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상대평가에 대한 부담감이 학생들 과잉경쟁 부추겨

각기 다른 특징의 학생들 자아발전을 위해서는 절대평가가 바람직
전공 외 다양한 공부 및 동아리

-학점 포기제 등 학점관리에 학생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나.

심경민(심):취업시 개인의 다양성과 개성을 본다고 해도 아직 출신학교나 학점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학생들은 실업자 60만의 현실에서 가만히 있으면 뒤쳐진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이같은 사회적 현실 때문에 학생들은 학점에 더 목숨을 걸게 된다.
김한나(한):요즘 대학생들은 ‘입시’라는 명확한 목표에 도달한 후 주어진 막연한 자유 때문에 ‘목표상실증후군’을 앓게 된 것 같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좋은 학점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김은혜(김):개인적으로 학생의 본분은 공부이며, 학점은 성실함을 나타내는 지표와 같다고 생각한다. 물론 성적과 성실함이 일치되지 않을 수 있고, 학점에 얽매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현실에서 성적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화인들이 이토록 학점관리에 유난히 신경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허명 교수(허):우선 이같은 현상을 학점 지상주의라고 정의하고 싶다. 경쟁 사회가 심화되다 보니 학생들은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는 사회에서 유리한 것을 갖고 싶어 하는 욕구가 분출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제도적 측면에서 보면 상대평가도 그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대형 교양과목 수업에서 시험을 보면 전체 90%정도가 70점 이상의 점수를 받는다. 이정도면 B이상 줘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상대평가로 어쩔 수 없이 C·D를 줄 수밖에 없고 기대만큼 성적을 받지 못한 학생들은 실망하는 것 같다.

남궁곤 교수(남궁):나도 상대평가를 반대한다. 학생 개개인의 개성과 특기를 일률적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상대평가라는 제도가 더이상 이전의 목표인 국가발전의 원동력·공평성의 기회로 이어지지 않는다. 학생들의 자아발전 측면에서도 절대평가가 더 바람직하다.

김:흔히 절대평가를 하면 학생들이 열심히 하지 않을거라 생각하는데, 절대평가도 충분히 학생들의 동기유발요소가 될 수 있다. ‘명작명문읽기와 쓰기’를 수강한 적이 있는데 절대평가인데도 수강생들이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나 역시 평소 글쓰기에 자신이 없었지만 경쟁에 대한 부담을 덜고 편하게 도전할 수 있어 좋았다. 앞으로 절대평가 과목을 늘리는 등 시스템의 변화를 유도해 학생들이 학점 부담없이 좋아하는 과목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이같은 ‘학점지상주의’는 어떤 문제점을 야기시키나.

심:시간표를 짤 때 평소 듣고 싶었거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과목보다 학점 받기 쉬운 강의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같은 과목이라도 분반이 있다면 이화이언의 강의평가를 참고해 소위 학점 받기 쉬운 교수님을 고르는 것이 사실이다.
한:내 경우 철학 전공을 듣고 싶었지만 전공자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선뜻 수강신청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교양 철학 강의를 신청했으나 30명이 안된다는 이유로 폐강돼 듣지 못한 적이 있다.

남궁:이번 학기 자연계열 1학년 학생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위한 교양과목을 맡았는데 대부분 인문·사회대 3∼4학년이었다. 지식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졸업을 위한 학점관리 차원에서 강의를 듣는 것 같아 씁쓸했다. 게다가 수강대상인 1학년은 고학년과 경쟁하기 두려워 철회하는 경우가 많았다.

허:인문 사회 자연계 등 다양한 분야의 학생들이 수강하고 있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는데 학생 개개인의 수준을 고려해 수업 내용을 선정한다. 예를 들면 고학년이나 자연계도 잘 모르는 내용, 고등학교 때 배우지 않은 내용, 쉽지만 일상생활에도 필요한 내용 등이다.

심:나의 경우, 복수전공을 신청해 사회대 1학년 전공기초과목을 반드시 들어야 했다. 나와 같은 복수전공자 20명은 1학년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따로 분류돼 상대평가를 받아야만 했다. 아무리 2학년이라 해도 타전공생이라 전공에 대한 지식은 1학년이나 별반 차이없는데 말이다.

-학점에 관한 이화인들의 특징이 있다면.

