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에 우르르 몰려 서 있는 사람들. 객석에서는 남자배우가 울분을 토하듯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무대와 객석이 하나가 된 상황에 어리둥절하던 관객은 이내 이국적인 멜로디에 심취한다.

이는 8월25일(목)∼27일(토) 생활관 1층 소극장에서 열린 체대 연극동아리 ‘늪’의 ‘아가멤논’ 공연 장면이다. 연극 ‘아가멤논’은 승전 후 고향 아르고스에 돌아온 아가멤논 왕이 그의 아내 클리템네스트라에게 살해된다는 내용의 그리스 비극이다. 그러나 극의 주인공은 왕과 왕비가 아니다. 시민 역할의 코러스(고대 연극에서 이야기를 이끄는 주체) 8명이 대사와 노래로 극을 주도한다.

이 연극은 관객이 배우로서 극에 직접 참여한다는 점에서 여느 평범한 연출과는 다르다. 공연은 소극장 입구에 누운 배우가 대뜸 “나는 누굴까”를 외치며 관중의 이목을 끌면서 시작한다. 이후 관객들이 안내원을 따라 아가멤논의 귀환 축하 파티가 열리는 무대로 들어간다.
클리템네스트라가 아가멤논을 살해한 마지막 씬 ‘전시회’에서도 관객은 배우가 된다. 객석의 관객들이 막 내린 무대 뒤로 이동하자, 그들의 눈 앞에 나타난 것는 아가멤논과 카산드라의 시체. 살인 사건에 분노한 코러스들은 울부짖으며 관객 사이를 헤집고 다닌다. 사람들은 코러스의 감정에 동화되어 간다. 냉담한 클리템네스트라를 바라보는 많은 관중들은 이미 연극 속 아르고스의 시민이다.

‘늪’의 조연진 회장은 “관객이 배우와 감정을 공유할 수 있도록 연출한 것”이라고 그 의도를 설명했다. 공연을 관람한 신민희(무용·4)씨는 “연극 마지막 씬에서 관객이 함께 무대에 오른 것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배우들이 전부 무용과라는 특성을 살려 선보인 퍼포먼스도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이같은 무용 장면은 배우에 의해 즉흥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매번 달라진다. 조연진 회장은 “승전 소식에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은 서로 다르다”며 “배우들 스스로 그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극 중 예언자인 카산드라가 소리쳐 우는 장면에서는 같이 눈물을 떨구던 남자 관객도 있었다. 서울대 박현정(동양화·3)씨는 “실험적인 연극이라 난해한 면도 있었지만 배우들의 연기에 감동했다”며 관람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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