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한 하구(河口) 갯벌이 중간 기착지 역할… 순천만 등 습지보호구역에 희귀 철새 서식해

그 새들은 어디에 있을까. 사람들의 기억 속에 엽서의 ‘멋진 풍경’으로만 박제된 새의 무리, 황지우의 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은 우리나라 어디에 있을까.

우리나라를 중간 기착지로 잠시 머물고 있는 철새들을 찾아 남해안에 갔다. 환경운동연합(환경연합)이 4월15일(금)∼4일(수) 진행한 ‘2005 봄철 도요·물떼새 전국조사팀’에 1일(일)∼2일(월) 합류했다. ‘도요·물떼새 전국조사’는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에서 출발해 여름을 날 시베리아 툰드라 지역으로 떠나는 도중, 우리나라에 머무르는 도요새와 물떼새(도요·물떼새)의 수를 알아보기 위해 실시되는 것이다. 한강부터 낙동강까지 하구를 따라 진행하는 이번 조사는 이제 막바지에 다다라 1일(일) 전라남도 순천의 순천만에 이르렀다.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의 배경이 된 순천 갈대밭의 끝에서 도요·물떼새를 만났다. 가까이 가면 새들이 날아오를 뿐 아니라, 스트레스를 받아 이동을 위해 써야 할 에너지를 낭비하므로 멀찍이 떨어져 스코프(새를 관찰하는 데 사용하는 망원경)를 통해 봐야 한다. 엽서 속에서 박제됐던 새들이 렌즈 속에서는 생동감있게 종종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다. 졸고 있는 사람처럼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다니는 도요새의 무리가 보였다. 도요새는 긴 부리로 바닥을 찍으면서 먹이를 찾기 때문이다. 얕은 물가에 서서 깃을 씻는 일에 여념이 없는 물떼새들도 보인다.

도요·물떼새는 4∼5월과 9∼10월에 우리나라에 머무르는 철새다. 도요새와 물떼새를 구분하는 가장 명확한 기준은 부리의 길이다. 긴 부리를 이용해 먹이를 찾는 도요새와는 달리, 부리가 짧고 눈이 큰 물떼새는 눈으로 먹이를 찾는다.

우리나라는 도요·물떼새가 시베리아 툰드라까지 가기 위해 힘을 보충하는 주유소와 같은 곳이다. 새들은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등지에서 4~5일을 먹지도, 쉬지도 않고 우리나라까지 날아온다. 바다를 무사히 건너기 위해 새들은 출발 전, 자기 몸을 두 배로 불려가며 에너지를 충전한다. 이 여정을 감당하지 못한 새들은 광활한 바다로 추락할 수 밖에 없다.

환경연합 배귀재 간사는 “우리나라에 막 도착한 새들을 보면 비쩍 마른 상태고, 기운이 없어 비틀비틀 거리며 걷는다”며 새들의 힘겨운 여행을 설명했다. 그는 “이제 바다는 건넜으니 빠져죽진 않겠죠. 그래도 툰드라 지역까지 쉬지 않고 가야하는 새들의 행로는 아직 험난해요”라고 덧붙였다. 환경연합 박종학 포토그래퍼는 “만약 우리나라가 주유소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툰드라까지 무사히 도착하는 새들이 대폭 줄 것”이라고 중간 기착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서 시베리아까지의 기나긴 여정을 준비하는 새들은 먹이를 잡아먹고 몸을 씻는 데 모든 시간과 노력을 소비한다. 스코프의 렌즈로 보이는 새들이 하나같이 먹이를 찾거나 깃을 씻고 있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한 두마리의 새가 하늘로 떠올라 목청껏 울면서 하늘을 빙빙 돈다. 이를 신호로 떠날 준비가 된 새들은 함께 날아올라 떼를 이뤄 긴 여행을 시작한다.

▲ 돌 위에서 쉬고 있는 노랑발도요. [사진제공:환경운동연합]
순천만은 비교적 잘 보존돼 천연기념물 제 228호 흑두루미 등 희귀한 철새들이 많이 찾아온다. 그 뒤에는 지역시민과 시민단체의 노력이 숨어 있다. 지난 97년 순천만 갈대밭에 골재 채취 공사가 추진된 바 있다. 이에 반대한 주민 서관석(51세)씨에 의해 순천만보존운동이 시작됐다. 운동이 진행되던 중 이 곳이 중요한 철새들의 서식지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순천만의 보호가치가 대외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순천만이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배귀재 간사는 “작은 하천은 규모가 작아 새만금이나 시화호처럼 이슈가 되지 않기 때문에 더 쉽게 파손될 수 있다”며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비슷해 보이던 새들도 조금씩 구분이 된다. 배 밑이 검은 것은 민물도요, 부리 끝이 위로 휜 것은 뒷부리도요다. 흔하게 발견되는 것은 아니지만 꼬까옷을 입은 것처럼 갈색 깃이 화려한 것은 꼬까도요다.

도요·물떼새는 남해안에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다. 해안을 따라 돌며 새가 발견될 때마다 스코프를 통해 보이는 새의 수를 기록한다. 아직까지 떠나지 않고 늦장을 부리는 검은머리물떼새 무리가 스코프에 잡힌다. 전세계에 존재하는 1만마리 검은머리물떼새의 절반이 우리나라를 거쳐 간다.

‘와온’이란 지역에서 다리에 색색의 표식을 달고 있는 새들을 발견했다. ‘밴딩(각 나라에서 새들의 이동을 파악하기 위해 다리에 부착한 표식)’을 한 흔적이다. 오렌지색은 호주, 초록색은 뉴질랜드, 우리나라는 흰색을 사용한다.

새들을 통해 보는 자연의 적응력은 놀랍다. 광양 동서천하구에서 머리가 검은색으로 변한 붉은부리도요가 스코프에 잡혔다. 번식기를 맞은 붉은부리도요는 머리 부분의 흰 깃이 검은 깃으로 바뀐다. 건강한 유전자를 과시하려고 자신을 최대한 화려하게 만드는 것이다. 도로를 따라 승용차가 지나가는 소리에 갈매기나 알락꼬리마도요 등 덩치가 큰 새 몇마리는 하늘로 날아오른다. “작은 조류들은 순발력이 뛰어나 빠르게 도망갈 수 있는 데 반해 큰 새들은 순발력이 부족한 대신 예민한 감각을 갖고 있다”는 게 배귀재 간사의 설명이다.

‘찌찌찌, 뽀로로로로­’. 스코프를 통해 멀리서 관찰할 수 밖에 없지만 새들이 우짖는 소리가 남해안에서 뻗어나온 광양만의 허공을 메운다. 그 순간, 새와 인간은 한 공간에 공존한다. 배귀재 간사는“몇 만마리의 새들이 하늘에 점으로 박혀 날아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황홀하다”고 말한다. 엽서 속 이미지가 아닌 직접 새를 보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황홀감이다.

환경연합 사람들은 “강이 살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새들의 보금자리는 유기물이 많은 하구 갯벌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철새가 멀어진 것은 첫째로 우리가 강을 파괴했기 때문이요, 둘째로 우리가 강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새들은 그곳에 존재한다. 긴 여행을 준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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