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 학위 등에서 문제제기… 대학 내 활발한 논의 필요해

◆친일인사 재평가 논의 확대
우리 학교 김활란·고려대 김성수·연세대 백낙준 전 총장 등 학내 친일인사에 대한 대학생들의 재평가 작업이 시작됐다. 우리 학교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민노 학위)·고려대 총학생회(총학)·연세대 민노 학위 등은 지난 3월 잇달아 기자회견을 열고 ‘친일인사 관련 상징물 철거 및 명칭 개정 요구·친일인사 명단 발표’ 등의 활동계획을 밝혔다.

우리 학교 민노 학위는 지난 3월25일(금) 본관 옆 김활란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 측에 ‘김활란 여성 지도자상 폐지·김활란 동상 철거·헬렌관 명칭 개정’을 요구했다.(1263호 이대학보 2면 참조) 민노당 장유진 학생위원장은 “사회에서 이뤄지고 있는 친일 잔재 청산 작업을 학내에서도 이행해야 한다”며 이번 작업의 의의를 밝혔다.

1960년대부터 제기돼 온 친일 잔재 청산 문제에 대한 논의가 학내에서는 비교적 활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고려대 한승조 전 명예교수 발언과 일본과의 독도 분쟁 등으로 형성된 반일감정은 대학가 친일인사 재평가 작업에 불을 지폈다.

3월28일(월) 고려대가 1차 친일인사 명단을 발표한 데 이어 우리 학교도 대자보를 통해 선전전을 시작하는 등 친일 잔재 청산 운동은 앞으로 더욱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북대·전북대·중앙대 등 7개 대학으로 구성된 ‘친일잔재청산을 위한 대학운동본부’가 3월30일(수) 발의해 대학가의 연대 움직임도 일고 있다.

▲ 김활란 전 총장의 생전 모습. [사진:이대학보 소장 자료]
◆공과론(功過論)에 따른 엇갈린 시선
김활란 전 총장은 한국 여성들에게 근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우리 학교가 여성교육기관으로 성장하는 토대를 마련한 반면 다양한 친일행적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일생 동안 60여 차례의 각종 국제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해 한국 여성의 위상을 높이는 업적을 이뤄 ‘한국 최초의 여성박사 1호·한국 여성교육의 선구자’로 칭송받고 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훈장·1등 수교훈장·막사이사이상 등을 수상한 경력도 있다.

하지만 아마기 카쓰란(天城活蘭)으로 창씨개명하고 금비녀를 모아 일본 군자금을 댄 ‘애국금차회’를 조직하는 등의 친일 활동도 벌였다.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 등 일본협력단체에서 징병·창씨개명 등의 선동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친일행적으로 인해 1948년 김구와 임시정부 계열이 지목한 숙청대상 두번째 인물로 꼽힌 바 있다.

우리 학교는 본관 옆 뜰에 김활란 동상을 세우고, 그의 세례명 ‘헬렌’을 따서 헬렌관이란 건물 명칭을 짓는 등 김활란 전 총장의 교육자적 업적을 기려왔다. 지난 1998년에는 김활란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김활란 여성 지도자상’을 제정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장유진 학생위원장은 “공적과 과오가 공평하게 평가됐다면 이와 같은 공적 치하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학교측의 처사를 비판했다. 공적이 있다고 해서 과오가 사라질 수는 없다는 것이 민노 학위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학교측 한 관계자는 “선조로부터 유산 뿐 아니라 부채도 함께 이어받았다는 사실을 회피하지는 않겠다”며 “단지 부채를 갚는 방법에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김활란 전 총장의 공과에 대한 이화인의 의견은 분분하다. 안소영(인문·1)씨는 “친일을 했다 하더라도 교육자로서의 공적은 별개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ㅇ(경제·4)씨는 “사회에서 이뤄지고 있는 친일 잔재 청산 작업이 학교만 피해갈 수는 없다”며 “지식인이라면 더욱 나라를 위해 힘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사학과 한 교수는 “인물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역사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김활란에 대한 평가도 이대생 각자의 역사관에 따라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답했다.

◆대학생, 친일 청산 필요성에는 동의
아직 학생들 사이에서는 학내 친일 잔재 청산 문제에 대한 여론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이 친일 잔재 청산 작업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인터넷 대학언론 ‘유뉴스(unews.co.kr)’가 3월29일(화)∼30일(수) 우리 학교·고려대·서울대·연세대 8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학가 친일 잔재 청산 작업은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70.8%(571명)나 차지했다.

대학가 친일 인사에 대한 평가 자체를 회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평가에 앞서 그들의 공적과 과오에 대한 정확한 인식 및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번 움직임을 계기로 학내 역사적 인물에 대한 공정한 평가의 장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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