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에 빠진 사건을 법의학·법과학적으로 밝혀… 민감한 사안 많아 투명한 과정 요구돼

▲ 국과수 유전자 연구실의 내부 모습. [사진:박한라 기자]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하면 시체 부검이 떠올라요” 원미경(법학·4)씨의 말이다. 그러나 국과수의 과학수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더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토대로 신속한 범죄 해결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국과수에는 죽음의 원인을 밝혀내는 법의학과·유전자분석과·범죄심리과·문서영상과와 같은 세부 분과가 속해있는 ‘법의학부’가 있다. 이와 함께 약독물과·마약분석과·화학분석과·물리분석과·교통공학과를 포함하는 ‘법과학부’는 사건·사고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한다.

국과수는 사건 해결의 필수 요소인 감정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연구를 수행하며, 이를 통해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는 범죄들로 미궁에 빠진 사건의 실마리를 풀고 있다.

◆보이지 않는 심리와 신경전을 벌인다 -­범죄심리과
2000년에는 10여만건이던 감정건수가 3년 만에 20만건을 돌파했다. 이는 사건을 해결하는데 있어 과학수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중 과학수사의 한 방법인 최면이나 거짓말 탐지기도 사건의 신속한 해결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범죄분석실 함근수 실장은 최면을 이용해 범죄를 해결한 예로 아내가 보는 앞에서 남편이 살해된 사건을 들었다. 아내는 범죄가 진행되는 동안 범인과 함께 있어 극도의 공포감에 노출됐고 따라서 범인을 기억해내지 못했다고 한다. 함근수 실장은 “충격에 휩싸인 아내에게 ‘현재 범인은 당신을 보지 못하는 상황이고 움직이지도 못한다’고 최면을 걸자 범인의 생김새를 기억해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최면 상태의 증언을 토대로 용의자들을 추려내 사진을 보여줬고, 이 여성은 한 사람을 지목하고 기절했다”며 그 당시를 회상했다.
이처럼 최면은 피해자나 사건에 이해 관계가 얽히지 않은 사람만을 대상으로 한다. 최면 상태라도 의식이 있어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로 지난해 8월, 아내에게 성관계를 강요한 혐의를 부인했던 남편이 거짓말 탐지기를 통해 거짓이 드러나자 혐의를 인정한 것을 들 수 있다. 심리연구실 최효택 실장은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이 거짓으로 증언하면 진실을 말할 때와는 다른 생리 반응이 수반된다”고 말했다. 거짓말 탐지기는 심장과 호흡 운동 등을 측정해 진실과 거짓의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에 신뢰도가 95%에 달한다.

◆DNA로 사체의 신원을 밝혀낸다­ -유전자분석과
3월8일(화),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는 ‘시골처녀의 억울한 죽음, 3년만에 원혼 풀었

▲ 멀티 파이펫을 이용해 DNA를 분리해내고 있다. [사진:박한라 기자]
다’란 제목의 기사가 올랐다. 실종된 지 2개월 만에 한강 하구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한 여성의 신원이 국과수 유전자분석과의 DNA 분석으로 밝혀진 것이다. 유전자분석과 한면수 과장은 “DNA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과 한 사람의 DNA는 그의 부모로부터 유전된다는 사실을 이용하면 신원을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비행기 추락 사고처럼 훼손 정도가 심한 시신은 DNA를 분석해 몸을 맞추고, 탑승자 명단과 대조해 신원을 확인한다.

범죄 감정 외에 ‘미아 찾기’에도 DNA 분석을 이용하고 있다. 지난해 만여명의 미아들의 DNA를 데이터화 해 17명의 미아들이 부모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목소리로 범인을 찾아낸다­ -물리분석과
물리분석과의 음성분석실은 98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박초롱초롱빛나리 유괴살해사건’의 범인을 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범인은 시끄러운 곳에서 전화를 걸어 부모를 협박했고, 음성분석실은 주변의 소음을 제거한 범인의 음성을 언론에 공개했다. 그 후 범인의 부모가 “내 딸의 목소리다”며 제보해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가짜 식품 박멸한다­ -약독물과
밀제조한 식품을 판별해내는 식품분석실이 국가 차원의 과학수사연구소에 있는 것은 우리나라 뿐이다. 법과학부 정희선 부장은 “일본에서 가짜 식품을 판별하는 방법을 도입해 진짜·가짜 식품을 구별하는 실험법을 자체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마침내 가짜를 분별해냈고, 후에 경찰에서 의뢰한 꿀·위스키·참기름 등이 가짜임을 감식할 수 있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유전자분석과 한면수 과장은 “이 곳에 의뢰되는 사건들은 이해 관계자들이 격렬하게 대립하므로 객관적·전문적인 감정 과정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법과학부 정희선 부장은 “2001년 마약분석과가 UN DCP(유엔 마약 통제 본부)의 기준실험실로 선정되는 결과를 얻은 것은 심층적이고 앞선 연구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지난 50년 간 과학수사의 요람이었던 국과수의 성과를 높이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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