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미를 원망치 말고 제도와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거라. 너의 에미는 과도기의 선각자로 운명의 덫에 희생된 자였드니라”

소복을 입은 한 여인의 구슬픈 노래가 교정에 메아리친다. 웅장하게 흐르는 남녀 합창 소리는 지나가는 사람의 발길을 잡아끈다.

세계여성학대회를 맞아 나혜석의 삶을 재조명하는 ‘극단城’의 뮤지컬 ‘나혜석’이 22일(수) 오후4시30분 학생문화관 앞에서 열렸다. 이날 공연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및 소설가이자 여성 운동가인 나혜석의 일대기를 절제된 대사와 춤, 음악을 통해 그려냈다.
나혜석은 1920년대 당시 페미니즘적인 시각의 작품활동 ∙ 이혼 ∙ 위자료 청구 등 가부장제 사회에 대항하는 급진적 삶을 살았던 문화인물이다.

▲ 22일(수) 학생문화관 앞에서 열린 ‘극단城’의 뮤지컬 ‘나혜석’의 공연 모습. [사진:이유영 기자]
무엇보다 이 작품은 나혜석이 이혼 전후에 어머니와 한 여자로서 겪는 정신적 고뇌에 중점을 둔 것이 특징이다. 이에 대해 연출가 김성열씨는 “화가로서의 나혜석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나혜석을 다루고자 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출연진은 사방이 열린 마당극 형식의 야외 무대에서 열연을 펼쳤다. 극의 초반부에서는 여러 명의 여자배우들이 비명을 지르고 뒹굴며 팔을 허공에 찌르는 퍼포먼스로 남성 중심의 억압적인 사회 속에서 고통 받는 조선여성을 표현했다. 빠른 박자의 다듬이 소리는 격렬함을 한층 더해 이들의 고통을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육체와 정신이 한계에 다다른 나혜석(정명옥 역)이 “나는 어디로 가야하죠?”라며 울부짖는 장면에서는 관객들 모두 숨죽이며 극에 동화됐다. 공연이 절정에 다다르자, 시대를 한탄하며 죽어가는 그의 한 맺힌 절규와 몸부림에 몇몇 관객들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 22일(수) 학생문화관 앞에서 열린 ‘극단城’의 뮤지컬 ‘나혜석’의 공연 모습. [사진:이유영 기자]
공연을 관람한 김자인(미술학부 ∙ 1)씨는 “연기자들의 열연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며 "이중섭 등 남성화가들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화가 나혜석의 예술적이고 선구자적인 삶에 주목해 감명깊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편 이번 공연은 몇 가지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열악한 무대 ∙ 음향 장치로 인해 공연 중 배우들의 마이크가 간혹 작동하지 않았고, 주변 주차장의 소음이 공연 진행에 방해가 됐다. 또한 공연 시간 및 장소가 제대로 공지되지 않는 등 홍보도 부족했다.
김성열씨는 “공연 메시지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주최 측의 보다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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