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기획부
최보경 기자

고등학교 때 읽은 단편소설 ‘서울, 1964년 겨울’의 주인공들은 자신을 ‘날지 못하고 잡혀 죽는 파리’에 비유한다. 그들은 마치 세상을 포기해 버린 듯 삶에 대한 의욕이 하나도 없다. 1960년대, 군사 정권시대의 횡포와 경제적 빈곤이 삶의 희망을 앗아가 버린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 역시 소설 속 1960년대의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다. 2003년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부와 빈곤 세습현상이 심화될 것’이라 응답한 사람이 전체의 60%를 차지했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은 계속 가난할 것이라는 회의적인 이 대답은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또 여기서 주목할 점은 대다수가 이런 현상의 원인으로 ‘잘못된 사회 구조’를 꼽았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의 능력·노력’부족이 아닌 사회 구조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 사회의 구성원이 이렇게 자신이 속한 사회를 불신하게 된 것은 그 사회가 위험 수위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3월 한국노동연구원은 ‘한국의 근로빈곤연구’보고서에서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구가 전체 빈곤가구의 절반 이상이라고 발표했다.

심지어 최근 한 장애인이 무허가 컨테이너 노점을 차렸다가, 벌금 70만원을 물지 못해 자살한 사건이 발생하는 등 생계 유지가 힘들어 삶을 포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우울한 기류가 짙게 깔려있다.

그러나 사회는 여전히 서민들을 외면한 채, 희망을 앗아가버리는 정책으로 그들을 더욱 힘들게 만들 뿐이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의 무더기 골프장 신설 허가에 이어, 한덕수 경제부총리의 해외 부동산 투기 규제완화 정책은 ‘빈익빈 부익부’를 가속화시킬 것으로 보여진다.

‘나는 현재의 가난이 두려운 게 아니라 희망이 안 보이는 가난이 두렵다’는 어느 누리꾼(네티즌)의 말처럼, 진짜 공포는 지금의 고통이 아닌 미래의 고통이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현재 상황보다 나아질 것이 없다는 절망감이 우리에게 더 강한 두려움을 준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힘차게 날개 짓을 하지만 사회가 만든 새장 속에 갇혀 비상하지 못한 채 퍼덕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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