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공공부문 레이먼 막사이사이상 수상자 Wu Qing(우칭) 인터뷰

2001년 공공부문 레이먼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한 Wu Qing(우칭)은 그 자신을 "명사도, 형용사도 아닌 능동 동사"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자라면서 남성 동료들에 대해 열등감을 가진 적이 한번도 없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항상 내게 인간인 것이 첫 번째이고, 여성인 것이 두 번째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는 1980년대 초반에 이르러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중국이 변화하는 시점이었다. 나라는 개방이 되었고 여성들은 활동하기 시작했다. "

갑자기 여성들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슬로건이 내붙기 시작했어요. 심지어 사회학자들도 여성들이 강간과 같은 사회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며 이같은 사상을 지지했지요." 그래서 그를 비롯한 베이징 외국어대학교 여교수들은 "여성 포럼"을 만들었고, 이는 중국의 초기 페미니스트 그룹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는 정치 쪽으로 발을 돌렸다. 1984년 Haidian 지역 사람들의 대회에 참가한 그에게 좁은 길이 열렸다. 그 후 그는 6기 지역대회와 4기 시 대회에 참여했다. "여성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는 오늘날의 법과 정책은 불완전합니다."라고 그는 설명했다.

1989년 그는 중국 최초로 대학에 여성학 코스를 설립했고, 1990년 이혼이나 성추행 등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을 위한 직통 전화를 개설했다.

그러나 1999년 이후 그의 평생의 목표가 된 것은 농촌 여성들을 위해 공헌하는 것이었다.
"나는 가난을 보았습니다. 물 부족은 정말 심각합니다. 물 한병을 얻기 위해서 때로는 하루 종일이 걸리기도 하지요. 어린이들은 맨발이고, 온 가족이 담요 하나를 덮고 자며, 먹을 것도 충분치 않습니다." 이러한 광경에 충격받은 그는 여생을 그들을 위해 바치기로 결심했다.

"중국여성뉴스"의 편집장인 Xie Li Hua(시에 리 후)와 함께 그는 "농촌 여성들은 알고 있다"라는 잡지를 출간했다. 이 잡지는 고무적인 여성 성공 스토리와 함께 혁신적인 농촌 기술, 자녀 양육에 관한 정보 등을 수록했다. 잡지를 출간한 후 그는 가장 큰 문제가 여성의 문맹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1998년 중국 최초의 사회복지 비영리 교육기관인 "농촌 여성을 위한 베이징문화개발센터"를 건립했다. 이 학교는 농촌 여성들의 경제적 독립을 위해 컴퓨터와 같은 생활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의사결정방법, 읽고 쓰기, 그리고 가장 중요한 교육의 가치에 대해서도 가르친다.

"여성을 가르치는 것은 그들의 자녀는 물론 앞으로 올 전 세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라며 그는 덧붙인다. "나는 오늘날 시작한 우리의 작은 불꽃이 언젠가는 광활한 대지의 불길로 타오를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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