.

 여느 아르바이트생처럼 점장에게 이력서를 보이고 나와 함께  편의점 카운터에서 바코드 찍는 일을 하게 된 그 아이는 아무리 보아도 편의점 카운터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자면 그 애는 그 동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남자아이였다. 헐렁한 티셔츠와 가벼운 청바지를 즐겨 입는 팔다리가 길고 약간 마른 듯한 20대 초반의 남자아이. 대학교에 다니며 편의점이나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남자아이. 그렇지만 편의점의 초록색 가운을 두르고 바코드를 찍고 있는 그 애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 보였다. 마치 동화책에 그려진 왕자를 가위로 오려 자동차 광고 사진위에 붙여놓은 것 같다고나 할까. 

 갖가지 담배들과 형형색색의 통조림들, 휴대용 휴지, 콜라 캔 등이 가지런히 진열된 그곳에서 그 애는 완전한 이방인이었다. 그 애가 지닌 천성적인 순진함과 활기 때문에, 그 애는  진열대에 나란히 놓인 무표정하고 무미건조한 무생물들 사이에서 다소 이질적인 존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 애는 마치 더럽고 가난한 지하실 전세방 한 구석에 가지런히 놓인 빨간 운동화와도 같이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 그 애는 그 장소에 꼭 필요한 존재였다. 진열대에 가지런히 놓인 표정 없는 사물들만큼이나 차갑고 냉랭한 편의점의 카운터는 단지 그 애의 몸 눌림으로 인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장소로 변한다. 대학 근처 큰 길 앞에 위치한 편의점은 항상 손님들로 북적거렸고 나와 그 애는 거의 쉴 틈도 없이 바코드를 찍고 가격을 일러주었다.

 ‘천 삼백 원입니다.’

 ‘삼천 원입니다.’

 ‘데워 드릴까요?’

 바코드 찍는 소리가 오후의 끈적거리는 햇살처럼 몸에 척척 감겨 지겨워지기 시작할  무렵, 몰래 그 애 얼굴을 살펴보면 왠지 모르게 끈적거리는 햇살조차 사랑스럽게 느껴지곤 했다. 사실 난 그리 수다스러운 편은 아니지만 그 애의 부드러운 옆모습을 볼 때마다 말을 걸고 싶어 참을 수가 없어진다. 말이 없는 그 애는 주로 묻는 말에만 대답을 할 뿐이었지만 난 그런 대화가 싱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짤막한 대답들 속엔 그 아이의 천성적인 담백함과 진지함이 농축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아이와 대화를 하고 있노라면 위로받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별 거 아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네가 너로 있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야. 이렇게 말해 주는 듯 했다. 사실 타인과의 대화는 힘든 것이다. 우리가 대화라고 나누는 언어들 속에 억지스러운 예의 이상의 것이 얼마나 있겠는가. 어색한 미소와 겉도는 이야기로 서로간의 벽을 허물어보려고 노력은 하긴 하지만 언제나 실패해 버리고 만다. 그렇지만 그 애와의 대화는 달랐다.  

 “‘집에 혼자 있을 때에는 뭘 하니?”

 하고, 물어보았더니 그 애는 예상대로 수줍게 웃으며 ‘글쎄……특별히 하는 건 없는데……’라며 싱겁게 대꾸한다. 그렇지만 난 그 말줄임표 속에 숨어있는 그 애의 언어를 읽을 수 있다. 그 애가 혼자 있을 때 뭘 하든, 아무래도 상관없다. 왠지 모르게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계속 물어 보았다. 그 애의 입을 열게 하는 게 그 당시의 내 취미이자 특기였던 것이다. 

 “그래도 뭔가 좋아하는 게 있을 거 아냐.”

 ‘좋아하는 거라……응, 그렇지, 난 지도책 보는 걸 좋아해. 내셔널 지오그래피 같은 잡지도 좋아하고.’

 ‘그렇구나. 여행이나 역사 같은 데 관심이 많구나.’

 ‘응. 언젠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 사람의 손길이 한 번도 닿지 않은 곳으로. 나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곳으로.’

 ‘그런 곳이 어디 있니?’

 ‘있어, 아직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미개척지가 얼마나 많은데. 캘리포니아에도 그런 곳이 있을 걸?’

 m은 정색을 한다.

 멋진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확실히 m은 너무 착하고 사랑스러워서, 이렇게 시시한 거리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한 번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미개척지, 태고 적의 숨결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고즈넉한 초원이 m에게는 어울린다.


