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80년대, 여성 패션 주름잡은 이화
1960∼80년대, 여성 패션 주름잡은 이화
  • 윤미로 기자
  • 승인 2005.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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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학생들은 1950년대 말까지 단발머리에 한복이나 여고시절의 교복을 개량해 입고 다녔다. 그리고 경제 발달이 시작돼 옷차림이 다양해진 60년대 이후부터 우리 학교 학생들은 한국 20대 여성의 옷차림을 선도해 왔다.

▲ 1966년 학생들의 모습. 지금 봐도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느껴지는 모습이다. 단추를 모두 잠근 코트에 정성껏 드라이한 웨이브 머리를 어깨까지 늘어뜨린 단정한 모습들이 눈에 띈다.
1960년대의 학생들은 외국 유학에서 돌아온 여교수들의 옷차림을 흉내내며 세련된 스타일을 추구했다. 플레어 스커트와 하이힐, 짧은 소매 스웨터 등의 패션이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시대 상황과 관련, 검소한 차림을 선호하기도 했다. 1960년 4·19혁명 당시 우리 학교가 시위대열 명단에 없자 한 학생의 아버지가 신문을 통해 비판한 적이 있었다. 이에 캠퍼스 내에서 시위불참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져 학생들은 즐겨쓰던 양산대신 밀집모자를 쓰고 검정 스커트에 흰 블라우스의 검소한 차림으로 다녔다. 또 정부의 신생활 운동의 일환으로 1968년, 우리 학교에서도 ‘복장검소화운동’이 일어났다. 비싸고 화려한 옷을 입지 말자는 취지로 의복을 규제하고 단정한 머리 모양을 권고했는데 이는 학생들의 많은 변화를 이끌어냈다.

1970년대에는 학교 정문에서 현재의 이대역까지 고급 양장점이 양쪽으로 쭉 늘어서 있었다. 입학식 전 양장점에 가서 투피스 치마 정장을 사는 것은 모든 학생들의 관례였다. 비싼 옷가격에 부담을 느낀 학생들은 동대문에서 직접 천을 끊어와 양장점에 맡겨 보다 저렴하게 옷을 마련하기도 했다. 또 1970년대 후반 반도패션이 최초의 기성복을 선보이기 전에는 청바지도 치수를 재 맞춰 입기도 했다.

1967년은 가수 윤복희씨가 주도한 미니스커트 열풍은 우리 학교를 지나치지 않았다. 1970년대 초 학생들은 경범죄에 걸리는 수치인 무릎 위 약 20cm보다 짧은 치마에 종아리선이 드러나도록 달라붙는 가죽부츠를 신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당시 캠퍼스를 가장 거세게 휩쓴 유행은 ‘청바지 돌풍’이었다. 당시 국내 브랜드의 청바지가 없어 학생들은 외국에 나가는 친척들에게 리바이스 청바지 하나 사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고 한다.

▲ 80년대 초, 대부분의 학생들은 스웨터,티셔츠,점퍼 등의 윗도리를 모두 본래 사이즈 보다 여유있게 입었다. 반면 바지는 폭이 딱 맞는 9부 바지를 즐겨 입었다. 낮은 굽의 구두와 배낭을 함께 연출한 학생의 모습도 보인다.

1974년도 입학생으로 지난 해에 재입학한 이지영(사회·4)씨는 “70년대 후반, 학생들은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에 등장한 거리를 쓸고 다닐 정도로 통이 큰 나팔바지를 입고 다녔다”고 회상했다.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1980년대에 시위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운동화에 헐렁한 티셔츠를 입었다. 진일상(독어독문학 전공)교수는 “80년대 초반, 운동권 학생들은 긴생머리나 단발머리였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화장을 하고 멋을 부렸던 것으로 기억난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의 현대 여성복식사는 우리 학교 학생들과 함께 해왔다. 홍나영(의류직물학 전공)교수는 “1960∼80년대, 우리 학교 학생들이 어떤 옷을 입으면 다른 여성들이 많이 따라 입었을 정도였다”라고 설명했다.

사진:이대학보사 소장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