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학생을 지배하는 문제는 ‘취업’이다. 대학생들은 취업에 유리한 전공을 선택하고 기업이 요구하는 경험을 쌓는다. 취업 전선에서 성적표는 대학생활의 성공 여부를 평가하는 기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문학의 위기’, ‘상아탑의 몰락’이라는 말이 뒤따른다. 이제 플라톤의 「국가론」를 들고 세계와 자아를 논하던 대학생들의 모습은 까마득한 과거가 됐다. ‘학문의 전당’이 아닌 ‘취업 학원’으로 변해가고 있는 대학의 현주소다.

이런 상황에 다시 플라톤의 「국가론」을 손에 든 대학생들이 있다. 25일(수) 연세대 위당관에서 열린 작은대학 22기 학생들의 첫 세미나에서다.

작은대학은 1991년 11월, 우리 학교 진덕규 명예교수(정치외교학 전공)·연세대 박영신 명예교수(사회학 전공) 등 5명이 발표한 ‘작은대학 운동 선언서’로 출범했다. 기업 맞춤형 인재 육성에만 힘쓰는 대학이 소홀히 한 학문의 기능을 ‘고전 읽기’를 통해 보완하겠다는 취지다. 신촌 지역 대학가를 중심으로 고전에 관심있는 학생들이 모여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노자의 「도덕경」 등의 철학서를 읽고 토론하기 시작한 것이 22기에 이르렀다. 현재는 인터넷 홈페이지(smallcoll.com)를 통해 입학신청을 받고 있다.

사회 변화에 따라 학생들의 손에서 버려졌던 고전이 이곳에서 그 위상을 회복한다. 이해하기도 버거운 책을 읽어낸 학생들이 서툴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생각을 발표한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을 공자의 정명 사상과 연결하는 학생도 있고, 만인에게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지 않은 플라톤의 철학을 비판하는 학생도 있다. 플라톤의 사상이 오늘날 엘리트주의의 단초가 됐다는 의견이 제시되자 강의실 분위기가 고조되며 엘리트주의의 정당성 여부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진다. 이 날 토론회를 이끈 박영신 교수는 “학생들이 처음엔 고전을 깊게 읽는 데 어려움을 겪지만 회가 거듭될수록 발전해 간다”고 전했다. 학생들의 능력이 저하된 것이 아니라 고전을 읽는 일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고전을 읽으려는 학생들의 욕구만큼은 충만해보인다. 작은대학에 온 학생들의 지원 이유는 대부분 ‘고전을 읽고 싶어서’였다. 이번에 처음으로 작은대학을 찾은 연세대 변종국(정외·2)씨는 “고전 읽기에 관심은 많았지만 혼자 읽기는 버거웠다”며 “고전읽기 커리큘럼이 마음에 들어 작은대학을 찾게 됐다”고 참여 동기를 밝혔다. 작년 서강대 철학과를 졸업했다는 김양희씨 역시 “고전에 관심이 많아 참여했다”며 “인문학이 인기없는 학과로 전락하는 등 시대가 변했지만 ‘고전’의 가치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박영신 교수는 “기능교육에 치중해 근본에 대해 고민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며 오늘날의 대학을 비판한다. 자아와 세계에 대한 고민이 없는 대학은 ‘모래 위의 집’이라는 것이다. 작은대학이 하는 일은 고전의 기름진 흙으로 땅을 다지는 일이다.

하지만 기름진 흙을 붓는 것은 학생들 자신이다. 작은대학 수업에서 특이할 만한 점은 교수의 역할이 ‘지도자’가 아닌 ‘참여자’라는 것이다. 작은대학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질문을 받아도 직접 대답을 하지 않고 “함께 생각해보자”고 말한다. 위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배우고 생각하자는 자세다. 작은대학 22기 과정에 참여한 우리 학교 문소영(수학·4)씨는 “교수와 학생의 평등한 관계가 일반 대학 강의와의 가장 큰 차이졈이라며 “지식을 배운다기 보다는 생각을 공유하는 과정이었다”고 첫 토론수업을 평가했다. 이러한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일방적인 교수의 수업방식에 익숙한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드러낸다. 읽고, 생각하고, 말하는 능력이 저하된 대학생들의 입이 터진다.

작은대학은 정말 ‘작은대학’이다. 따로 지은 건물 없이 연세대 강의실을 빌려 토론을 하고, 학생 수도 한 기에 스무명 남짓 이다. 하지만 큰 대학들이 놓치고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작은대학은 ‘작지만 강한 대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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