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서울시는 문화 시설을 확충하기 위해 한강 노들섬에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 버금가는 오페라하우스를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오페라 극장·콘서트홀·청소년 야외 음악당 등을 갖춘 1만5천평 규모의 문화예술센터로 계획해 현재 세계적인 건축가들에게 설계 아이디어를 공모 중이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그 계획은 대규모 공연장 건설에만 급급한 ‘보여주기 식’ 문화 정책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문화연대)는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건립에 강력한 비판을 하고 있다. 정기용 문화연대 공동 대표는 4월10일(일) 서울시가 주최한 ‘문화도시 서울을 어떻게 가꾸어갈 것인갗세미나에서 “좌석이 3천석이나 되는 대형극장은 관람객을 채우지 못해 헉헉거리고 있다”며 “노들섬에 대형 오페라를 짓는 것 보다 세종문화회관 근처에 중·소규모 공연장을 만드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문화연대는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제출했고, 앞으로 기자회견도 열 계획이다. 문화연대 천기원 간사는 “서울시민연대와 연합해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본격적인 반대 활동을 펼칠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영세 규모의 연극 극단, 인디 밴드 등의 공연 단체들은 재정난에 허덕이는 상태다. 소규모 공연장이 부족해 발생한 대관경쟁 때문에 대관료가 턱없이 올라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공연 단체들은 공연 수입의 80∼90%를 대관료로 지출하고 있을 정도다.

비싼 대관료에 부담을 느낀 인디 밴드의 경우 다른 밴드들과 연합으로 공연해 돈을 함께 부담하기도 한다. 인디 락밴드 ‘severna’에서 드럼을 맡고 있는 남훈곤씨는 “라이브 홀 하루 빌리는데 싼 곳은 60만원, 비싼 곳은 120만원까지 지불해야한다”며 “공연 시설이 미비해 최적의 장소는 못되지만 대관료가 저렴한 호프집에서 공연을 하기도 한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들 뿐 아니라 소규모 극장주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문화지구’로 선정된 인사동과 이를 추진 중인 대학로·신촌의 극장주들은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고 있다. 천기원 간사는 “신촌과 대학로는 상업화가 심해져 돈벌이가 안 되는 공연 시설대신 유흥업소가 많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또 소규모 극장은 대부분 민간 소유이기 때문에 극장주들은 정부의 지원금없이 개인적으로 고가의 음반 장비와 조명 장치 등의 무대장치를 구입·유지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극장주가 공연단체에게 요구하는 대관료가 높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관객들이 잘 알려진 작품을 공연하는 대형 무대로 몰리고, 소규모 공연 예술을 외면하는 ‘관객의 양극화 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에 관객몰이가 쉽지 않은 소규모 공연단체로서는 비싼 대관료가 부담이 되고, 극장주 입장에서도 재정적으로 힘든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이런 공연 단체의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서울 각 구에서는 자체적으로 문예회관을 건립하고 있다. 강서구는 4월15일(금) 구민회관 내에 소공연장을, 광진구는 광진문예회관을 5월2일(월) 각각 개관했다. 구예산으로 운영되는 예술회관은 대관료가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재정적으로 탄탄치 못한 공연 단체들에겐 희소식이 되고 있다. 강서구청 문화체육과의 이선영씨는 “일반 공연장에서는 대관료 때문에 공연 기간에 쫓기는데 비해 여기선 연장·앵콜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렇듯 자치구 차원의 지원 외에도 정부의 지원이 절실한 이 때, 대형 오페라 극장을 짓는 서울시의 정책은 문화계 실정을 고려하지 못한 행정이라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노들섬 오페라 하우스 건립을 추진 중인 문화예술센터의 한 관계자는 “노들섬 오페라하우스와 함께 설치되는 청소년 야외 음악당이 소규모 공연장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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