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년 첫 교양강의 개설… ‘한국여성연구원’등이 활발한 연구 펼쳐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토의를 통해 나 자신을 뒤돌아 볼 수 있었어요”
현재 우리 학교에서 여성학을 연계전공 하고 있는 리원(법학·4)씨는 여성학을 통해 ‘당연하게 생각했던’기존의 사회구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고 한다. 학부에는 연계전공이, 대학원 내에는 석·박사 과정이 개설돼 있는 여성학은 이화의 ‘얼굴’이자‘역사’그 자체다.

‘아시아 여성학의 메카’로 불리며 여성학 발전에 있어서 꾸준히 노력해온 이화여대. 이화 여성학의 시작은 1950∼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성과 직업’·‘여성운동사’·‘여성사회학’의 경우 본격적인 여성학 과목 개설 이전에 기존 학문을 여성의 눈으로 새롭게 바라보자는 의식에서 출발한 과목이었다.

초대 여성학과장이자 초대 한국여성연구원장을 역임한 김영정 교수(사학 전공)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학생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던 교수들을 중심으로 여러 논의가 이뤄졌다”고 전했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여성학연구위원회’와 ‘한국여성연구소(현 한국여성연구원)’는 여성학과가 생기기 전까지 여성학 교과과정 개설 및 운영을 담당했다. 이들의 노력은 그 해 9월 학부에 ‘여성학’교양 강의를 설치하는 결실을 맺게 된다. 교과목 개설 당시 ‘여성학’ 수강 신청을 하기 위해 새벽5시부터 학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 사건은 당시 일간지에 실렸을 정도로 유명했다. 여성과 문학·여성과 역사 등의 다양한 주제 아래 팀티칭을 도입해 토의·촌극·인터뷰 등을 시도한 ‘여성학’은 당시로서는 매우 신선한 수업이었다.

이러한 ‘여성학’ 교양강의의 발전은 마침내 82년 아시아 최초로 대학원에 여성학 석사 과정이 개설되는 성과를 이뤄냈다. 이어 84년 여성학과 최초의 전임교수인 장필화 교수(여성학 전공)가 부임하면서 여성학과는 점차 틀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90년 대학원 내에 개설된 여성학과 박사과정은 좀 더 심화된 여성학 연구를 가능하게 했다.

한국여성연구소로 출발한 학내 여성학 연구 기관 역시 ‘한국여성연구원’·‘아시아여성학센터’·‘여성신학연구소’ 등으로 세분화돼 이화 여성학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여성연구원’의 경우 우리나라 여성에 대한 연구와 함께 학부 내 여성학 강의를 개설하는 것은 물론, 「여성사 자료집」과 학술지「여성학 논집」등을 출간해오고 있다. 한편 ‘아시아여성학센터’는 아시아 여성들간의 학술교류 및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일본·중국·필리핀·인도 등 아시아 8개국의 여성학을 비교해 아시아 여성학의 토대를 만드는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여성신학자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여성신학연구소’는 지난 2004년에는 미국의 흑인여류작가 앨리스워커의 초청강연을 주최하는 등 다양한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이화 여성학 내에서의 학문적 화두 역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를 겪어왔다. 80년대의 경우 자본주의 비판과 관련해 여성노동운동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졌다면, 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성폭력 등 성(性)에 대한 논의와 함께 여성과 문화·여성과 미디어 등 여성학 연구가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었다. 2000년대에 이르러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늘어나기 시작하자 기존의 남성 중심주의적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자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이러한 학문적 특징은 사회적으로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91년 문을 연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최영애 소장을 비롯해 여성학과 졸업생 약 50여명이 함께 참여해 당시 큰 화제를 일으켰다. 또 여성사회학을 연구해온 ‘여성운동의 대모’ 이이효재 교수(사회학 전공)를 필두로 97년‘부모성 함께 쓰기’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화의 여성학은 오랫동안 ‘엘리트 페미니즘이다’또는‘상아탑에만 갇힌 채 일상과 괴리된 여성학’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대해 장필화 교수는 “상대적으로 예전에 비해 소외계층의 여성들을 연구하는 비중은 적어졌으나 그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이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이효재 교수는 “여성학이 학문의 틀에만 갇혀 있기 보다 이론과 실천을 연결하는 역할을 충실히 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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