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가 후배를 폭행하는 것은 개그계의 ‘관행’이다”

얼마 전 후배 폭행사건으로 구속된 한 개그맨이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선배라는 권위의식만 앞세워 후배에게 벌을 주는 행위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관행’을 들먹이며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시키려는 그의 태도였다. 폭력이 관행이라는 이유로 정당화 될 수 있다니. 나는 충격과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관행이란 전부터 관례가 돼서 내려오는 것을 말한다. 당연한 사실로 여기고 해오던 것이 오랜 시간 이어져 내려와 습관처럼 굳어져 버린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관행을 잘못의 면책사유로 사용한다는데 있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관행은 올바른 것으로 바꿔야 하는 것인데도 무작정 따르려고만 한다. 그것이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관행이란 이유만으로 말이다. 물론 관행이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이미 사람들의 생각 속에 굳어져 버려 뒤집어 생각해 보는 여지까지 포기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때로는 관행이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오래된 관행에 길들여져 있거나 기존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히면 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개그맨 폭행과 같은 부정적인 관행은 아니지만, 나에게도 관행에 묻혀 스스로 한계를 규정지은 경험이 있다. 처음 학보사에 들어와 수습기자를 시작했을 때, 선배들로부터 취재 관행이라는 것을 배웠다. 수습기자들을 위한 일종의 출입처 제도가 그것이다. 출입처 제도란 학내의 여러 취재처를 나눠 각자가 맡은 곳에서 기사화 할 수 있는 정보를 알아오는 시스템을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취재 관행대로 움직이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취재처를 다 돌았으니 내가 할 일을 다 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일의 효율성을 높이기위한 취재 관행의 본질은 파악하지 못한 채 기자로서의 내 역할을 한정지었던 것 같다. 폐쇄적인 공간에 한정된 기사만 썼으니 기자로서의 역량을 더이상 키울 수가 없었다.

이렇듯 부정적인 관행이든 아니든 그 틀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기존의 문화나 분위기에 이미 익숙해져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관행이라는 것은 자신이 소속된 집단의 문화와도 상호 연관돼 있다. 기존의 관행에서 벗어나 새롭고 긍정적인 시도를 하려는 이는 기존 관행을 고수하려는 집단의 구성원들로부터 배척당하기 쉽기에 관행을 타파하기 어려운 것이다.

습관처럼 따르던 기존의 관행 때문에 발전과 성장이 정체된다면 이를 과감히 바꿔야 한다. 언제까지 관행에 매여 고인 물처럼 썩기만 할 것인가. 관행을 따르기에 앞서 한 번쯤은 뒤집어 생각해 보자. 관행에 매여 굳어진 사고의 물꼬를 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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