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당선작 이연(국문·4)씨


  가격에 비해 펜션의 방은 형편없다. 조악한 벽지나 청결하지 못한 시트는 참을 수 있었지만, 바다가 보이는 커다란 창이라고 선전했던 것을 떠올리면 가서 욕이라도 하고 싶게 만드는 방이다. 창틀의 색은 바다를 고려했는지 파란색이었는데 그 색의 유치함이 비할 데 없고 창 역시 전혀 닦아놓지 않은 상태여서 먼지 때문에 바다가 부옇게 느껴진다. 나는 몇 시간째 창밖만을 보고 있는데 이런 창이다 보니 보면 볼수록 짜증이 날 뿐이다.

 오늘은 그와 내가 만난 지 1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는 평소에 내게 미안했다며 내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고, 내 소원은 간단했다. 내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를 불러내고 해가 지는 것을 같이 보면서 술을 마시는 것. 밤이 깊어져 술에 진탕 취해서 쓰러져 자기까지 시계를 한 번도 보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덧보태 바다에서 밤을 새자는 선심까지 썼다.

하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해가 다 저문 뒤에서야 비굴함을 감추려 밝은 목소리로 전화해왔다. 약속을 어기기엔 그것도 모자르다고 생각했는지 차를 모는 내내 그는 핸드폰을 주시했다. 펜션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우리는 싸우기 시작한 것이고 몇 시간을 서로 말도 없이 그는 텔레비전을, 나는 창밖을 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술은 각자 마셔야 하는 형편이 된다.

 “그만 만나자. 그게 좋겠어.”

 그가 오랜 침묵을 견디기 힘들다는 듯이 말한다. 나는 그의 말에 깊이 동의했으므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게 낫겠네.”

 그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감정을 토해내는 듯한 표정이 짜증스러워 나는 그에게서 고개를 돌린다.

 “너,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이쯤 되면 대화는 한없이 질척해진다.

 “얘기 그만 하자.”

그렇게 다시 침묵이 시작되고 그와 나는 아주 조용하고 피곤한 아침을 맞이한다. 그가 과장된 소리로 꾸릴 것도 없는 짐을 챙겨서 일어난다. 시동을 거는 소리를 듣고서야 나도 따라  나가서 차에 탄다.

 서울로 가는 차를 도중에 갓길에 세운 그는 내게 격하게 키스해온다. 처음 키스할 때처럼 다른 혀의 이질감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는 키스를 멈추고 울기 시작한다. 나는 가만히 있는다. 그는 사랑한다고 말한다. 삼류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돈을 낸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과장되고 눈에 보이는 연기를 하는 배우와 흥미롭지 않으면서 아름답지도 못한 화면처럼 지루하다.

 “바다는 좋았어?”

 하나가 반갑게 문을 열어준다. 나를 기다린 듯 해서 마음이 밝아진다. 친근하고 익숙한 공기와 나를 기다리는 하나의 개인 목소리. 고개를 돌리면 그 자리에서 그녀는 늘 대답한다.

 “응. 좋더라.”

 “그렇게 멀리 다녀오고, 기념품은 없는 거야?”

 무겁지 않은 작은 가방을 뺏어들면서 그녀는 소란을 피운다. 그러다 하나는 그에게 주지 못한 선물을 발견해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쪽을 바라본다.

 “어, 정말 선물 있네?”

선물은 향수였다. 여자향수.

 “뭐야, 진짜. 새삼스럽게.”

 하나는 한층 들떠서 선물을 뜯어보고는 비싼 거라며 소란을 떤다.

 “이거 너가 쓰는 거잖아.”

 내 냄새를 그에게 묻히고 싶었다. 그에게는 내 냄새가 배어들지 않았다.

 “나 이 냄새 좋던데. 어쨌든 고마워.”

 하나가 밝게 웃는다. 나도 따라 웃는다.

 담배를 피우는 하나의 표정은 묘하다. 맑다고 하기에는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은 듯 하고, 멍하다고 하기에는 또렷하다. 언젠가 담배를 피울 때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아무 생각도 안 하는데, 담배 필 때는. 그냥.”

