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 모여 오늘 하루를 이야기 하는, 쉽지만 어려운 이 일을 함께 하는 사람들’, ‘가족, 그것은 스스로 끊을 수 없는 족쇄’ 이화인들이 말한 가족의 정의입니다.

가족은 우리에게 가장 친밀한 집단이지만 그 안에 감춰진 내부적 모순을 밝히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에 사회부는 현대 가족의 개념을 재정립하고 가족 내 여성의 문제를 드러내보고자 합니다.

다음은 12일(목) 오후7시30분 교내에서 우리 학교 천혜정 교수(소비자인간발달학 전공), 김은하 강사(사회학과), 이선영(소인·4)씨, 최지현(사회·4)씨, 박임마누엘(심리·4)씨를 모시고 진행한 좌담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편집자>

ㅡ과거와 비교해 현대 가족의 의미는 어떻게 변화했는가.

▲ 천혜정 교수(소비자인간발달학 전공) [사진:박한라 기자]
최지현(최):가족의 개념이 많이 바뀐 것 같다. 과거에는 ‘혈연 중심’이었다면 요즘은 ‘감성적 유대’가 중시된다.

박임마누엘(박):요즘은 ‘함께한다’는 것이 가족을 정의하는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가족의 종류가 다양해졌을 뿐 아니라 사는 방식도 달라져 더이상 혈연으로 가족을 정의하긴 힘들다.

이선영(이):수업 중 조별로 가족 형태에 대해 조사한 적이 있다.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이 수업의 목표였는데, 소위 ‘정상 가족’이라 불리는 사람들 외에는 주변의 시선을 부담스러워 해 인터뷰를 기피하는 경우가 많았다.

천혜정(천):가족의 다양성에 대한 논의는 많이 이뤄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를 머리로는 인식한다. 그러나 정서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동성애 커플을 가족으로 규정하는 것과 내 가족이 동성애 커플인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로 인식된다.

김은하(김):가족 개념이 바뀌고 있는데 이를 인정하지 않는 법도 문제다. 법적으로는 현실에 대한 고려 없이 여전히 혈족 관계만을 가족으로 인정한다.

박:솔직히 가족의 다양성이 피부로 와닿지 않는다. 그래서 막상 다양한 가족들을 만

▲ 박임마누엘(심리 4)씨 [사진:박한라 기자]
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아직 잘 모르겠다. 가족의 범위가 불분명한 만큼 우리의 태도도 정립되지 않은 것 같다.

ㅡ­가족 형태가 다양해졌지만 여전히 인식은 뒤쳐져 있다. 우리는 어떤 태도로 다양한 가족을 이해해야 할까.

최:가족의 정당성을 따지는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 프랑스의 경우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기 때문에 동거 커플이 늘어나도 출산률은 줄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출산률 저하를 문제 삼으면서도 ‘동거 상태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안된다’는 등의 제약을 버리지 못한다. 가족을 규정하는 데에도 나름의 융통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천:가족에 대한 환상을 깨라. ‘그래도 이게 가족의 모습으로 적합하지 않나’라는 기준을 버려야 한다. 요즘 시장에 가보면 혼자먹는 찌개 등 1인 가족을 위한 상품이 많다. 이는 현재 1인 가족이 많음을 반증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것이 가족이다, 아니다를 따지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김:궁극적으로 ‘가족’의 개념 자체를 해체해야 한다. 대안 가족·정상 가족·건강 가족 등 가족의 형태를 규정해두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다.

ㅡ­여성이 가족 내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가사노동과 사회활동을 병행해야 하는 문제다. 가사노동으로 한정됐던 여성의 일이 다양하게 분화되는 과정에서 많은 제약이 존재하는데.

▲ 이선영(소인 4)씨 [사진:박한라 기자]
이:드라마 ‘불량주부’를 보면 여기서 말하는 ‘불량주부’가 나가서 돈을 버는 여성을 의미하는지, 살림이 서툰 남편을 의미하는지 불분명하다. 기혼여성의 사회 생활이 용인되는 것은 ‘집안일을 다 했을 때’를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천:요즘 젊은 남성들 또한 일하는 여성을 원한다. 그러나 남성들의 가정 내 역할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채 여성에게만 사회적 역할을 부가시켰다.