 눈을 초승달처럼 가늘게 뜨고 웃는 그 아이는 어린 시절의 소꿉친구 조니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빨간 운동화를 자주 신던 조니는 블록으로 우주비행선을 만들곤 했다. 진짜 과학자라도 된 듯 진지한 표정으로 블록을 쌓아올리던 그 애 얼굴은 한 치의 파문도 없는 고요하고 깨끗한 호수였다. 그 애가 m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는지 어쨌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왠지 모르게 그렇게 웃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붉은 색과 노란색 블록으로 우주 비행선을 만들던 소년과 그림 속 기도하는 소녀처럼 통통한 빰과 곱슬거리는 금발머리를 지닌 발레리나 소녀는 이미 옛날에 자취를 감추어 버렸지만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영원히 빛나는 눈동자를 지는 우주 비행사 소년은 아직도 빨간 운동화를 신고 있는 것이다.

 이 아이가 내 곁에서 바코드를 찍으며 조금은 어눌한 목소리로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한, 우주비행사 소년과 발레리나 소녀는 영원히 11월이 계속되는 동네에서 영원히 우주비행선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난 m이 좋다.

 사실 ‘좋다’라는 표현이 이 상황에 딱 들어맞는 표현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그 애와 함께 있을 때의 감정은 대체로 특정한 언어의 틀 속에 집어넣기 어렵다. 굳이 비슷한 표현을 찾는다면 지저분한 회색 지하철 바닥에 떨어져 있는 처녀의 입술처럼 싱싱한 장미꽃잎을 발견한 기분, 비가 갠 후 마법처럼 깨끗해진 서울 시가지를 높은 산 위에서 바라보았을 때의 기분이라고나 할까.

 어찌 되었건 언제나 이런 산뜻하고 싱그러운 미소가 곁에 있다면 정산을 잘못해 점장에게 야단을 맞아도, 손님들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해 욕을 먹더라도, 고개를 숙이고 우울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대신 웃는 얼굴로 떳떳하게 거리를 활보할 수 있을 듯 했다.

 어린 시절을 인생의 황금기처럼 묘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때가 좋았지……’ 라는 식으로. 물론 어린 시절이라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니다. (그들도 아마 알고 있을 거다.) 항상 가지고 싶은 건 가질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았고, 돈이 없으면 어린애나 어른이나 똑같이 고생하기 마련이다.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그렇다. 그렇지만 역시 세월이란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을 빛바랜 사진처럼 그윽한 정취로 바꿀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는 법이라서, 그 시절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인간적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적어도 이슬이 맺힌 붉은 장미꽃잎을 보면 가슴이 설레었고, 뭉게구름이 토끼 모양으로 뭉쳐 있는 것만 보아도 왠지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했다. 적어도 상상 속에서는 모든 것이 자유로웠다. 상상 속에서는 발레리나든, 우주 비행사든 뭐든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세상은 그때까지만 해도 노란색 머쉬멜로우처럼 부드럽고 촉촉했던 것이다. 비록 때로는 학교 가는 게 눈물 나도록 싫었고 때로는 친구와 싸워 죽을 것처럼 슬프기도 했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난 언젠가 조니와 우주정거장에 갈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깡마른 팔다리와 햇볕에 그을려 새카만 피부를 가진 일곱 살의 꼬마 여자애였던 나는 빨간 운동화를 신은 조니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블록 쌓기 놀이를 하다가 저녁 먹을 시간만 되면 엄마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가난하긴 했지만 지극히 평범하고 아이다운 일상이었다. 아빠는 술을 좋아했고 식탁엔 언제나 소주가 한 병씩 놓여 있었다. 엄마는 아빠가 술을 많이 마신다고 늘 잔소리를 하곤 했지만 술에 취해도 기분 좋게 웃는 아빠 모습이 보기 좋았던 난 아빠가 술을 마시는 게 싫지는 않았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하지 않았다면 바로 오늘 저녁에도 아빠는 술을 마시고 기분 좋게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을 런지도 모른다. 우리 공주님은 언제 봐도 예쁘다니까……결혼식은 궁전 같은 호텔에서 호화롭게 해야지?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빠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엄마는 커다란 골판지 상자 속에 자질구레한 살림살이 도구들을 담기 시작했다.

노란색 박스테이프로 포장한 골판지 상자가 늘어나고 방안이 점점 깨끗해지던 어느 날, 문 밖엔 이삿짐센터의 파란 트럭이 와 있었고 나와 엄마는 골판지 상자들을 트럭에 실었다. 그게 그 동네에서의 마지막 추억이다. 그 뒤로 다시는 조니와 만날 수 없었다. 

