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명수

 8기, 한국일보 편집부국장


 내가 이대학보 기자로 일하던 시절은 1960년~63년까지 3년이다. 여고시절에도 학생기자로 일했고, 신문기자가 되고 싶어서 신문학과를 선택했던 나의 대학생활은 이대학보를 빼면 남는게 없을 만큼 신문만드는 재미로 가득 찬 것이었다.

 본관 지사에 있던 학보사에 밤늦게 일을 끝내고, 기자들 몇 명이 무서워하면서 캄캄한 휴웃길을 넘어 이화교를 건너던 생각이 난다.

 그당시 우리가 만든 신문들을 다시 펼쳐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매우 「낭만적인 신문」을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당시의 학생기자들은 나처럼 신문이 좋아서 이대학보기자가 되었을 뿐 무슨 투철한 언론관이나 사명감을 가진 것은 아니었고, 이화의 분위기 역시 사외의식이 강한편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이대생들은 단순하고 낙천적인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보았다.

 4․19이후 5.16까지의 1년동아 붐을 이뤘던 「새세대운동」속에서 이대생들은 농촌봉사활동이나 전도활동에 참가하는 것을 큰 보람으로 여겼다.

 그로부터 삼십여년이 흐른 오늘 나는 매주 이대학보를 받아 읽으면서 고색창연한 그시절과 오늘을 비교해 보곤한다. 우리가 그시절 너무나 낙천적인 시각으로 신문을 만든 것이 큰 흠이었다면, 오늘 이대학보를 만드는 후배들의 흠은 너무나 혁명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우리가 만든 이대학보가 유치한 낭만으로 가득챘다면, 오늘 이대학보는 깃발과 구호로 가득차 있다.

 4. 19와 5.16이라는 역사적 격랑을 겪으면서 우리는 시대의 요구와 역사의 당위를 지면에 반여하지 못했다. 우리는 의식이 부족해서 좋은 신문을 만드는 일에 실패했다. 그러나 후배기자들은 의식과잉으로 균형잡힌 신문을 만드는 일에 실패하고 있다.

 그들은 마치 이․삼십년전 선배기자들의 의식부족을 단숨에 매우려는 듯 조급해 하고 선배들과는 반대방향으로 편향돼있다. 그들은 체제와 맞서는 모든 것을 무조건 신봉하고 지면을 통해 전파한다.

 흑의 편견을 백의 편견으로, 청의 독선을 홍의 독선으로 공격한다는 것은 속시원한 싸움일지는 몰라도 생산적인 싸움은 아니다.

 계급적 관점, 진군대회, 연대투쟁, 사주, 시험거부, 노동해방, 반미, 종속…오늘의 이대학보를 펴들때마다 나는 이 신문이 어떤 운동단체의 기관지가 되었나라고 의심하게 된다. 어거지 논리로 자신들의 시각에 맞춰 결론을 내린 후배기자들의 글을 읽고 나면 하루종일 심란하기까지하다.

 젊은날 나라와 민족을 위한 이상을 품고 현실에 도전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오늘의 이대학보는 다른 모든 대학신문들이 그런것처럼 자신들의 이상을 점검하는 일은 게을리한채 기성체제에 도전하는 일에만 열심이다. 자기들은 언제나 옳고 상대방은 언제나 그르다는 논리는 지식인의 논리가 아니다.

 이대학보는 이제 깃발로서의 역할(그 역할은 독자들이 이대학보에 부여한 것인지, 기자들 몇사람의 사명감에 의한 것인지 우선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에서 벗어나 대학생활의 본질과 진리의 자유 속으로 좀더 깊이 들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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