 그냥. 그 말이 매력적이라 나도 담배를 배웠는데 나는 생각이 더 많아져서 그만 두었다. 연기로 생각을 내보내는 게 아니라 연기처럼 꾸물꾸물 내 안에 가득 들어차는 느낌이 갑갑했다. 그런데도 그녀가 담배를 피우면 나도 피우고 싶어진다.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은 표정이 상쾌하게 느껴져서 부럽다.

 그녀의 담배연기는 좁은 반지하 방을 금방 채운다. 담배 두 가치 정도를 피우고 나면 하나는 싱긋 웃으면서 창문을 연다. 그리고 아까와는 전혀 새로운 기분이라는 듯 이야기를 다시 꺼내곤 한다.

 “기념일이라고 안 했나?”

 “응. 1년.”

 “오래 됐네. 연애는 재밌어?”

 새삼스레, 라고 대답하고 싶었으나 결국 고개를 돌려버린다. 일상적인 질문도 그녀가 가진 지나친 경쾌함으로 인해 도망치기 어려워진다. 가볍고 맑은 말투. 질문 너머에 숨은 뜻이 전혀 없어서 도리어 당황스러워진다. 창밖은 지면이고 그래서 바로 흙먼지가 들어온다. 환기가 곧 먼지를 먹는 거라니 어이없지만 그래도 꼬박꼬박 환기를 시키면서 투덜거린다. 이것도 저것도 참을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나는 좋은데.”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은 것이 분명한 하나가 후후, 소리를 내 웃으면서 다시 말을 잇는다. 하나는 얼마 전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다.

 “지연이랑 잘 맞나봐.”

 “응. 좋아. 같이 살까봐.”

 “뭐야, 나는.”

 “너도 같이 살지 뭐.”

 애인끼리 사는데 내가 같이 왜 살아, 나는 괜히 볼멘소리를 해댄다.

 “그럼 너도 애인이랑 살아라.”

 하나가 내 눈을 보며 웃는다. 내가 티가 나게 말을 닫아버리는 것에 재미있어하는 눈빛이다. 나는 괜히 먹먹해져서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닫는다. 맑은 공기보다 길가의 흙먼지가 더 많이 들어오고 있다. 이제 환기를 시키지 않을 것이다.

 유부남과 연애하는 것은 혼자 끼고 있는 커플링 같은 것이다. 누가 물어보면 표정이 굳은 채 그냥 반지라고 대답해야하는 것. 내 손가락에 끼고 있어도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 행복의 상징이 비참함과 불행을 가중시키는 것. 시간이 갈수록 익숙함보다 이질감이 생겨나서 언제 뺄지를 항상 고민해야하는 것.

 그와 내가 만난 것은 학내 급진적인 운동단체였다. 급진적이라고 해봐야 지나간 말들을 주워섬기는 것에 불과한 빛바랜 행동들이 전부이다. 목이 터져라 외쳐대는 사회변혁만큼 진부하게 느껴지는 것은 없다. 지하 룸 밖의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고 있는지 그들은 관심조차 없었다. 그 운동권에 대한 동경으로 가입한 단체에서 나는 점점 냉소적이 되어가던 차였다. 그는 졸업 후에도 단체에 계속 나와서 강의를 하는, 말 그대로 골수운동권이었다. 그는 아직도 혁명을 꿈꾸는 자신이 지상 최대의 로맨티스트라는 말을 부끄러움 없이 내뱉곤 했다.

그래서, 모두가 나를 있는 듯 없는 듯 대하기 시작한 후에도 그는 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노라고 훗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루는 가슴 따듯하며 인간적인 마음으로 그가, 지식인의 폭력인 냉소의 탈을 쓴 나를 불렀다. 여기 남아있는 이유를 물었다. 그것은 모두가 궁금해 하던 것이었다. 세미나 시간마다 나는 줄곧 인상을 쓰고 앉아 한마디도 하지 않았었다. 역시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텅 빈 세미나실에서 그는 기타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민중가요를 불렀다. 그의 목소리가 연설을 하기엔 너무 낮고 부드럽다는 것을 나는 그때 느꼈다. 그 목소리 자체가 가지는 위로가 그 어떤 혁명보다 내 마음을 흔들어놓고 있었다.