  그 뒤로 몇 년이 흘렀는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도 조니와 블록 쌓기 놀이를 하던 그 때, 저녁식탁에 매일같이 소주 한 병이 놓여 있던 그 때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렇지만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남은 건 편의점에서 바코드를 찍고 있는 여자아이 하나뿐이다. 이제 식탁엔 소주가 놓여 지지 않는다. 아버지의 자리는 언제부터인가 계속 비어 있다. 아버지의 빈 자리가 보일 때마다 새삼스럽게 세상이 낯설게 보이곤 한다.

 “넌 또 딴 생각하는구나. 혹시 m 생각하는 거 아냐?”

 미경언니가 악의 없이 웃으며 말한다. 미경언니는 m이 나오지 않는 월요일과 수요일마다 함께 카운터를 보는 아르바이트생이다. 긴 생머리에 하얀 피부를 가진 미인이었지만 초록색 편의점 제복이 이상하게도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부담 없이 친해질 수 있어, 손님이 없을 때에는 좋은 말동무가 되어주는 사람이었다.

나와 미경언니의 유일한 공통분모가 m이었기에, 우리는 가끔씩 농담조로 m의 어수룩한 행동과 천진난만한 미소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미경언니의 노란색 터틀넥 스웨터 밑으로, 가느다란 금색 목걸이가 반짝거렸다. 끝자락엔 이니셜처럼 보이는 알파벳 모양의 장식이 달랑달랑 달려 있었다.  물어 보진 않았지만 저건 아마도 요즘 유행하는 커플 목걸이일 것이다. 미경 언니는 아마도 무수히 많은 연애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연애나 패션에 관심이 많고, 놀기 좋아하는 타입이다. 

 ‘ 언니도 참……누가 들으면 내가 걔 좋아하는 줄 알겠다.’

 가볍게 눈을 흘기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난 m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미경언니가 생각하는 것처럼 끈적끈적한 방식으로 좋아하는 건 아니다. 유행가 가사처럼 일반적인 방식으로 그 애를 좋아해 본 적은 없다. 내겐 내 나름대로의 방식이 있다. 예술가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고 작가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글을 쓰는 것처럼 난 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그 애와의 관계를 만들어 왔다.

 난 그 애의 출신학교나 전화번호, 혈액형 등등을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 애의 눈이 유난히 맑은 이유, 유난히 말수가 없는 이유를 알고 있다. 그 눈은 아직 더럽고 슬프고 추악한 세상을 보지 못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처를 받으면 받을수록 그 상처를 자기 내면으로 흡수시켜, 그대로 타인들에게 돌려준다. 그러면서 스스로 아주 강해졌다고,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은 아무리 상처를 받아도 그걸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 물론 타인으로부터 심한 대접을 받으면 화가 나고 슬퍼지지만, 그 아픔을 다른 사람들에게 돌려줄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m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지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성분으로 만들어진 단단하고 투명한 유리막이 세상의 상처와 아픔이 내뿜는 독한 기운을 차단해 주는 것이다.

어린 시절 조니의 눈에도 분명 그런 유리막이 있었다. 조니의 눈이 이상할 정도로 엷은 갈색이었던 건 바로 그 유리막 때문일 것이다. 조니와 m의 눈동자는 같은 색깔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런 공통점을 발견할 때마다 조니와 m은 동일인물이라는 추측은 차츰차츰 확신으로 발전하곤 했다.

“이제 겨울이 오려나봐.”

 제법 쌀쌀해진 바람을 느끼며 편의점에 들어선 내가 말했다. 10월도 이번 주면 끝이다. 바람이 제법 쌀쌀해졌다.

“이런……빨리 캘리포니아에 가야겠는걸.”

“캘리포니아는 언제나 맑을 것 같아. 캘리포니아에 가 본 적은 없지만 말야. 왠지 그 곳은 흐린 날이 없을 것 같아.”

 “그러고 보니 ‘캘리포니아엔 비가 오지 않는다’ 라는 가사의 팝송을 들어 본 것도 같은데...제목이 생각이 안 나네……”

“그래? 그런 노래도 있었어?”

“아닌가? 내가 잘못 들었나……”

 m은 햇살 속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한다. 그럴 때의 m의 눈은 하얀 초승달 같다. 가을은 m과 함께 바코드를 찍는 사이에 점점 깊어져만 갔다. 왠지 겨울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시간이 어느 순간 멈추어 버린 듯 한 느낌. 내일도 모레도 또 그 다음날도 언제까지나 m과 함께 바코드를 찍고 있을 것 같은 느낌.

