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반도문학회 회장 신지영(영문·2)씨


오늘도 늦게 들어와 초인종을 누르는 제게 어머니는 신경질을 내시며 뭘 하고 돌아다니길래 이 시간에 들어 오냐며 잔소리를 늘어놓으셨죠. 연락 한 번이면 됐을텐데 그걸 못하고 되려 “24시간 내내 틀어놓는 텔레비전 소리가 지겨워서 늦게 온다”며 차가운 한 마디를 내뱉어버리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방으로 들어간 사이, 예전 같았으면 건방지고 버릇이 없다며 쫓아 오셨을 어머니께서?아무 말 없이 조용히 텔레비전을 끄고 방문을 닫으실 때의 철컥 소리란. 그 짧은 순간의 단절감에 배어나오는 금속음은 꺼져가던 온기가 생겨날 찰나조차 기다려주지 않고 묵묵히 견고한 벽만을 남긴 채 이제는 손잡이마저 잡을 용기 없게 가슴 한켠을 식혀버릴 뿐입니다.


어머니, 언제부터였을까요. 언제부터 어머니가 야단치실 때 들고 다니시던 매가 없어진 걸까요. 언제부터 제가 어머니의 손찌검에 반항하며당신을 몰아세웠던 걸까요, 언제부터 어머니의 아침상 재잘거림을 신경도 쓰지 않게 돼버린 걸까요. 그리고 언제부터 어머니의 눈길을 마주하지 않게 돼버린 걸까요.


고등학교 때 멀찍이 사이를 두고 걷던 어머니와 저를 우연찮게 목격한 친구가 왜 그렇게 떨어져 가느냐고 별 뜻 없이 물었을 때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납니다. 저는 언제나 어머니의 뒷모습만 바라보며 걸었죠. 다른 모녀관계처럼 팔짱을 끼고 넉살좋은 농담을 하며 다닌 기억은 없었던 것 같아요.


사랑해도 사랑한다고 웃으며 표현하지 못했던 어머니, 당신도 나만큼이나 외로웠겠죠. 그 외로움을 짐작하면서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하고 외면하는 저는 아마 나중에 정말 혼자가 됐을 때에야 어머니를 생각하며 가슴이 미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미련하고 이기적인 자식의 태도라 비난해도 달리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아직도 저는 이렇게나 어리석군요.


굳게 닫힌 방문 너머로 주무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한없이 미안해지면서도 내일 아침이면 평소처럼 다녀오겠습니다란 짧은 말만 남긴 채 집을 나서겠죠.

어머니, 하지만 아무리 어리석다 해도 당신의 거친 말투가 저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러니 이것만으로 우선은 위안을 삼아야겠지요.

좀 더 성숙해지면, 그 때는 비로소 어머니의 눈을 마주보고 웃을 수 있을까요. 어머니, 미안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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