나는 목소리가 참 좋다, 고 그의 눈을 보면서 말했다. 너도 말할 줄 아는 구나, 그가 내 눈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이제껏 알아채지 못했던 갈색 눈동자. 왜 이제껏 그의 눈이 여린 갈색이라는 것을, 목소리가 그 눈을 닮았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까. 나는 단박에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 역시 그때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결혼하면 좋은가요? 주변에 결혼한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들이 많던데.”

 하나는 지나치게 자연스럽고 그녀에게 비하지 않더라도 그는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다.

 “글쎄, 좋은 점도 있고, 안 좋은 점도 있고.”

 대답하지 않고 어색한 침묵을 흘리는 편이 나을 뻔했다. 그는 자신이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마음껏 드러내고 있다. 하나는 이제 그 대답의 꼬리를 물으려 할 게 뻔하다. 결혼하면 어떤 점이 좋고, 어떤 점이 안 좋은지. 결혼을 하면.

 “그런 건 나중에 얘기하고 식사주문이나 하지.”

 그의 표정에는 순간 구원이 스친다. 하지만 하나는 내 말투에 날이 선 것을 놓치지 않고 표정에 특유의 장난기를 띠기 시작한다.

 “너, 뭔가 걸리는구나?”

 하나는 악의 없이 웃고 있지만 상황은 점점 더 최악으로 흘러간다. 넷의 저녁식사는 정말 우스꽝스럽다. 내내 나는 이 만남을 제안한 하나를 원망하고 그 제안을 받아들인 것을 후회한다. 하나와 그녀의 애인 지연은 잘 어울린다,기 보다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미인은 아닌데 언제나 티 없이 밝은 표정을 하고 있어서 누구나 호감을 가지게 되는 얼굴이다.

지연 역시 살면서 어려운 일을 한 점도 겪지 않은 듯 맑은 목소리로 시종일관 웃고 있어서 하나와 지연을 보고 있는 것은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둘은 조금은 어색해하거나 불편해해도 될 것이었는데 둘은 아주 자유롭게 우리를 대하고 있다. 둘의 태도는 그와 나의 그늘을 부각시키고 있다. 식사 내내.

  “왜 그래, 듣기 싫게.”

나는 아까부터 포크로 접시를 긁고 있다. 더 듣기 싫은 건 너의 종알거림이야, 그렇게 생각했으나 내뱉지는 못한다. 하나는 개념치 않고 계속 종알거린다. 그 역시 조금의 머뭇거림 없이 자신의 난처함을 드러낸다. 나는 시선을 창 밖에 둔다. 견디기 힘든 봄 햇살이 밖에 충만하다. 이 안에는 전혀 미치지 않는 완벽할 정도의 빛. 사소하고 작은 것까지 놓치지 않고 아름다운 것으로 바꾸어내는 듯한 햇살이다. 나는 고개를 숙여 다시 포크로 접시를 긁는 소리를 내며 먹는 데 집중한다. 하나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나를 보면서 줄곧 인상을 찌푸리고 그는 점점 더 사색이 되어간다. 파스타 맛은 최악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변했다. 세미나 시간에 반감을 드러내려 다리를 꼬고 앉아있지도 않았고 집회에 나가서도 혼자 천천히 걷는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강의를 받아 적기도 하고 그의 옆에서 크게 투쟁가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모두들 반가워한다기보다 은둔자의 갑작스런 나들이를 보는 것처럼 이상하고 부담스럽게 여기는 눈치였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도 변했다. 자꾸만 웃었고, 세미나를 시간보다 일찍 마치기도 했다. 그와 나의 생의 모든 것이 열정으로 변했다. 손대지 못한 미지의 보물을 발견해내려는 희망과 기쁨으로 삶이 충일했다. 기적처럼, 느꼈다. 그의 눈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났다.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면 그는 예의 따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도, 라고 답했다. 그와 만나는 시간시간이 반짝반짝 빛났다.

