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화두는 같음보다는 ‘다름’인 듯합니다. 지역성이 중요해지고, 문화의 다양성이 주목되며, 문화 안에서도 상대적인 위치에 따른 주체의 차이에 관심의 초점이 모아집니다. 이런 흐름은 여성들의 문제를 논하는 여성학의 장이라고 예외일 수 없겠지요.

너와 나의 ‘차이’를 이야기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서로의 정체성을 확보해 다른 목소리들의 울림이 있을 때, 지배와 억압을 넘어서는 관계가 가능하다는 사실 때문이겠지요. 또 무지의 베일을 벗어 던지고 삶의 상황적 차이들로 구성된 주체로서 토론의 광장에 설 때 비로소 얽힌 문제를 푸는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는 진리를 역사로부터 체험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비록 그 대화가 항상 합의를 약속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때로는 합의보다 의미 있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할 수 있게 만드는 소통의 정치적 무대를 제공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지요.

한 달 앞으로 성큼 다가온 세계여성학대회는 주체의 다름이 인정되고, 그 다름이 서로를 비춰보는 자원이 되도록 만드는 이론과 실천의 장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여성들은 동시대를 산다는 우연한 인연으로 만나 생태환경의 급속한 파괴·지역공동체의 해체 등 후기 산업화가 만들어낸 시대적 문제를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이들은 인종·계급·세대·섹슈얼리티 등의 차이를 넘어 서로의 지구적인 위치와 그로 인해 서로에게 갖게 되는 정칟경제적 제반 관계들을 확인하면서 그 해결책을 씨름하는 만남과 연대의 장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이번 세계여성학대회에서는 ‘젠더 정체성’·‘환경’·‘대안적 세상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등 지구화 시대의 문제를 풀어갈 20개 주제로 구분된 학술발표들이 진행됩니다. 이와 함께 각 지역의 문화와 예술을 알리는 다양한 문화행사, NGO 부스를 통한 전 지구의 여러 여성 단체들의 네트워킹 등이 함께 어우러져 그야말로 세계 여성들의 축제의 한마당이 열릴 것입니다.

화려했던 꽃들 대신 이젠 연녹색 잎들이 캠퍼스의 초여름을 실감케 합니다. 세계여성학대회가 열릴 때면 울창한 짙푸른 숲을 이루고 있겠지요? 밝은 햇살 아래 드리워진 이들 숲 그늘 아래에서, 세계 각국에서 날아온 여성들이 연출해낼 역동적인 토론의 큰 잔치를 그려봅니다. 피부색도, 언어도, 연령도 모두 다른 여성들이 119년 역사의 우리 학교를 중심으로 신촌의 대학 캠퍼스들을 넘나들 모습. 그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새로운 변화의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 허라금 교수(여성학 전공) [사진:이유영 기자]
저는 여성학과 허라금 교수 입니다. 대학 시절 전공했던 철학 중에서, 특히 삶이 중심이 되는 윤리학이 여성으로서의 삶에 관심을 갖도록 인도했죠.
일반적으로 자신이 처해있는 정칟경제·문화 상황에 따라 여성에 대해 갖고 있는 문제의식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환경에 살고 있는 여성들을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현재 연구하고 있는 ‘여성주의 윤리학’은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의 말에 귀기울이고, 그들이 억압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우려는 윤리의식을 갖게 합니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