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인이 만나고 싶은 작가-김영하

소설가 김영하. 그의 소설을 읽으면 이런 기발한 상상을 하는 작가는 과연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진다. 학술부는 학기 초 실시한 ‘이화인이 만나고 싶은 작가 선호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작가 김영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나봤다. <편집자>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는데 현장에서 느끼는 대학생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독서량·글을 소화하는 능력·상상력의 측면에서 보자면 요즘 학생들은 내가 대학에 다녔던 80년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에 와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도전정신과 패기가 부족하고 자신이 뛰어나다는 것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80년대 대학생들은 ‘글 좀 쓴다’·‘음악 좀 한다’하면 ‘밖에 나가서 판을 뒤집어 보겠다’는 의지와 열정이 있었다. 물론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대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기’와 ‘반역적 정신’이다. 요즘 학생들은 어떠한 판이 완성돼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 안에서 어느 정도의 역할만을 맡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마디로 꿈이 작아졌다.

-주로 아침에 집필한다고 들었는데 하루를 어떻게 보내나.
강의가 있는 날 외에는 보통 아침7시30분쯤 일어나 책보고 뒹굴면서 논다. 뒹굴거리고 있으면 ‘그저 구상중이려니’,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으면 ‘고뇌하고 있으려니’ 생각한다는 점에서 작가는 참 괜찮은 직업이다.(웃음)
작가는 새로운 것이 등장하면 편견없이 바라봐야 하고 이상한(?) 생각도 많이 해야하기 때문에 정신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야 한다. 일종의 정신적 요가를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마치 봄이 오면 농부들이 땅을 말랑말랑하게 하기 위해 객토(客土)하듯이 말이다. 그만큼 채우는 것 이상으로 비우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집필하고 있는 작품은.
현재 「문학동네」에 북쪽으로 갑자기 올라가야 하는 40대 고정간첩을 그린 장편 「빛의 제국」을 연재하고 있다. 20세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간첩이 많았던 첩보전의 시대였다. 소설 속 고정간첩은 대학생으로 신분을 위장해, 남에서 결혼도 하고 영화수입업자로 외국을 오가며 20여년을 살아온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북으로부터 올라오라는 명령을 받게 되는데 문제는 무슨 이유에서 불러들이는지 ‘직접 가봐야’ 알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20여년간 익숙해진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단 북으로 올라가야 하는 상황을 하루라는 시간 속에서 그려내고 있다. 작품 구상을 위해 요즘 스파이·간첩을 다룬 책을 탐독 중이기도 하다.

-초기 작품과 최근 작품의 느낌이 많이 달라진 듯한데.
일단 나이를 먹었고 독서취향도 변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여러가지 면을 고려하게 됐다. 초기 작품이 강렬한 인상을 주고자 했다면, 이제는 독자들로 하여금 복잡한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을 써보려 한다. 초기 작품에서는 주인공들이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면, 최근에는 ‘오빠가 돌아왔다’ 속 주인공처럼 집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세상 일이라는 게 그리 간단치 않은 것처럼 소설로써 세상이 가진 복잡한 딜레마와 애매함을 보여주고 싶다. 때문에 이러한 것들을 소설로 적절히 표현할 수 없을까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물론 이전의 ‘센’소설이 좋았다는 독자들도 있지만 나는 지금의 소설이 좋다.

-젊은 독자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데.
10년 전 소설을 시작할 때부터 젊은 지식인층의 열렬한 지지가 있었는데, 지금도 주 독자층은 20~30대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그런지 별로 실속이 없고 베스트셀러도 안나오는 듯하다. 특히 대학생들은 친구들끼리 서로 책을 돌려 읽거나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 때문에 다들 책을 죽어라고 안산다.(웃음) 하지만 대학가에서 많이 팔린다는 것은 영예로운 일이다. 앞으로도 젊고 지적인 독자들이 내 소설을 계속 읽었으면 한다. 모든 연령대가 좋아하는 국민 작가가 되는 것도 좋지만 그 쪽 재능을 가진 사람은 따로 있는 것 같다.

-오늘날 소설은 무엇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사람들이 향유하는 문화는 소비문명의 측면에서 이미 절정에 달했다. 현재 우리는 한국에 있다가 미국·유럽에 나가도 ‘불편함’을 느끼거나 당황하지 않는다. 또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CSI’등의 외화시리즈를 현지인과 동시에 접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소설이 여전히 ‘소 끌고 대관령 넘어가는’옛날 이야기만을 그려낸다면 문제가 있다. 90년대에 이르러 독자들이 과거 문학의 엄숙·진지·심각한 것들로 더 이상 자신을 표현할 수 없다고 느끼자, ‘사소한 것’을 가지고 소설을 쓰는 소설계의 큰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즉 삶의 공허를 쇼핑으로 채우는 현대인들은 “실연당했을 땐 친구보다 구두가 더 좋아”라고 말하는 ‘섹스 앤 더 시티’를 더 좋아할 수도 있는 것이다.

-바보같은 질문이지만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책은 유일하게 ‘시작’과 '끝'이 있는 정리된 미디어다. 현재 그 어떤 것도 책만큼 체계적이고 정확하게 정보를 줄 수 없다. 예를 들어 과제를 할 때 인터넷 검색을 이용하면, 목차 하나 없이 광활하고 끝없는 정보 때문에 뻔하고 얄팍한 지식으로 무장하게 될 뿐이다. 가치있는 고급 정보는 책에 있기 마련이고 책은 오래 저장되는 습성이 있다. 나의 경우는 아파트를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도 책을 사는 사람이다. 어쨌든 도서관과 서점을 자주 드나드는 사람들이 살아남을 것이다. 또 책은 세상의 흐름을 그 어떤 것보다 앞서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미리 준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책’인 것이다.

-이화인이 만나고 싶은 작가 1위에 뽑혔는데.
1위를 했다니 기쁘다.(웃음) 남녀공학은 성역할이 정해져 있는데 이대생들은 스스로 다해야 하기 때문에 큰 기회가 제공되는 것 같다.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해보는 자신감이 중요해지는 시대인 만큼 성장 가능성도 크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꿈을 3∼4배는 크게 ‘뻥튀기’해 다양한 일에 도전했으면 한다. 앞으로 10년 후 여성들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다양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상상 가능하다는 것은 실현 가능하다’는 점을 기억하길 바란다.

-다른 장르를 시도할 계획은 없는가.
아무래도 현재 연극원에 소속돼 있기 때문에 연극을 많이 보게 된다. 요즘 전통적인 연극사의 정전들을 보면서 희곡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배우와 관객이 직접 얼굴을 맞대는 연극의 생생함은 감동과 웃음을 주기에 충분하다. 또 공간이 제약돼있기 때문에 더 많은 상상력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

-22년 후 환갑을 맞이했을 때 어떤 모습이 되어 있길 바라는지.
22년 후에는 세계적인 작가가 되어 있지 않을까.(웃음) 지금은 황당해보일 수 있어도 무례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영화·미술·음악 등 많은 장르들이 세계로 진출하고 있는 것처럼 문학도 언젠가는 그러한 기회가 올 것이다. 내 나이 육십쯤 됐을 때는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한국에서 태어난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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