 “너, 지연이도 있는데 너무한 거 아니니?”

 집에 들어오자마자 하나의 카랑한 목소리가 나를 밀친다. 나는 몇 시간째 굳은 표정으로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너 때문에 제대로 먹지도 못했어. 넷이 만나서 재밌을 줄 알았는데 너 때문에 다 망쳤다구. 지연이도 계속 너 신경 쓰고.”

 나는 조금 미안함이 스쳐서 표정을 풀려고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너네 둘은 정말 이상하더라. 그런 게 뭐가 애인이니. 둘 다 말도 없고, 재미도 없어 보이고, 계속 들어오는 사람들 눈치보고. 불륜이면 에로틱하고 아슬아슬해야지, 그렇게 주눅들어서 되겠어?”

 에로틱하고 아슬아슬한 불륜,이라는 대목에서 하나의 표정이 우스워서 나도 모르게 표정을 풀고 웃어버린다. 하나도 목소리에서 짜증을 걷고 킥킥댄다.

 “야,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나가자. 배고프지 않아?”

 내가 고개를 젓자 그녀는, 하긴, 너야 꾸역꾸역 집어넣긴 하더라, 하면서 다시 킥킥대면 내 팔을 잡아끈다.

 “그래도 나가서 먹자. 나 배고파. 너네 불륜 눈치 살피느라.”

 “눈치는, 혼자 신났으면서.”

 일부러 그런 거라며 하나는 과장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솔직함과 부연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깨끗함. 나는 그녀의 그런 면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쉴 새 없이 종알대서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좀 전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주저함 없이 말을 내뱉고 있다. 불륜과 그 그늘에 관해서.

 그의 배에 엎드려있는 것이 좋았다. 섹스를 마치고 그의 배 위에 머리를 대고 엎드려 있으면 그가 내 머리카락을 만졌다. 세상이 모두 가라앉는 듯 했다. 그렇게 누워있으면 얼마 되지 않아 그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나도 익숙해져 버린 아내의 목소리. 그 목소리는 그와 나의 사랑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느껴져 그것이 그와 나를 더 흥분시키는 때도 있었다.

하지만 장애물은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낭떠러지에서 섹스하는 기분이었다. 곧 떠밀려 추락할 것 같았다. 섹스가 끝나면 떨어지지 않은 것을 감사하며 서둘러 씻고 옷을 입었다. 하지만 모텔 앞에서 택시를 타는 그의 뒷모습과 망연히 길에 남겨진 내 모습은 이미 추락한 상태였다.

 어느 날 그가 소리죽여 말을 했다.

 “이번에 화염병을 만들 거야. 시국이 급해.”

 비장하게 말하고 있지만 그는 다소 들뜬 것 같았다. 나는 화염병을 본 적조차 없어서 그냥 잠자코 있었다. 그거 흑백텔레비전에 나오는 거 아니냐고 농담을 하고 싶었지만 그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말을 삼켰다. 혁명적 시기의 영웅적 행동에 대한 갈망으로 그는 일장연설을 해왔다. 네온사인으로 뒤덮인 길거리 한복판에 마징가제트가 출연한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꿈이었다. 급한 시국 같은 건 어디에도 없고, 또 어디에나 있었다. 번쩍거리는 사회에서 갈피를 잡을 수 없던 그는 자꾸만 과거로 도망치고 있었다.

 “권태구나.”

 처음 들어보는 단어마냥 생경하다. 권태?, 내가 되묻자 하나는 오히려 내가 이상하다는 듯 누구에게나 권태는 온다고 친절하게 설명한다.

