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희 / 2003년 / 96분

 영화 <미소>는 '튜블러 비전'이라는 단어에서 출발한다. 박경희 감독이 10년 전 안과에 갔다가 우연히 들은 '튜블러 비전'은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정식 명칭을 가진, 점점 시야가 좁아지는 병을 말한다. 그 원인도 진행속도도 알 수 없는 이 병은 사진작가란 직업을 가진 주인공 '소정'에게 치명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점점 시야가 좁아지는 병은 역설적이게도 소정에게 삶의 시야를 넓혀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영화는 대비되는 것들에 대한 성찰이 들어있다. 지석과 소정의 관계와 치명적인 영화 속 철이와 순이의 관계, 조부 무덤의 나무와 옛 고분의 나무 그리고 엄마가 믿는 미신과 지석이 연구하는 분자 생물학 등이 그것이다. 영화는 이 모든 것을 여성주의 시각을 떠나서 인생과 인간의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마음의 시야를 넓히고자 탔던 소정의 비행기는 결국 추락하고 말지만 그 모습에서 얻는 해답은 우리 각자의 몫이 될 것이다.

감독, 박경희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영화 아카데미 5기 출신인 박경희 감독은 89년 영화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그녀의 졸업 작품 <자정에서 새벽까지>는 일본 피아 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박광수 감독의 <그들도 우리처럼>의 연출부에 들어갔다.

 1년 후, 단지 ‘영화를 많이 보고 싶다’는 이유로 파리 유학길에 오른 그녀는 2년 동안 머물며 영화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확장 시켜 나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임순례 감독과의 인연을 시작으로 임순례 감독의 단편 <우중산책>의 기획과 조감독을 맡았고, 96년 <세친구>에선 각색과 조감독으로 참여했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 조감독을 하면서 자본이란 그늘아래 저예산 영화가 얼마나 힘들게 만들어 지는지 충분히 겪은 그녀지만, 박경희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 <미소>는 험난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 졌다.

 시나리오는 2000년에 완성 되었지만 투자가 안돼 제작이 두 번이나 무산 되었고 결국 임순례 감독이 프로듀서로 적극 협조하면서 영화로 만들어 질 수 있었다.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2억을 지원 받고 영화감독 송일곤이 남자 주인공 '지석'으로 등장하며, 배우 추상미가 노 개런티를 선언하면서 영화는 완성되었다. 이렇게 영화 <미소>는 감독이 거대 기획사와 자본의 영향력을 벗어나 완전한 자기 목소리를 담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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