이대로 정지화상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건 몹시도 정겹고 평화로운 느낌이었다. 마치 그 여행 잡지 표지의 그림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다. 적막하고 조용한 수영장. 그리고 그 속으로 풍덩 뛰어든 나와 m……야자수는 말이 없고, 다이빙대는 죽은 듯 고요하다. 그래, 이런 걸 평온이라고 하는 걸 거야. 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난 보지 말아야 할 걸 보고야 말았다.

 약간 제멋대로 자란 고수머리와 가느다랗고 하얀 목, 약간 헐렁한 듯 한 갈색 점퍼. 그건 분명 m의 뒷모습이었다. 한걸음에 달려가 등을 치면서 쾌활하게 인사를 하기 위해 발걸음을 떼려던 찰나, 누군가가 그 애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자였다. 긴 생머리에 짧은 청치마와 검은 부츠. 여자는 m에게 팔짱을 끼고 있는 것 같았다. 미경  언니였다. 난 그만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 버리고 말았다.

 왜 잊고 있었을까.

 미경언니의 터틀넥 스웨터 밑으로 보일락 말락 반짝이던 목걸이와 비슷하게 생긴 목걸이를 언제부터인가 m도 목에 걸고 다녔다는 사실을. 체인이 미경이 언니의 것보다 약간 더 굵긴 했어도, m이 바코드를 찍기 위해 고개를 숙일 때마다, 목걸이 끝에 달린 알파벳 모양의 장식이 햇빛을 받아 자랑스럽게 반짝이곤 했다. 세상 일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이다. 왜 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걸까.    

  사람들이 내 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짜증스럽게 날 밀치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불현 듯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 붙어 꼼짝도 못하는 나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m과 함께 보았던 캘리포니아 그림 속의 야자수처럼. 플라스틱으로 만든 야자수라면 배경처럼 우뚝 서있던 야자수라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아무 것도 사랑하지 못할 것이다. 한 남자와 여자가 사이좋게 길을 걷고 있는 장면 따위엔 아랑곳도 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끄떡 않고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는 존재. 마치 배경처럼 존재감이 없는 존재.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차갑고 무덤덤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고작 m과 미경언니가 함께 있는 장면 때문에 충격을 받는다는 건 너무 촌스럽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어떤 일에도 충격을 받지 않는다는 건 정말로 멋진 일이다. 플라스틱 야자수는 정말로 멋지다. 가까스로, 데이비드 어쩌구의 그림이 그토록 내 마음에 와 닿았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거리는 11월의 냄새로 가득했다.

 그렇다. 11월인 것이다. 겨울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늦가을의 오후였다. 하얗고 불투명한 하늘을 닮아 마냥 냉정하기만 한 늦가을의 공기는 습기가 없어 상쾌했다. 적어도 내게 있어 일 년 열 두달이 끝나는 시점이 허무하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1년의 끝자락에 11월이 존재하기 때문일런지도 모른다. 난 11월이 좋다. 11월의 하늘과 바람과 거리가 좋다. 물기 한 점 없는 건조함과 끈적거리지 않는 차가움이 사랑스럽다. 

바람에 휘둘리는 앙상한 나뭇가지는 헐벗고 있어도 전혀 슬퍼 보이지 않는다. 아스팔트 위에 울려 퍼지는 발자국소리는 굽 높은 부츠 탓인지 유난히 듣기 좋다. 뺨을 스치는 바람은 제법 차가웠지만, 부담스러울 정도로 히터의 온도를 높여놓아 후끈후끈 더운 실내보다는 상쾌해서 좋다. 또각또각. 경쾌한 발자국소리가 회색 아스팔트의 무표정한 거리를 찬란한 황금빛으로 수놓는다.

 걷다가 문득 고개를 드니 거기엔 아무 말 없이 차갑게 빛나는 하얀 하늘만이 시야에 가득했다. 흐린 날의 하얀 하늘은 아무런 감정도 없이 무덤덤하고 건조해서 좋다. 이렇게 순수하게 하얀 하늘 아래에서는 억지로 웃거나 울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어떠한 감정도 꾸미지 않고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하얀 하늘을 보자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아졌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이대로 캘리포니아까지라도 한걸음에 걸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캘리포니아까지는 못 가더라도 하다못해 십 여년 전 조니와 함께 놀던 그 변두리 동네까지는 쉽게 도착할 수 있을 듯 하다.

 여섯 살 때였던가. 아버지가 생일선물로 사 주신 인형의 집 속엔 레이스 베게가 놓인 분홍색 침대, 꽃그림이 들어있는 투명한 액자, 동글동글한 문양으로 장식된 옷장 등등이 들어있어서, 보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었다. 왜 그랬을까. 어린 시절엔 믿고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언젠가 어른이 되면 이렇게 사랑스럽고 아기자기한 행복들이 가득 찬 예쁜 이층집에서 살 수 있으리라고. 어른이 되면 뭔가 달라질 거라고.