 불륜과 권태라니 정말 어울리지 않는 단어조합이다. 이제껏 권태에 빠진 불륜은 본 적이 없다. 그런 건 분모가 0인 것처럼 처음부터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권태를 극복하고 사랑을 지속할 수는 있지만 권태를 극복하고 불륜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일까. 그의 눈동자가 나와 함께 급격하게 바래가고 있었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하면 그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정점에 다다르면 내려와야 하는 언덕에서 그와 나는 서성이고 있었다. 내려가야 하는 곳은 지극한 현실이었다. 그가 없는 매일 밤, 혼자 먹는 밥, 전화기만 바라보다 전화가 오면 울음을 삼켜야 하는 나날들인 것이다. 꿈은 조금씩 깨어가고 있었다. 그에게 급한 시국은 나와의 관계였을 것이다. 그도 나도 도망치고 싶었으나 도망갈 곳이 없었다. 아니, 도망갈 곳이 너무 분명해서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룸은 창이 없어서 햇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창을 억지로 낸다 해도 사람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드는 지하의 습기 탓에 특유의 어두운 조명을 바꿀 수는 없었을 것이다. 페인트를 바르지 않는 것이 친환경적이라 해서 내버려둔 시멘트벽, 철제 책장에 가득히 꽂혀있는 절판된 책들은 잘 어울리는 소품 배치였다. 거기다가 줄담배는 고뇌하는 얼굴을 만들어내는 데 훌륭했다.

선배들은 ‘대외비’라는 문건을 손에 들고 줄담배를 꼬나물고 화염병에 밑줄을 그었다. 이거 애들한테 조금 위험하지 않겠어?, 잔뜩 권위가 들어간 목소리. 시국이 그렇다는 데에는 동의하잖아, 그 역시 같은 목소리로 응답했다. 때로는 밀어부칠 때가 필요하지. 암. 그렇고 말고. 자, 그러면 이렇게 가는 거야. 이거 오랜만에 일 하나 벌이겠는 걸. 모두가 격양되어 있었다.

 내내, 그는 노동자집회에서 화염병을 던질 생각에 몰입해 있었다. 오랜만에 격렬한 싸움을 생각하니까 심장이 두근거린다고도 했다. 후배들이 반대할 것 같다고 내가 말했지만 그는 힘차게 고개를 저었다. 현시국의 돌파구는 이것뿐이라고 했다. 돌파구란 말이 내 가슴을 찌르는 듯 아파왔다.

 그의 아내가 알게 된 건 하나 때문이었다. 그의 아내와 그가 길을 걷는데 하나가 아는 척을 했고, 그가 너무 긴장하는 바람에 그의 아내가 이상하게 여기더라는 것이 하나의 설명이었다. 그날 밤에 그의 아내의 재촉에 못 이겨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고 그가 덧붙여 설명했다. 그 후로는 하나의 예상대로 아침드라마가 펼쳐지지는, 않았다. 그의 아내가 내 전화번호를 알아갔다고, 자신의 위급함을 설명하려는 절절한 목소리로 그가 말해온 후로 나는 줄곧 전화기만 바라보았으나 그녀는 전화 한 통 걸지 않았다.

꼬박 사흘을 한숨도 자지 않고 깨있다 보니 그의 아내와의 전화약속을 기다리는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그토록 기다리던 그녀의 전화는 결국 오지 않았다. 2주가 지나고 한결 비겁해진 목소리로 그가 연락해왔을 뿐이었다. 그는 우리가 자주 가던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있노라고 목소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비장함을 띠고 말했다.

 “선택해.”

 유치할 정도로 솔직한 말이었다. 나야, 그년이야, 이런 식의 난투극과 가까운 말을 내뱉었다. 그 역시 극을 보고 있는 관중의 눈을 한 채 침묵하고 있었다.

 “여기가 끝인 거 알잖아. 선택하라고.”

 이것이 내게 돌파구라고 말하고 싶었다. 여긴 낭떠러지라고, 우리 같이 도망치자고 소리지르고 싶었다. 그는 잠자코 있다가 자리를 떠났다. 일주일 정도가 흐른 뒤에 그는 술에 취한 목소리로 전화해서 괴롭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비겁한 것들. 너희들 그 정도 밖에 안 되니?”