최:여성들 스스로가 양쪽을 병행할 수 있는 직업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구직 시 자신의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곳보다는 집안일을 할 시간이 확보되는 직장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ㅡ­여성의 가사노동은 남성의 일보다 낮게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박:가사노동이 평가절하된 것은 여성 스스로가 만든 결과일 수 있다. 남성들이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측면도 있지만, 여성들이 가사노동의 불평등을 강조하다 보니 그 의미 자체가 왜곡됐다. 여성의 가사노동이 가치있는 일이라 주장하는 것이 더욱 생산적이지 않을까.

천:여성들이 집안일은 하찮고 재미없다고 주장해서 가사노동이 평가절하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여성들이 가치 있다고 말한다 해서 가사노동이 평가절상되는 것도 아니다. 처음부터 집안일이 남성의 일로 구분돼 있었다면 가사노동이 이렇게까지 폄하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지난해 캐나다 어학연수 중 일이 바쁜 아내 대신 남편이 식사를 준비하는 가족을 봤다. 놀랍게도 남편은 즐겁게 음식을 만들었고, 그 가족에게는 가사노동의 억압적인 이미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적성과 상황에 맞게 가사일이 분배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전업주부인 여성들은 직업을 가진 여성을 부러워하더라. 직업이 없는 여성은 돈을 쓸 때 남편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남편이 아내에게 돈을 주는 것은 가사노동의 대가가 아닌 생계비일 뿐이다.

▲ 김은하 강사(사회학과) [사진:박한라 기자]
김: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받지 않는 일은 노동으로서의 가치가 없다. 가사노동은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은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기댈 수 밖에 없고 이혼을 하거나 남편이 죽으면 여성의 자립 기반은 없어진다. 개인의 경제적 자립이 가능하도록 남녀 모두 직업을 가져야 한다.

ㅡ­이화인들이 가족 내에서 겪는 가족 구성원 간의 소통 문제는 어떠한가.

박:초등학교 5학년∼중학교 1학년 때까지는 아버지를 어려워했다. 그런데 어느날 아버지와 전화를 하던 중 용기를 내 “아빠 사랑해”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날 이후 아버지와의 관계가 풀어지고 대화의 장이 열렸다. 부모·자식 간에 한번쯤은 서로 말을 트는 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자신의 경험에 따라 아버지·어머니에게 느끼는 친밀감이 다른 것 같다. 나의 경우 어머니보다는 오히려 아버지와 더욱 친밀한 편이다. 어렸을 때 급한 일이 생기면 선생님이신 어머니에 비해 전화 통화가 쉬웠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곤 했다. 그래서 아버지와 굉장히 친하고 애정표현도 많이 한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서 부모님과의 대화가 단절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최:나이든 아버지가 변하는 모습을 성인이 된 자식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가족 간의 관계가 청소년기 이전에 형성되지 않으면 그 이후에는 감정적으로 밀착된 관계를 만들기 힘든 것 같다. 평소에 대화하는 훈련을 많이 한 가족이라면 계속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 본다.

천:아버지와 성인 딸 사이에서 느껴지는 거리감은 사회구조적 문제다. 남성은 밖에서 돈을 버는 것이 가족을 위하는 방법이라 여겨져 왔다. 그러다 보니 가족 내에서의 역할을 배우고 연습할 기회가 없었다.

김:우리나라는 가족을 버려야 성공할 수 있는 사회 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가족 내에서의 친밀한 아버지는 곧 사회적으로는 쫀쫀한 아버지를 의미한다. 자녀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양육에 많이 참여할 수록 친밀감이 생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가 아버지들을 놔 줘야 한다. 사회구조적인 책임을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으로 돌릴 수는 없다.

ㅡ­현대 가족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천:내가 어떤 것을 원하고 원하지 않는지 분명히 알자. 가족은 개인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집단이다. 개인이 행복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족의 행복을 기대할 수는 없다.

▲ 최지현(사회 4)씨 [사진:박한라 기자]

박: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족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립해야 한다. 또 여성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힘써야만 여성의 일도 남성의 일처럼 가치를 존중받을 수 있다.

김:젊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부단한 자기 성찰과 나 자신의 행복이다. 결혼·사랑 모두 내 행복을 위한 하나의 수단임을 명심하자. 내가 우선이지 가족을 이루느냐 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행복의 주체는 상대방이 아닌 나다. 자신의 내공에서 오는 행복은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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