 그렇지만 어른이 된다는 건 달콤한 행복의 소유가 아니라, 세상엔 더럽고 보기 흉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의 깨달음이다. 오색날개를 팔랑이며 솜털처럼 날아가는 새끼나비나 바람에 흔들리는 물먹은 풀잎처럼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뿐만이 아니라, 말라붙은 지렁이 시체, 취객이 뱉어놓은 토사물 같은 것도 이 세상을 구성하는 일부분 중의 하나라고 어쩔 수 없이 인정해 버릴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일 런지도 모른다. 그 땐 몰랐지만, 그 인형의 집은 내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마지막 생일 선물이었다. 

 빨간 운동화를 신은 순진한 눈동자의 소년, 알록달록한 블록으로 만든 아기자기한 우주정거장 같은 건 추억속의 낡은 앨범 속에서만 존재하는 거다. 언제나 11월이던 산기슭 동네의 허름한 연립주택 따위는 이미 오래 전에 철거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우주비행사를 꿈꾸던 소년은 평생 동안 우주복 같은 건 만져보지도 못할 것이고, 우주정거장에서 발레를 하고 싶어 하던 소녀는 발레복 대신 초록색 편의점 제복을 입고 열심히 바코드를 찍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미경언니와 팔짱을 낀 채 사이좋게 걸어가던 m을 본 날, 난 차갑고 건조한 11월의 공기가 눈물겹도록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런 광경을 햇살 따가운 8월에 보았다면,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에 녹아내리는 아스팔트처럼 나도 그 자리에 선채 녹아 버렸을 런지도 모른다. 진달래꽃이 온 산에 만발한 4월에 보았다면 진달래꽃의 강렬한 분홍빛이 내 모습을 한결 더 처량하게 만들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정말 다행이다. 매정하고 서늘한 바람이 부는 11월이었기에, 그렇게 충격적인 영상도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나와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무시할 수 있는 것이다.

 흑백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흰색이나 검은색이나 회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모국어를 속삭이며 내 앞을 스쳐지나간다. 이제 m과 미경 언니도 사람들 틈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입술이 트는 걸 보니 바야흐로 환절기이다. 난 계절이 바뀔 때가 되면 항상 입술이 트곤 했다. 플라타너스 나무껍질도 내 입술처럼 꺼칠꺼칠하다. 바람에 못 이긴 듯 슬프게 떨어져 나가는 플라타너스 잎이 겨울을 암시하고 있다. 거의 뼈대만 남은 앙상한 가로수는 닥쳐올 추위와 고독을 단단히 각오했는지 결연한 자세로 차가운 바람을 맞이하고 있다.

 나는 무작정 거리를 걷는다. 걷고, 또 걷다 보면 어느덧 거리는 냉정하게, 그러나 자연스럽게 겨울을 맞이할 것이다. 겨울로 가는 길목은 언제나 차고, 외롭고, 고통스럽다. 계절이 바뀌는 시기는 언제나 고통스럽고 불안하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지금 느끼는 배신감과 슬픔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날 괴롭히는 입술 염증과도 같은 것이다. 

계절과 계절이 바뀔 때에는, 어떠한 상황이 몰아 닥쳐도 동요하지 않고 고독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야자수가 되어야 한다.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어떠한 것에도 집착하지 못하는 플라스틱 야자수. 완연한 겨울이 될 때까지 플라스틱처럼 아무 말 없이 환절기의 슬픔을 견디어 내야 하는 것이다. 

 계절은 고비를 넘고 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겨울이다.

 내 인생의 1막도 어둡고 칙칙한 자줏빛 커튼 뒤로 사라지고 이제는 빨간 운동화도, 기도하는 소녀도 무대 뒤로 물러섰다. 이제 겨울이 열릴 차례이다. 내 인생이 여기서 끝인지 아니면 이제 시작에 불과한지 잘 모르겠다. m과 조니가 동일인물인지, m이 미경언니를 좋아하고 있는지 어떤지도 잘 모르겠다. 기억속의 그 소년이 정말로 빨간 운동화를 신고 있었는지 그 아이의 집에 정말로 기도하는 소녀의 그림이 붙어 있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내가 정말로 m를 좋아했는지조차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찌되었건 거리는 11월의 기운, 늦가을과 초겨울이 교차하는 시점의 우울한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서, 퇴근길의 직장인들로 붐비는 거리를 총총걸음으로 내달렸다. 이대로라면 분명히 캘리포니아까지라도 갈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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