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차 세계여성학대회 참관기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男住外, 女住內”(남자는 밖에서 일하고, 여자는 안에서 일한다)”

이 같은 사상은 중국을 비롯해 아시아 전역의 <여성>에 대한 개념을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즉 여성은 남성의 보조자(helper)라는 것이다.

중국의 마오쩌둥은 이러한 봉건시대의 관념에서 벗어나 “이제 여성이 하늘의 반을 받치고 있다”고 주장해 여성 해방을 꿈꿨다. 중국의 여성학은 이러한 마오쩌둥의 이론을 바탕으로, 봉건시대의 관념을 부정하면서 시작됐다.

내가 중국의 여성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지역사회연구> 과목에서 ‘중국의 여성’이라는 주제로 수업을 듣게 되면서부터다. 마저리 울프(Margery Wolf)의 <현대중국의 여성>이라는 책과 다큐를 보면서 중국의 여성들, 특히 중국 농촌 여성들의 삶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때마침 중국의 유명한 여성학자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19일(일)~24일(금) 우리학교에서 열린 ‘제9차 세계여성학대회’였다.

이번 대회를 통해 나는 중국고대여성사를 전공한 천진사범대 두팡친(Du Fang Qin) 교수와 중국근대여성사를 전공한 미시간대 왕정(Wang Zheng) 교수, 2003년 막사이사이상을 받은 북경외국어대 우칭(Wu Qing) 교수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중국 여성학의 시작과 현재의 위치, 그리고 중국 농촌 여성의 지위 등 그동안 쌓여있던 중국 여성학에 대한 많은 의문을 풀 수 있었다.

두팡친 교수는 "중국의 “여성학”(Women's Studies)은 개혁개방 후인 1980년대 초에 처음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1978년 중국 경제가 계획경제체제에서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며, <경쟁>이라는 개념이 중국사회에 처음으로 도입됐다고.

그러나 <경쟁>은 여성을 다시 집 안에 갇히게 만들었다. 즉, 봉건사회의 “男住外, 女住內”로 회귀한 것이다. 그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등에 업고 중국의 <여성학>은 출범했죠"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중국에서 <여성학>이 발전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중국 역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수 천년에 걸쳐 형성된 가부장적 사회구조가 공고히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은 ‘전족’ 과 중국의 전통의상인 ‘치파오’ 등 다양한 풍습으로 억압받았으며 여전히 가부장적인 교육을 받고 있었다.

또 농촌으로 갈수록 여성은 점점 소외돼 교육의 기회, 정치참여의 기회조차 박탈당했다. 헤이하이즈(호적에 실리지 않은 채 살아가는 아이들)의 90% 역시 여성이었다고.

두팡친, 왕정, 우칭 교수 등을 비롯한 중국의 여성학자들은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우칭 교수의 경우, 북경에 농촌여성학교를 건립해 이곳으로 이주한 농촌 여성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영어, 중국어 등을 무상으로 가르치고 있었다. 또한 그는 "농촌여성들의 삶을 담은 잡지인 '농촌녀'를 만들어 각 지방의 공공기관에 보냄으로써 농촌 여성들의 어려운 삶에 대해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여성학은 아직도 걸음마 중이다. 중국이라는 나라의 거대한 땅 덩어리와 많은 인구 때문이다. 왕정 교수는 "수천년간 이어져 내려온 가부장적 사회구조 역시 여성학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형성된 사람의 의식을 바꾸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기 때문이라면서.

그러나 대화 내내 이들은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은 언제나 웃고 있다. 사라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중국의 ‘전족’이 사라졌고, 명성을 떨치던 ‘봉건제도’도 결국 사라졌으며, 그들을 억압하던 ‘제국’도 사라졌다.

따라서 중국의 여성학자들은 자신들을, 중국의 여성들을 억압하는 ‘가부장제’ 역시 사라지리라 믿는다. 또한 서구중심의 여성학 역시 다시 아시아로 돌아오리라 믿는다.

아시아 대륙에서 처음으로 열린 제 9차 세계여성학대회. 중국의 여성학자들은 “최초이자 최고의 대회”였다고 입을 모아 이번 대회를 칭찬했다. 한국의 여성학을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왠지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중국 여성들 더 나아가 아시아의 여성들, 그리고 세계 여성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내가 중국의 농촌 여성들의 입장이 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 ‘역지사지’의 마음, 그것이야말로 ‘세계여성학대회’가 그리고 중국여성학자들이 내게 준 소중한 교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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