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경 교수(여성학 전공)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출산율 하락, 이혼 증가, 호주제 폐지 등 가족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변화는 5월이 ‘행복한 핵가족’이 즐기는 축제의 기간이 될 수 없음을 암시합니다. 호주제 폐지는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제도적 변화로 평가되지만, 낮은 출산율과 이혼 증가는 지나치게 앞서가는 ‘평등의 행위’로 지탄받기도 하는 상황에서 약간의 혼란스러움을 느낍니다.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와 울리히 벡은 후기 근대 사회의 친밀성(intimacy)의 변동에 대해서 말해왔습니다. 낭만적 사랑·자연적 모성·성 역할이 분리된 핵가족은 단지 근대 산업 사회의 역사적·문화적 구성물일 뿐이지, 우리 모두에게 절대적으로 주어진 운명은 아닙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가족의 변화는 21세기에 전개되는 과학기술혁명 또는 근대 시공간적 개념을 해체하는 노동과 자본의 흐름 등 전지구적인 사회 변동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국가와 인종의 경계를 초월하는 국제결혼, 떨어져 있어 일상의 공간을 공유하지 않는 기러기 가족, 자연적 모성에 도전하는 출산 거부, 결혼정보회사로 재현되는 친밀성의 상품화, 성별 분업에 반대하는 젊은 남녀의 결혼 지연 등. 최근 발생하는 이러한 ‘가족문제’는 근대적 가족의 패러다임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임을 말해줍니다.

즉 부부와 2명 또는 3명의 자녀가 환하게 웃는 ‘행복한 가족’의 그림은 사진관의 전시물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와 함께 변화 또는 해체되어 가는 근대 가족을 회복시키는 것 또한 불가능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성학자들은 근대 가족의 성별분리를 문제시하면서 평등을 이야기해 왔습니다. 그래서 사회일각에서는 이혼을 하고, 아이를 낳지 않고, 결혼하지 않는 개인의 행위를 평등을 요구하는 여성의 이기심으로 비난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현상적 변화는 후기 근대 사회에 나타나는 삶의 패러다임의 전환 과정입니다. 쉽게 말해 과학기술만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애착·친밀성 등도 변화하는 것입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이행했던 인류의 과거는 공적인 영역뿐 아니라 사적인 영역에도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잊고 있었습니다.

한 달 후에 세계여성학대회가 열립니다. ‘가족과 일상생활’이라는 주제로 많은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세계 곳곳의 여성학자들은 21세기 가족의 근대적 패러다임에 도전할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국갇민족·인종·문화계급 간의 차이에 관한 인식과 통찰에 새로운 차원을 열어줄 것입니다.

[필자인터뷰]

▲ 이재경 교수(여성학 전공) [사진:이유영 기자]
저는 세계여성학대회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재경 교수입니다. 최근 가족에 대해 많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고, 특히 전통적으로 가족 내에서 여성이 담당했던 ‘육아’가 여성의 사회진출로 ‘보육’의 단계로 넘어갔죠. 제 연구는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일과 가족이 분리된 시대에 여성이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이화인들에게 시야를 좀 더 넓게 가지고 도전하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리더가 되기 위해 세상에 어떤 헌신과 기여를 해야하는지 고민도 해보시고요.
여성학 특집 마지막 편지는 허라금 교수님(여성학 전공)께서 써주실 예정입니다. 교수님께서는 남성적인 패러다임의 윤리가 아닌 여성의 경험을 포함할 수 있는 ‘여성주의 윤리학’에 대해 연구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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