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을 탄 토끼
잠수함 제조 기술이 크게 발전하지 못했을 당시, 잠수함 안의 산소량 변화 측정은 선원들의 목숨이 달린 일이었다. 잠수함은 타고 내려갈수록 수심이 깊어지고, 산소량이 부족해져 사람의 목숨이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원들이 택한 방법은 토끼를 잠수함에 태우는 것. 그 이유는 토끼가 여러 동물 중 토끼가 산소에 가장 예민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수심이 깊어짐에 따라 토끼의 변화를 살피고 토끼가 호흡곤란을 느끼는 듯 보일 때, 더이상 내려가지 않는 방법으로 선원들의 목숨을 구했던 것이다.

여기서 잠수함은 ‘사회’, 토끼는 ‘기자’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사람의 목숨과 직결되는 잠수함 속 산소 변화량에 가장 예민한 토끼처럼, 사회의 변화와 문제에 예민한 기자. 나는 그 토끼처럼 이 사회의 변화를 예민하게 느끼고 그것이 문제임을 구성원에게 자각시켜 해결 방법을 촉구할 줄 아는 기자가 되고 싶다.

물론 위의 예민한 토끼에 비하면 나는 아직도 둔한 곰이다. 사회 변화에 예민하지 못함을 물론이거니와 기사 속 진실을 바라보는 눈이 부족하고, 그 기사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도 부족하다.

아직은 나만의 정치적·사회적 주관이 뚜렷하지 못하고 내 주장에 대한 논리적 비판력도 부족하다. 그래서 늘 조급하고, 늘 무언가를 단번에 습득하려고 한다. 하루 아침에 배울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무언가를 잘하고 싶으면 ‘무조건 이번에 다하자’라는 조급함에 불안해 한다.‘왜 나는 이야기 속 토끼처럼 될 수 없을까’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토끼는 산소 변화량에 대한 예민함을 한순간에 습득한 걸까? 사람이며 동물은 모두 환경과 의지에 따라 변화하고 발전한다. 토끼 역시 동물의 세계에서는 작은 동물에 불과한 약자인지라 생존을 위해 산소 변화량에 민감해졌으리라. 그리고 그 변화에 민감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생존과 더불어 살아야겠다는 자신의 의지와 본능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 역시도 토끼처럼 아직은 수습 딱지를 못뗀 어설프고 미약한 기자다. 그러나 토끼의 환경이 산소에 민감하게 만들었듯, 좀 더 깊이 있고 논리적인 기사를 쓰라 자극하는 학보사라는 환경이 나를 사회의 변화에 민감한 기자로 이끌어 줄 것이다. 그리고 산소에 민감해 지려는 토끼 스스로의 노력과 의지처럼 나 역시도 사회 변화에 민감해지고 새로운 시각을 발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과거처럼 ‘단 한번’에 배우려는 조급함을 버리고 말이다. ‘조급함’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 부족이다. 자신이 선택한 환경과 자기 자신의 의지를 조금만 더 믿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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