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은 / 2001년 / 110분

불안하고 불분명한 경계의 느낌을 전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의 모든 것은 경계위에 놓여있다. 공간적 배경인 인천은 어디로든 갈 수 있고 중심에 가깝지만 중심의 주변부인 과거의 항구도시이다.
 
여상을 나온 주인공들은 정해진 미래도 확신도 없이 불투명한 스무 살을 부유하듯 살아간다. 사회와 가정 어느 곳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그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받고 또 영향을 미친다. 영화는 각각의 개성을 지닌 5명이나 되는 캐릭터에 적지 않은 에피소드들이 나오지만, 전혀 산만하지 않고 일관적이다. 소녀들의 공간은 프레임에 갇혀있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하는데,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다섯 명의 소녀 모두에게 공감하며 감정이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데뷔작으로 느껴지지 않는 안정적인 연출과 공감 가는 자연스러운 상황 설정, 감각적인 일렉트로닉 ost  등 많은 단편들로 쌓은 감독의 내공이 느껴진다.

감독, 정재은

 69년생인 정재은은 많은 경우처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출신이다.(영화과 1기 졸업) 1999년 졸업 작품이었던 단편 <둘의 밤>으로 영상원영화제 최우수상을 수상한 그녀는 같은 해 <도형일기>로 제2회 서울여성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여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2001년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정재은의 장편 데뷔작이다. 첫 장편이라고는 믿기 힘들만큼 섬세한 연출과 꼼꼼한 공간사용, 이야기의 흡입력 등은 현장 스탭과 지인들이 ‘완벽주의자’라고 평하는 그녀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다.

 2003년 여섯 명의 감독이 모인 인권 프로젝트 <여섯 개의 시선>에 들어간 단편 <그 남자의 사정(事情)>는 시공간이 모호한 신도시를 배경으로 정보가 노출된 한 개인의 인권문제를 다루었다.

 올 4월에 개봉될 정재은의 두 번째 장편 <태풍태양>은 “다음엔 남자애들의, 땀 냄새 나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어요” 라던 한 인터뷰에서의 대답처럼 인라인을 통해 모인 여러 젊은이들의 사랑과 청춘에 관한 이야기이다. 경계에 선 위태로운 여자아이들을 그려내 데뷔작부터 많은 공감과 관심을 얻었던 그녀가 새로운 느낌으로 들고 온 이번 작품은 과연 어떨까? 몹시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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