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민주항쟁이요? 광주에서 일어난 운동이라는 것밖에 모르는데요” 광주민주항쟁의 의미를 묻자 대다수의 학생들이 보인 반응이다.


5·18 광주민주항쟁이 올해로 25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대동제로 한창 분주한 요즘 대학가에서 5·18의 분위기를 느끼기란 어렵다. 80∼90년대 각 대학별로 추모식·묘역 참배 등의 행사를 진행하며 광주민주항쟁의 의미를 기렸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5·18 광주민주항쟁은 1980년 5월18일∼27일 전라남도 및 광주 지역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이다. 당시 정권을 잡은 신 군부세력이 비상계엄전국확대조치(계엄령)를 발표하고 민주 인사들을 체포하자 시민들은 계엄령 철폐와 전두환 퇴진, 김대중 석방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에 신 군부세력은 2만5천명에 달하는 군인을 광주 지역에 투입해 무력으로 진압했고 그 결과 2천여명의 시민들이 희생됐다.

당시 희생된 민주 인사들에 대해 전남대 5·18 연구소 최영태 소장은 “오늘의 민주화는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결코 이뤄내지 못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우리 학교 김영미 교수(사학 전공)도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당시 시민들의 희생에 의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광주민주항쟁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대학가의 움직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항쟁의 시발점이자 당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전남대는 5·18 망월동 순례·오월문학공모전·사진전을 비롯한 의미있는 행사를 진행했다. 서울대도 14일(토)∼15일(일) 광주순례단을 모집해 망월동 묘역을 참배했다.


우리 학교는 대동제 실천단 ‘쟁이’가 대강당 앞 펜스에 ‘5·18 광주민주항쟁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배울 것인갗란 내용의 대자보를 붙였다. 법대는 법학관 앞에 대자보를 붙여 ‘5·18 민주항쟁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 면면이 이어져 내려온 자발적인 민중운동의 소산’임을 밝히고, 당시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전시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5·18 광주민주항쟁이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인식하지 못한다. 김영미 교수는 “요즘 학생들은 민주항쟁을 3·1운동처럼 아주 먼 일로 여긴다”고 지적했다. 민주화된 시대에 살고 있는 젊은 세대는 암울했던 당시 시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에 5·18 기념재단 김대인 부장은 “광주민주항쟁은 80년대는 물론 90년대 세대의 가치관까지 변화시켰다”며 “한국 근·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은 5·18의 의미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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