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비평준화였던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수능 성적을 반영하지 않은 2003학년도 1학기 수시 전형은 혼란스러운 제도였다. 내신이 유리한 중·하위권 학교 학생들 상당수가 명문대에 합격한 반면, 내신 경쟁이 치열한 상위권 학교 학생들은 수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해를 끝으로 1학기 수시 전형은 대폭 변경됐다. 우수한 실력임에도 수시에 실패한 학생들 모두 제도의 희생양이 된 셈이다.


올해부터 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골자로 한 ‘2008학년도 입시제도’가 시행됐다. 이 제도는 학교생활기록부의 반영 비중을 늘리기 위해 기존의 내신평가 방식인 ‘수·우·미·양·가 제도’를 폐지하고, 석차를 9등급으로 나눠 표기하는 상대평가제를 채택하고 있다. 스러져 가는 공교육을 바로 잡고, 고교 교육의 중심축을 학교 안으로 끌어오기 위해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새로운 교육제도가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지는 의문이다. 공교육을 강화 하기 위해 대입에서 내신 성적의 반영 비율을 높였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학생들에게 3년 동안 12번의 중간·기말 ‘수능’을 치르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학생들은 12번의 ‘수능’에서 1점이라도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서로의 교과서를 훔치고 경쟁자의 공책을 찢어버리는 한국판 ‘배틀로얄’을 벌이고 있다.


현 교육제도에 대한 근본적 고민없이 대학 입시에서 공교육 비율을 높이는 것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정부는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교육을 무조건 비대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학교 안의 비인간적인 현실에는 무감각하다.
현실에 대한 진지한 고찰없이 제도 개혁을 통해 일단 공교육부터 살리고 보자는 식의 논리는 납득할 수 없다. 얼마 전 크게 논란이 됐던 수능부정·내신조작 등의 굵직한 교육문제 역시 이러한 내실없는 제도 개혁으로 인해 불거진 것 아닌가.


1학기 수시 전형에 휘둘렸던 우리처럼 지금의 아이들도 스스로를 ‘저주받은 89년생’이라 부르며 고통받고 있다. 당장 내 자식이 배운다 생각하고 제도를 만들었더라도 지금과 같은 문제들이 야기됐을까. ‘교육부에 89년생 자식 가진 사람이 있느냐’고 묻는 학생의 말은 자못 씁쓸하다.
교육은 아이들의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조심스럽게 변해야 한다. 일회성 제도 개혁만 되풀이 되는 지금, 아이들의 ‘저주’를 풀어줄 ‘마법’을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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