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키 매켄지의 「나는 여성의 몸으로 붓다가 되리라」

우선 이 책은 꽤 두꺼운데도 무척 가볍다. 손에 들어도, 옆구리에 끼어도, 두 손을 급히 쓰기 위해 어쩌다 입에 물어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그리고 물이라도 흘리면 금방 흠뻑 젖어버릴 것만 같은 편안한 엄마의 속곳 느낌의 재활용 종이장들이 넘기는 손가락과 마음을 숨쉬게 한다. 만져지는 두툼한 실(實) 속의 항상 깨어 살아있는 부드러운 허(虛)라고나 할까.

영국 출신의 티벳 여승 ‘드룹규 텐진 빠모’의 수행 과정과 그녀의 가르침을 전하는 이 책의 내용 또한 그러하다. ‘12년간 히말라야 설산 동굴에서 치열하게 수행한 어느 서양 여성의 깨달음의 기록’이라 써 있는 무시무시한 겉장과 다르게 책을 열면 불교의 공(空)·삼매·열반·탄트라·자비 등 어렵고도 초일상적인 개념들이 쉽고도 편안하게 일상적으로 다가온다.

밖으로는 서구 페미니즘이 사회를 향하여 부수고 찌르고 터뜨리며 가장 격렬하게 도전하던 시기에 ‘텐진 빠모’는 조용히 혼자 동굴 안에서 그 누구도 시도해 본 적이 없는 큰 업적을 이뤄낸다. 종교적인 수행에는 적합하지 않고 그동안 부정한 것으로 멸시받아왔던 여성의 몸이 오히려 ‘낳고’, ‘키우는’능력으로 인해 모든 생명으로 향하는 사랑과 자비의 힘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아직도 출산·육아·모성… 이런 단어만 들어도 부르르 치를 떨 여성들이 적지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개체의 생명을 낳고 키우는 여성 특유의 신성한 힘은 새로운 시대를 열고 가꾸는 현실적인 능력으로 훈련되고 확대되어야 마땅하다. 세상에는 때리고 부숴야 할 일이 여전히 많이 존재하고 있으나 우선은 내 속의 건강한 힘을 키워야 할 일이다.
부드럽고 강한 내공으로 한 세상을 뜨겁게 낳아 실하게 키워낼 내 후배들, 내 딸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필자인터뷰>

‘2005 안티 성폭력 페스티벌 porNO porNA’의 총연출과 경희대 연극영화과 교수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영란 선배.

그는 “춤을 똑같이 따라 하는 것에 질려 학과 전공이 아닌 철학·종교에 관심을 기울였다”며 학창 시절을 회상했다. 그는 대학 3학년 때, 교목실에서 공고한 락 뮤지컬 오디션에 응시한 것이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다고 한다. 부활절 행사 때 했던 그 공연으로 관객과의 폭발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경험하게 됐고, 그의 인생을 ‘무용’에서 ‘연기’로 변화시켰다. 이영란 선배는 “배우로서 산다는 것은 다양한 삶을 조명해 타인의 슬픔을 어루만지는 ‘구도의 길’을 가는 것과 같다”고 전했다.

이어 이화인들에게 “대학 시절 홀로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이 아쉽다”며 “주위의 친구들과 짙은 동지애를 돈독히 하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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