 그는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이번 노동자집회에서 화염병을 만드는 것에 반대하는 후배들이 몇 명 있었고, 그는 그것에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너희들과 혁명을 이야기했던 것이 부끄럽다.”

 후배들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아직 뚜렷한 적이 없는 그들에겐 화염병은 자신을 파괴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선배들만큼 세상의 악을 알지 못했다.

 “저희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죄송합니다. 저희에겐 학교생활도 있고 각자의 생활영역이 있습니다. 자꾸 그렇게 강요하듯이 말씀하시면 괴롭습니다.”

 용기를 낸 후배 하나가 말했다. 다들 그것에 동감하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살면서 포기해야 할 부분이 있는 거야.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가 있으면 목숨 걸고라도 지켜야지. 모든 것을 손에 다 쥐려고 하면 우린 그 정도의 인간으로 머무는 거라고. 위험한 것에도 뛰어들어야지. 과감하게 선택하고 결단할 때가 바로 지금이야. 준비가 안 되었다느니 비겁한 소리 작작해.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그런 거라고.”

 이제 그는 목에 핏대까지 세우고 있다. 살면서 포기해야 할 것이 있다. 모든 것을 손에 쥐려고 하는 것은 비겁하다. 위험하더라도 지금 선택하고 결단해야 한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그러한 것이다. 기대나 희망 따위는 없다. 나는 계속해서 소리지르는 그를 뒤로 하고 룸을 나왔다. 화장실에 들러서 구토를 했다.

 그 후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그도 더 이상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 그가 화염병을 던지자고 열변을 토했던 노동자집회가 내일로 다가왔다. 지금쯤 룸에서는 화염병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을 터였다. 그는 혼자서라도 그렇게 할 사람이니까.

 그는 룸에 있지 않았다. 화염병을 만들던 손길을 멈추고 모두가 나를 쳐다보았다. 경직된 표정으로 모두 말을 머금고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선배님은 없어요?”

 그와 나의 만남은 이제 단체 모든 사람이 아는 비밀이었다. 나는 조금 더 힘을 주어 되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아내 되는 분, 약 먹고 자살하려고 했다. 다행히 바로 병원에 실려가 살았는데, 아직도 입원해있다.”

 선배 한 명이 책을 읽듯이 대답했다. 음절 하나하나를 꾹꾹 눌러서 발음하고 있었다. 죽. 으. 려. 고. 했. 다. 정지화면처럼 중압적인 침묵이 내게로 향했다. 내 표정에 모두가 집중하고 있었다.

 “그럼 선배는 내일 노동자 집회에도 나오지 못하나요?”

 내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모두 기이함을 넘어서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 표정들이 알갱이처럼 뭉쳐져서 하나의 그림이 되었다. 그의 아내가 죽으려고 약을 먹었고  그는 그의 아내 곁으로 자리를 감추었고 사람들은 모두 모여 있다. 물론 나도 함께. 너무 뒤틀어놔서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만든 기형적인 그림이다.

 “너가 졌네.”

 하나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예의 경쾌한 말투.

 “유서에 네 이름을 써놨을 거 아냐.”

 그래, 내가 진 것 같다. 완벽하게.

 신나와 휘발유를 5대 5로 섞는다. 병은 가볍고 목이 날렵해야 한다. 맥주병은 너무 무겁고 소주병이나 KGB정도가 적당한데 가격과 접근도에 따라 대부분 소주병에 만든다. 소주병에 신나와 휘발유를 섞은 것을 3분의 1가량 붓는다. 시국의 급박함에 따라 재료배합과 병에 넣는 양이 달라진다. 시국이 급박하다고 판단되면 신나의 비율을 높인다. 신나의 비율이 8정도가 되면 던지는 사람이 위험할 수 있다.

