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인이 만나고 싶은 여성 문화인 ­- 노희경

-언제 처음 드라마 작가를 꿈꿨는지.

대학시절 문예창작을 전공하면서 막연하게 시인이나 소설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27살이 되던 해, 드라마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드라마 작가 공부를 시작하며 방송작가협회 교육원에서 들었던 첫 강의가 아직도 생생하다. 강사가 칠판에 쓴 ‘드라마는 인간이다’라는 문장에 가슴이 떨렸다. 그 때까지는 글의 목적이 없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인간’ 그 자체가 되었다. 가슴 저 밑바닥부터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인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눈물이 날 만큼 기뻤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순정을 다 바쳐 드라마를 쓰고 있다.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유독 많은데 그 이유는.

‘꽃보다 아름다워’와 ‘내가 사는 이유’의 고두심 씨, ‘거짓말’의 윤여정 씨, ‘화려한 시절’의 박원숙 씨 등 많은 어머니를 그려왔다. 나의 어머니는 ‘꽃보다 아름다워’와 ‘거짓말’에 등장하는 어머니와 가장 비슷하다. 내가 아무리 소리치고 짜증을 부려도 그들처럼 묵묵히 바라봐주셨다. 그 분은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지혜로우셨고, 나를 사랑하는 자식으로 여기실 뿐 전유물로 생각하지 않았다. 나의 인생에 대해 간섭하지 않으면서 나의 능력에 대해선 늘 인정해주셨다.
그리고 어머니가 암에 걸렸을 때 환자를 돌보는 가족의 마음을, 돌아가셨을 때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됐다. 이 모든 경험이 작가로서 드라마를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생각해보면 어머니가 나를 위해 죽음으로써 헌신하신 것 같다.

-동성애·불륜 등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을 많이 그렸는데.

세상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축복해주는 사랑을 하는 연인이 얼마나 되겠는가. 내 주위를 둘러봐도 주변 사람의 반대로 쉽게 결혼한 사람이 없다. ‘소수자들의 사랑’이란 것도 알고보면 편견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 것이다. 학창시절 동성 친구에게 설레보는 등 동성애를 느낀 사람이 많고, 실제로 ‘불륜’이라 불리는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도 많다. 사랑은 자신이 만족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남을 만족시키고 비난받지 않기 위한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의 드라마 소재가 너무 자극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 사람 열명이면 열명, 모두가 극적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부모가 이혼하거나 형제가 집을 나가는 등 순탄하게만 살아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 오히려 평범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 비범한 것이 아닐까.

-작가가 생각하는 드라마의 이상적 모델은 무엇인가.

앞서 말했듯이 드라마는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즘의 드라마를 보면 인간을 로봇처럼 그리고 있다. 즉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같은 감정을 역행하는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이는 사람들에게 강해져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을 심어주고 있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자신이 왜 드라마 주인공처럼 살지 못하는지 자책감을 갖기도 한다.
또 사회에 첫사랑 컴플렉스가 심한 이유때문인지 평생 첫사랑 연인을 사랑하는 비현실적인 드라마도 나온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면서 잘못된 환상을 심어나가고 있다.
드라마 캐릭터를 설정할 때 나는 내 성격의 단면을 확대하고 그것에 빗대어 캐릭터를 만든다. 나에겐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등장하는 미옥(배종옥 분)처럼 집안 일을 모두 내 손으로 해결하는 모습도 있고, 자수성가한 것을 잘난척하는 미수(한고은 분)의 성격도 갖고 있다. 또 어리숙하고 순한 성격의 엄마(고두심 분)같은 면도 지니고 있다. 때로는 실생활에서 발현하지 못한 억눌린 자아를 드라마 안에서 등장인물을 통해 해소시키기도 한다.
이처럼 나를 통해 드러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완벽하지 않고 부족한 면이 많다. 이렇게 우리 안의 비루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시청자들에게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다. 때문에 사람들이 ‘저건 딱 우리집 얘기야’, ‘드라마에 나오는 저 사람은 우리 엄마랑 정말 똑같아’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세상을 어떻게 그려내고자 하는가.

나는 본래 악한 존재란 없다고 생각한다.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한평생 바람을 핀 아버지(주현 분)도 그 입장에서 생각하면 모두 이해할 수 있는 한 ‘사람’일 뿐이다. 나는 세상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 전체에서 연민을 느끼고 이해하려 노력한다. 각자의 인생에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 규정지을 수 없다.
젊은 작가들에 비해 나이가 들어선지 이해심이 높아지면서 오히려 그들보다 편견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고정관념 없는 그대로의 현실을 드라마 속에서 표현하고자 한다. 이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먼저 만들어 놓은 ‘상’을 빗대어 다른 사람을 판단하면 안된다. 이 세상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참 아름답기 때문이다.

-인생의 선배로서 이화인에게 격려의 한 마디를 한다면.

내가 젊었을 때는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해 스스로를 많이 자책했다. 그런데 이제와서 그때를 돌아보니 ‘나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힘들지 않았을 것 같다. 어른들께서는 나에게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말씀해주셨지만 그것을 기득권층이 하는 얘기로 치부해버렸었다. 또 기회를 나 스스로 만들어가지 않고 저절로 누군가가 쥐어주기만을 바랬다.
그리고 내부적 불만과 함께 외부적 불만도 많았다. 즉 나의 형제, 부모를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컴플렉스의 대상’이라고 여겼다. 그 때 인생의 힘든 고비들을 나의 글감, 인생의 숙제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해결했어야 했다.
인생은 설계한대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여태까지 공부하지 못했고, 연애하지 못했고, 미래를 설계하지 못했어도 지금부터 시작하면 된다. 지나간 일을 후회하며 시간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모두 다 자신에게 필요하고 합당한 시간이었다고 여겨야 한다. 그리고 바로 ‘지금’이 실천해야 할 그 시기라는 것을 알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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