한:다른 학교 학생들은 “이대생들이 학점에 목숨을 거는 것이 여자들이 다이어트에 목숨을 거는 것과 비슷하다”고들 한다. 자질이나 실력으로 본다면 학점은 정형화된 날씬한 몸매로 볼 수 있다. 학점포기제라는 제도도 일종의 성형수술이라고 본다. 이를 통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은 좋다. 그러나 실력 없이 몸매만 예쁜 것은 진정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심:YES리그의 연세대 강의에서 시험성적 1~5등이 모두 이대생이었다고 한다. 이대생은 패스·논패스로 학점이 매겨지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에 연대 친구는 매우 놀라했다.

남궁:이화인들은 교과서식 마인드를 갖고 시험에 임하는 것 같다. 학생들은 교재를 전부 외워 와 다 쓰면 A+, 하나 틀리면 A- 식으로 모범답안이 있다고 생각하며 문제를 조금만 틀어 내면 실망스런 내용을 써낸다. 이는 장기적으로 좋지 않은 현상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남궁:상대평가가 학생의 실력 향상을 위한 최적의 제도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또 우리 학교는 타대에 비해 까다로운 상대평가를 실시하고 있어 많은 학생들이 학점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정해진 범위를 넘지 않는 선에서 제도를 약간 수정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학생들 스스로가 학점은 따로 얻는 게 아니라 ‘공부’를 하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시험에 급급해 하는 근시안적 생각을 버릴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허:학점을 뛰어넘는 폭넓은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절대평가가 바람직하다. 또 개인의 발전을 위해서는 자신의 전공 분야 외에 다른 분야에도 과감히 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앨런 맥더미드라는 작년 노벨상 수상자는 물리전공임에도 화학과 연계해서 함께 연구한 공로로 노벨상을 타기도 했다.

남궁:동감이다. 정외과 전공수업을 2학기 연속 듣는 조소과 학생이 있어 이유를 물었더니 단지 이 분야를 배우고 싶어서라고 했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강의를 듣는 것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따라서 전공 뿐 아니라 인문·사회과학 등 다양한 소양을 쌓을 수 있는 독서를 제안하고 싶다. 둘째, 여행을 통해 보다 넓은 세계관을 확립하고 사고폭을 확대하는 것도 필요하다. 동아리 활동도 인생관을 세우는 데 좋은 계기가 된다. 또한 앞으로 사회에서 리더 역할을 담당하려면 이웃과 함께하는 공유의식을 습득해야 하는데, 그 방법으로 봉사활동을 권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대학생에게 학점이란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나.

김:학점은 목표나 목적이 아니라 결과물일 뿐이다. 대학이라는 좁은 공간 안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는 등 스스로를 자극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공부에 소질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활동에 더 소질이 있을 수도 있고 리더십이 있는 사람도 있다. 여러 길을 접할 수 있는 통로를 개발해줘야 한다.

심:같은 생각이다. 학점이 목적이 돼서는 안된다. 오로지 학점만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공부하면 자연스럽게 따라 오는 것이 돼야 한다.

남궁:나쁜 학점은 훈장도 아니지만 결점도 아니다. 공부벌레는 바람직하지만 학점벌레는 곤란하다. 지식은 스스로 노력해 하나씩 축적되는 신용과 같은 개념인데 단지 눈에 보이는 점수와 동일시하는 학생들이 많다. 높은 학점을 받아야한다는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
허:요즘 졸업생들을 보면 학점과 성공은 크게 관련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공부는 잘 못했지만 주도적으로 생활하던 학생들이 나중에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인생에서 학점이 차지하는 비중을 낮추고, 취미생활을 하는 등 폭넓게 사고하는 것에 더 관심을 쏟기를 바란다.

남궁:모두 비슷한 내용을 말했지만 여기서 꼭 전제해야 할 것은 학점도 물론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람의 몸에 비유하자면 학점은 심장이다. 사람 몸에는 심장 뿐 아니라 다른 기관도 모두 중요하다. 심장이 튼튼하다는 것은 건강의 중요한 척도고, 학점 또한 성실성·능력을 평가하는 지표 중 하나임은 확실하다. 그러나 심장병 외에 다른 사고로 죽는 경우도 많은 것처럼, 학점이 모든걸 해결해 준다고 오해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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