배합물을 넣고 휴지로 입구를 막는다. 목이 날렵한 병이라야 하는 것은 휴지로 입구를 제대로 막아야 불발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휴지를 제대로 막지 않으면 공기가 들어가고 신나와 휘발유에 불이 붙기 전에 공기 중에서 산화되기 때문에 던지는 사람의 팔에 불이 붙을 수 있다. 나무젓가락으로 꾹꾹 눌러서 코르크마개 씌우듯 병 입구를 단단히 막는다. 휴지에 불을 붙여서 던지면 되는데 여기서 망설이면 안된다. 망설이면 내가 다친다.

 봄이 깊어져 도로 위에 아지랑이가 일 정도로 더위가 짙다. 모두 숨을 헉헉대고 있다. 대치상황은 한 시간을 넘도록 서로를 지치게 하고 있다. 전경들의 얼굴이 붉다. 나는 연신 손에 나는 땀을 닦으면서 화염병을 고쳐 쥐고 있다.

 “던져!”

 선배의 날렵한 비명이 지루한 시간을 찢어놓는다. 갑자기 수십 개의 화염병이 날아가고 또 날아간다. 어지러움을 느끼기도 전에 전경은 선을 넘어 들어오고 있다.

 “뭐해! 던지라니까!”

 선배가 나를 잡아 흔든다. 나는 아직도 화염병을 쥐고 있다. 선배가 내 손에 든 화염병을 뺏어서 던지려 하는 것을 뿌리친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정신 차려!”

 나는 전경에게 옮겨 붙은 몇 개의 불로 시선을 옮긴다. 전경들은 그보다 더 붉어진 얼굴로 뛰어오고 있다. 선배는 내 손을 놓고 뛰기 시작한다. 누구의 지시도 없이 모두가 도망치고 있다. 전경은 저 앞에 있는데 모두 뒤돌아 뛰고 있다. 그들은 무엇을 향해 불을 던진 걸까. 지금은 어디를 향해 가는 걸까. 나는 아직 화염병을 어디에 던져야할지 몰라서 두리번거리고 있다.

 군화소리와 비명소리가 어지럽게 주변을 감싸고 있다. 누구에게 던져야 할까. 급한 시국에는 화염병을 던져야 한다. 빨리 던지지 않으면 내가 다친다. 불을 던지고 나는 도망쳐야 한다. 그런데 누구에게? 누구에게 불을 던져야 할까. 타개해 나가야할 시국이 눈에 띄지 않아 나는 당황한다.

 “뭐야, 넌.”

전경이 의아스럽게 나를 쳐다본다. 나는 그와 눈을 마주치고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갈색눈동자였다. 여린 갈색. 주저앉아 화염병을 쥔 손을 놓는다.

 나는 삼 일이 채 되지 않아 훈방 조치되었다. 그날 참가했던 대부분의 인원이 실형을 놓고 재판을 기다리는 것을 생각하면 내가 괘씸했는지 내게는 아무도 면회조차 오지 않았다. 나는 유치장에서 나와서 공중전화를 찾았다.

 “역시 전화를 받지 않네. 음성을 남기는 건 처음이라 놀라겠지. 나 지금 유치장에서 나왔어. 나는 훈방 조치됐어. 화염병을 던지지 않았거든. 어디에 던져야 할지 모르겠어서. 당신이 있다면 던졌을지도 모르지. 당신이 내 옆에 있었다면. 물어보고 싶었어. 급한 시국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어디에 불을 붙여야 좋을지도. 유치장에서 내내 혼자 그것에 대해 생각했어. 그래서 유치장에서 나오자마자 당신에게 전화를 건 거야. 당신이 전화를 꼭 받았으면 했는데. 헤어지잔 말을 하고 싶어서. 우리 이제 그만 만나. 이 말을 하고 싶었어. 꼭 내가 먼저 하고 싶었거든. 너무 힘들어하진 말길 바래. 건강하게 잘 지내. 나중에 길에서 만나면 꼭 인사해. 아주 반가울 거야. 그럼.”

 그새 봄이 더 깊어져 여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더 높아진 하늘에서 강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눈이 아파서 하늘을 직접 바라보지 못했다. 손을 펴보니 그 안에 가득 하얀 햇살이 담긴다. 손을 꼬옥 움켜쥐고 경찰서 마당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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